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일찍 센터로 가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그 때의 떨림이 고스란히 기억이 납니다. 센터에 온 아이들에게 미리 연습한대로 “샌배노!” 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아이들이 수줍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다정하고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원으로 선발되어 지난 달 몽골 바가노르 꿈나무센터에서 첫 활동을 시작한 현지 활동가가 보내온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두근두근 설레던 마음, 다양한 교구와 교재를 활용한 한국어교육과 미술교육, 윷놀이 등 게임하
창문을 활짝 열자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 들어온다. 맨발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부드럽다. 햇살도 바람을 따라 거실 한가운데까지 들어와 길게 눕는다. 노랗게 칠해진 햇살의 영역 안으로 슬쩍 발을 들이밀면 봄기운이 발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그리운 사람의 미소처럼 휴일 낮 햇살의 온기는 따뜻했다. 계절은 기억을 데리고 돌아온다. 4월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4월의 사적, 공적 기억들은 현재로 소환되어 현실과 버무려진다. 이웃나라에서 넘어오는 희뿌연 먼지에도 아랑곳없이 휴일 낮의 창문을 열어젖힌 채 노란
친구들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방문한다. 나는 그 날 밤 몸살이 난다. 아이들은 굳게 닫아둔 안방 문을 손쉽게 열고 우다다 침대 위로 올라간다. 먼지 묻은 발로 침구 위를 방방 뛰다 뛰어내려와 화분에 흙을 들쑤신다. 그 손으로 오디오를 만진다. 잠시 후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오줌을 싸고 대충 손에 물을 묻히고 바지에 슥슥 닦는다. 그 손으로 과자를 먹는다. 과자 부스러기를 배에 슥슥 닦고 러그 위에 엎드려 리모컨으로 티비를 켠다.... 이 모든 걸 다 하는 데 20분도 안 걸린다. 친구들은 “적응해야지. 너도 애 낳으면 매일 이
아침에 마당에 나가서 깜짝 놀랐다. 어제만 해도 감감무소식이던 정원에 분홍색 꽃망울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노루귀라는 꽃이었다. 그리도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어떻게 저리도 연약한 꽃잎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일까.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심쿵하여 주변을 돌아보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녀석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튤립은 벌써 굵은 입대를 여기저기 내밀고 있으며, 미스김라일락 역시 잔뜩 물이 올라 금방이라도 잎을 뱉어낼 것인 냥 도움닫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기온은 아직 차갑지만 어느새 땅은 데워졌고, 만
134일, 스무 번의 주말. 16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한, 아니 우리가 함께 만든 촛불 집회.그리고 지난 10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쓴 순간, 우리는 모두 특별한 감정을 선물 받은 것 같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존재의 이유가 거대한 권력과 자본의 톱니바퀴를 굴리기 위한 나사 따위로 살기 위함이 아니라,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주인공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2017년 1월 1일 해를 넘기는 방송을 하면서, ‘올해는 왜 이리 시작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날도 촛불집
얄타 여행 첫날, 마싼드라 와이너리에서 ‘3병 묶음 스페셜 프라이스 레드와인’을 샀다. 한 병당 약 7천원 꼴이다. 관광객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길게 줄을 서서 와인 서너 병씩 장바구니에 담는다. 마싼드라 와인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든다.눈 덮인 아이패트리 산과 짙푸른 흑해가 함께 보이는 숙소에서 ‘황제의 와인’이라는 마싼드라 와인을 마셨다. 마싼드라 와이너리는 3년 전 러시아에 합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이 분쟁의 위기가 감도는 크림반도의 남동쪽 끝자락인 얄타에 위치한다. 1890년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음력 2월은 묘월(卯月)이라 불린다. 묘월은 갑목(甲木)과 을목(乙木)의 목 기운만으로 이루어진 계절이다. 같은 목이지만 갑목과 을목은 엄연히 다르다. 갑목이 중력을 거스르고 참천(參天)하는 양의 기운이라면, 을목은 유약한 음의 기운으로서 타고 오를 수 있는 갑목을 반긴다. 온기가 더해진 햇볕을 쬐고 촉촉한 빗물을 맘껏 마시며 3월의 갑목과 을목은 생기 있게 서로 어우러진다. 사업으로 승승장구하는 후배가 있다. 3번의 사업에 연거푸 실패했지만 주저앉지 않고 4번째 도전을 택한 지 만 4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사업은 반석 위에 올라
