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일부 국가들은 최근 농민들이 사용하는 경유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없애는 등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삭감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 일부 국가에서는 아산화질소 배출량을 50% 낮추도록 하는 규정이나 비료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30%를 줄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를 두고 독일과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농부들은 정부의 잘못된 탄소중립 정책이라며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농부들이 지출해야 할 비용이 늘거나, 농작물 수확량이 줄어드는 등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 재생에너지 업계는 정부와 출력제어 보상에 대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시행된 ‘3020 재생에너지 이행계획’의 영향으로 국내에도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봄·가을철 최저수요 시기에는 오히려 태양광 과잉출력이 발생하고, 소규모지만 출력제어가 예상되고 있다. 이를 두고 사업자들은 출력제어에 대한 보상을 수년 째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와 지속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다. 이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과잉 보급으로 계통에도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동안 우리는 뒤늦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확산에 다소 조급한 모습을 보여왔다.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보급했냐는 실적에만 치중하다 보니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했고, 그 결과 태양광 밸류체인이 대부분 중국에 잠식당하는 문제가 생겼다. 최근에는 풍력발전 분야마저 중국산과의 경쟁이 치열하다.

재생에너지가 전력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무작정 숫자만 늘리다보니 특정 지역에 태양광 발전이 집중됐다. 계통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태양광 사업자들도 대책없이 늘어난 설비 탓에 출력제어의 대상이 되면서 정부와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비단 출력제어 뿐인가. 최근 도입하려는 재생에너지 입찰시장 등에서도 정부와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이 같은 분쟁으로 인한 정부와 사업자들의 피로감이 커지는 추세다.

재생에너지 보급 활성화에 가장 많은 힘을 준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실수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치며 환경단체의 의견을 주로 들었을 뿐 전력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조직된 탄소중립위원회에는 전력전문가의 비중이 매우 낮았고, 또 에너지전환으로 피해를 입는 발전업계 관계자들 역시 포함되지 못했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기 시작한 초기에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나 우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대책을 마련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가 놓친 작은 이야기들이 이제는 거대한 분쟁으로 돌아와 전력생태계를 좀먹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늦게 시작한 탓에 속도만 무모하게 높인 탓이다. 수십년을 탄소중립을 준비해 온 유럽조차 최근 전쟁 등으로 인한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 친환경 정책에 피로감을 느낀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고, 선거를 앞둔 선진국들은 이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공약에서 우선 탄소중립의 속도를 늦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조차 그러할진대 몇 년 만에 수십년을 따라잡으려는 한국에서의 부작용은 어떻겠는가.

아프리카 속담에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빨리 가려다보니 오만하고 독선적이었다. 전력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동안 쌓인 부작용은 이제 폭탄이 돼 우리 사회에 투하됐다.

가장 중요한 국민들과의 공감대 형성도 이뤄지지 않았다. 탄소중립은 돈이 든다. 에너지전환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의 확대를 국민들에게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저 깨끗한 에너지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정보만 얻었던 게 사실이다. 그 이면에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고통은 숨겨놓았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내놓고 있는 이번 윤석열 정권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문재인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권 역시 에너지정책의 거대한 흐름을 급격하게 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과연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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