원안위 지시 모두 따른 한빛 4호기…더 남은 절차도 없어
“한빛 4호기는 원안위 지난 5년간 행적의 축소판” 지적도
전문가 “피해는 지역주민, 이득은 일부 소수의 환경단체”

지난 10일 전남 영광 한빛원전 앞에서 한빛핵발전소 대응 호남권공동행동의 활동가들이 한빛 3·4호기 조기 폐로를 외치고 있다. 업계는 한빛 4호기야말로 원안위가 지역 여론을 살피며 ‘갈지자’ 행보를 보여온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제공:연합뉴스)
지난 10일 전남 영광 한빛원전 앞에서 한빛핵발전소 대응 호남권공동행동의 활동가들이 한빛 3·4호기 조기 폐로를 외치고 있다. 업계는 한빛 4호기야말로 원안위가 지역 여론을 살피며 ‘갈지자’ 행보를 보여온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제공:연합뉴스)

전남 영광에 소재한 한빛원전 4호기는 지난 2017년 5월 제16차 계획예방정비를 시작한 후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정비 중이다.

정비를 시작하고 약 한 달 지난 시점에 원자로를 둘러싼 격납건물 내부에서 깊이 20cm의 공극(구멍)이 최초 발견됐고, 이어 집중점검을 펼친 결과 깊이 157cm의 공극을 비롯한 총 140여 개의 공극이 무더기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한빛 4호기 수난사는 햇수로만 5년째 이어지고 있다. 2년여의 민관합동조사단 활동과 세 차례의 격납건물 구조건전성 평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기술검토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 끝에 정상화를 향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원칙을 무시한 원안위의 행보에 한빛 4호기는 또다시 기약 없는 가동 중단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같은 원안위의 행보는 한빛 4호기가 멈춰 서 있는 동안 일관되게 나타났다.

그 결과 한빛 4호기는 원안위가 독립성과 전문성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상징적인 사례로 꼽히게 됐다.

◆구조건전성 평가에 기술검토까지…원안위 지시 모두 따른 한빛 4호기

한빛 4호기는 세 차례의 격납건물 구조건전성 평가와 이에 대한 KINS의 기술검토를 끝으로 원안위가 요구한 정상화 절차를 모두 마쳤다. 구조건성성 평가는 격납건물이 견고함을 유지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절차를 말한다.

앞서 원안위는 지난 2019년 8월 열린 제106회 회의에서 '한빛 3·4호기 콘크리트 공극 관련 안전성 확인 계획(안)'이라는 제목의 보고를 받으며 이 같은 절차를 거쳐올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원안위는 한수원에게 한국전력기술과 구조건전성 평가를 공동 수행하되 반드시 권위 있는 해외설계사로부터 평가 결과와 공극 보수방안을 검증받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프랑스의 프라마톰에 구조건전성 평가에 대한 검증을 맡겼다.

원안위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콘크리트학회에도 한수원의 평가 결과와 공극 보수방안에 대한 검증을 별도로 의뢰했다.

일반적으로 구조건전성 평가는 한수원이 수행하고 KINS가 이에 대한 기술검토를 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그러나 원안위는 해외설계사와 한국콘크리트학회에 두 번의 구조건전성 평가를 추가로 의뢰한 것이다.

이처럼 세 차례에 걸쳐 격납건물의 구조건전성 평가를 수행한 결과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기술검토를 맡은 KINS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한빛 4호기의 격납건물은 견고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빛 4호기는 정상화까지 두 개의 관문을 남겨 놓고 있다.

첫 번째 관문은 구조건전성 평가에 대한 KINS의 기술검토 결과를 원안위가 보고받는 것이다. 이 경우 공극의 보수방안도 함께 보고가 이뤄지기 때문에 한수원이 한빛 4호기 보수작업에 돌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두 번째 관문은 한빛 4호기 보수를 마치더라도 재가동을 하려면 원안위의 심의·의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원자력안전법상 한수원은 원안위의 허가 없이는 함부로 원전을 재가동할 수 없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오락가락' 원안위에 신음하는 한빛 4호기

KINS의 기술검토를 끝으로 장고에 들어간 원안위는 지난 1월 마침내 한빛 4호기 격납건물의 구조건전성 평가에 대한 기술검토 보고를 원안위 회의의 기타보고 안건으로 올리기로 결정한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말 원안위 내부적으로 한빛 4호기 격납건물에 대한 보수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한 데 따른 결과로, 원안위의 최종 판단에 업계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지난 1월 21일 열린 제152회 회의에서 유국희 원안위 위원장은 한빛 4호기에 대한 기술검토 안건에 대해 "지역주민의 의견도 중요하므로 오늘 논의에서 제외하겠다"며 돌연 상정을 거부했다.

당시 유 위원장이 언급한 '지역주민의 의견'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놓고 업계 안팎에서 해석이 분분했다.

때마침 한빛원전 지역의 일부 인사를 중심으로 지역이 추천한 전문가가 수행한 구조건전성 평가를 정당한 절차로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었다. 한수원과 프라마톰, 한국콘크리트학회가 수행한 구조건전성 평가를 못 믿겠다는 것이다.

사안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원안위가 지난해 한 차례 민간 전문가가 수행한 구조건전성 평가를 법정 검사로 인정할 수 있는지 검토한 결과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원자력 안전규정에 저촉되는 주장이기 때문에 원안위가 이를 섣불리 받아들이면 차후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애초에 지역이 요구하는 구조건전성 평가는 한수원과 지역 간 상호 신뢰 제고 차원에서 진행되는 절차일 뿐 이를 규제 영역으로 끌고 올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술기준에 따른 법정 검사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원안위가 더는 한빛 4호기를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의 주장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결국 원안위가 한수원과 지역 간에 진행되는 대화 내용을 핑계로 최대한 지역 여론을 살피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우려마저 든다"고 말했다.

◆한빛 4호기는 지난 5년간 원안위 행적 축소판?…점점 커지는 쇄신 목소리

한빛 4호기가 깊게 잠들어 있는 동안 원안위는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를 비롯한 각종 인허가 지연으로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였다.

일례로 신한울 1호기는 지난 2020년 11월 원안위의 운영허가 논의가 시작된 후 총 13차례에 걸쳐 관련 보고가 이뤄졌으며, 지난해 6월 11일 원안위 회의에서는 한 차례 운영허가가 미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한빛 4호기야말로 원안위가 지난 5년간 '갈지자' 행보를 보여온 대표적인 사례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한 번이 아닌 세 번의 구조건전성 평가와 통상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KINS 기술검토에 무려 6개월가량 소요된 점 등 한빛 4호기의 정상화를 향한 과정 곳곳에서 석연찮은 일이 발생하곤 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수원과 지역 주민이 풀어갈 내용은 한수원에게 맡기고, 원안위는 독립 규제기관의 위상에 걸맞게 법정 절차를 준수하는 게 맞다"며 "특히 한빛 4호기는 공극을 전수 조사하는 과정에서 내부 벽면의 철판이 뜯겨 있는 데다 장기간 가동이 중단돼 격납건물 내 습기가 차 있는 등 향후 재가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한빛 4호기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는 원안위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원안위가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데 힘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한빛 4호기 가동 중단으로 인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약 3조원에 달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가스발전의 정산단가가 200원/kWh를 넘는 상황에서 피해는 온전히 전기소비자와 지역주민이, 이득은 한빛 4호기의 구조건전성 평가기관과 안전성 검증을 앞세운 소수의 환경단체가 챙겼다"고 말했다.

노 연구위원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책임은 대부분 원안위에 있다"며 "원안위는 모든 상황과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원안위의 각성과 쇄신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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