어디까지가 인간관계일까. 짧은 미팅으로 명함만 주고받았을 뿐인데 ‘나 그 회사에 아는 사람 있어’라고 말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알고 지낸 지 몇 년이 지나도 ‘그저 일 때문에 아는 정도’라고 설명하는 부류가 있다. 나는 어떻게 해왔을까. 확실한 건, 전자의 떠벌이 스타일은 별로 신뢰하지 못하는 쪽이라는 거다. 나는 인맥의 화려함 같은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가 단 둘인 사람도 좋고, 매일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모임을 가지는 사람도 좋다. 다만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이 수천 명이라고 과시하는 사람이나, 그걸 기준으로
어쩌다 보니, 라디오 피디로 입사하고 나서는 밤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연출하는데 절반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 10시가 아닌 6시 이후로 따져보면 그 이상이 된다. 지상파 방송국의 피디 역시 직장인이기에 지금까지 배치를 그렇게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그건 내가 밤 프로그램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나, 아님 다른 곳보다 여기에서 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와 ‘신동의 심심타파’를 합쳐 4년 정도, 얼마 전까진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를 1년 반 정도 연출했고, 이번엔
방송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그래 며칠만 견디자’ ‘한 달만 참고 살자’ 이 때의 ‘며칠’과 ‘한 달’의 의미는 방송쟁이들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과 인내의 다른 말이다. 물론 그 ‘며칠’과 ‘한 달’은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변경선 밖의 시간이다. 일이란 게 늘 밀물처럼 밀려오기 마련이고, 또 다시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녹음을 앞두고 있는데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을 때의 압박감이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며칠만 견디자’ ‘한 달만 참고 살자’는 곧 ‘나는
인도에도 겨울이 있다. 인도는 살인적인 더위로 악명이 높은 곳이지만, 12월과 1월 사이의 몇 주 동안은 기온이 급강하한다. 갑작스러운 기온 급강하는 심한 안개를 유발한다. 겨울의 북부 인도, 특히 델리는 짙은 안개와 매연으로 인한 시계 불량으로 항공기 이착륙 금지는 물론 철로 운송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델리로 가는 항공기의 동계 스케줄이 바뀌는 이유이기도 하다.해 떨어지고 난 이후부터 다시 해뜨기 전까지 최저 온도가 섭씨10도 안팎으로 내려가면 인도인들이 느끼는 겨울이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숙자들에게 이 시기는 연중 최악의
설 연휴가 끝났다. 입춘 후에 찾아왔던 작년과 달리 올 설은 2월의 문턱을 넘지 않고 서둘러 왔다 갔다. 아름다운 날들은 분주히 저무는 법이어서 명절 연휴의 끝은 본시 시작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성큼 사람들의 눈앞에 섰다. 차의 트렁크 문은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경계 사이로 내려앉았고, 남는 자들과 떠나려는 자들은 경계의 양쪽에서 긴 포옹을 나누었다. 떠나는 이들을 실은 차의 뒤꽁무니가 마을 어귀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남은 자들의 등은 돌아서지 않았다. 남은 자들은 언제나 떠나는 자들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떠
지난 12월은 무척이나 바빴다. 원래 하던 마감에, 후배가 출산휴가를 가면서 도맡게 된 새로운 책 두 권을 추가로 마감하고, 몇몇 창작자들과 함께 새로 작업하는 온라인 미디어에 컨텐츠를 채워넣었다. 새로 일을 맡기고 싶다는 전화가 오면 바로 미팅을 나갈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하고 이메일로 기획서를 보내주었다. 그 와중에 장강명 작가가 기획한 ‘한국 소설이 좋아서’라는 이북 서평집에 필자 중 한 명으로도 참여했다.사생활도 바빴다. 9개월 된 아기 - 그러니까 거의 하루 종일을 기어 다니며 사방팔방 집안을 헤집고, 뭐든 짚고 서서 손에
새해 아침 산에 오른다. 밑을 내려다 본다. 산은 산으로 이어지고, 물길은 또 제 몫들을 모아 품을 넓힌 다음 바다로 흘러든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발문이 문득 떠오른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 >이라 했던가.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이 단순한 진리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작년이었고 과거였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권리를 도둑맞았다. 국정 농단이었고, 국민은 모욕당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이어 요즘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가 보다.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군사독재 시절
“요즘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라디오를 들어주시는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시작해서 “제 마지막 멘트는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나이 먹은 DJ의 애교로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라디오 만세!” 라고 멋진 수상소감을 밝힌 사람은 다름 아닌 라디오의 전설 DJ 배철수다. 몇 년 후면 30주년이 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DJ 배철수는, 그때 또 한 번 전설로 기록 될 거다. 수많은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이런저런 세월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는걸 보면,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
텔레비전 토크쇼 ‘비정상 회담’을 즐겨 본다, 세 명의 MC와 한국에 살고 있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 10여명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비정상 회담은 나라의 정치적 지도자, 우두머리들의 회담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정상 회담’이라는 용어를 교묘히 바꾼 말로, 앞에 ‘아닐 비’(非)를 붙여 ‘정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회담’이라는 뜻과,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색다른(Unusual) 사람들의 회담’이라는 뜻 모두를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하겠다.여러 나라 출신의 젊은 외국인 출연진의 재기발랄
1박 2일의 양평 송년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배와 함께 수종사에 들렀다. 12월의 것이라기엔 햇볕이 너무 좋았던 때문이었다. 번잡한 서울의 일상으로 순순히 귀순해야 할 이유를 딱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발 610m의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로 이어진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좁은데다 가파르게 굽이져 위험해 보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차와 아래에서 올라가는 차가 서로 마주칠 때마다 아슬아슬 곡예 운전이 펼쳐지기 십상이었다. 그런 길이 1km 넘게 산에 새겨져 있었다. 차의 소통을 돕는 비포장 공터마다 차
나는 귀가 상당히 예민한 편이어서 작년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누군가의 구두 굽 갈 시기를 귀로 알았다. 그런 건 보지 않아도 안다. 구두 굽이 닳아서 그 안에 있던 못머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 ‘저 여자는 게으르군’ 단정짓기도 했다. 남동생에게, 다른 건 다 괜찮지만 구두 굽이 다 닳은 채로 딱딱 소리 내며 발을 끌고 다니는 여자는 멀리하라고 편견 가득한 조언을 한 적도 있다. 그런 여자들이 보풀이 잔뜩 난 스웨터를 입고 대체로 일도 대충하고 자기 관리도 엉망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금은? 남의 발굽 소리 들어본
노래는 찰나의 순간을 소환하고 함께 추억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어떤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계절을 함께 느끼기도 하며, 지금 이 순간을 공유하기도 한다. 요즘같이 나라가 어지럽고 마음이 답답할 땐, 김광석의 목소리나 양희은, 전인권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양희은씨가 직접 부른 ‘아침 이슬’이나 ‘상록수’를 듣고 가슴이 울컥한 사람들이 많았고, 전인권의 목소리로 울려 퍼진 ‘애국가’와 ‘행진’은 큰 울림을 주었다. 100여명의 대중음악인들이 함께 참여한 ‘길가에 버려지다’는 우리의 마음
김수영의 시 의 일부분이 문득 떠오른다.지금 한국은 풀의 바다다. 그저 풀도 아니고 속까지 바싹 말라있는 삭정이 같은 풀의 바다다. 민중의 바다다. 민중이 내밀고 있는 촛불의 바다다.어느 국회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억압의 바람은 다시 촛불을 들불처럼 번지게 하고 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농단에 대한 불같은 경고다.어떻게 한 나라의 국정이 한낱 아녀자와 펜싱선수, 광고쟁이의 책상 앞에 놓이고 판단되고 결정될 수 있었단 말인가. 더러 최순실을 고려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