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새벽 6시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지역을 기습 공격했다. 이들은 로켓포 수천 발을 쏘고, 민간인 포함 1000여명을 학살했으며, 150명이 넘는 인질도 끌고 갔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전투기와 미사일을 앞세워 압도적 화력으로 가자지구를 초토화시키고 있으며, 지상군 투입도 목전에 두고 있다.

세계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전쟁의 다음 쟁점은 이란 등 다른 아랍국의 참전 여부다.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국들은 종파간 분쟁이 심하기는 해도 종교간 분쟁이 벌어지면 하나로 뭉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강화될 수록 다른 아랍국의 참전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으며, 그 분기점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강제 진입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팔 전쟁에 다른 아랍국이 참전한다면 이는 5차 중동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중동은 세계 원유의 1/3을 공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중동에서 70% 이상의 원유와 35%의 가스를 들여오고 있다. 중동전쟁이 세계 에너지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우리나라는 석유, 가스를 100%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팔 전쟁을 매우 엄중하게 바라보고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의 대응을 보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로코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장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선진국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우리보다 성장률이 높은 국가는 별로 없다. 반도체 업황은 회복 국면에 진입했고, 물가도 선진국이 5~6%인데 한국은 2~3%로 중동문제 등 아직 불확실성이 있지만 회복 국면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발언했다.

모래성 같은 발언이다. 반도체산업도 결국 석유·가스가 있어야 굴러간다. 우리나라의 석유·가스 자원개발률은 고작 10%밖에 안된다.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공기업인 한전과 가스공사가 국제 가격 상승부담을 모두 떠안았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석유·가스 수급점검회의에서 “중동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67%와 가스의 37%를 공급하는 지역”이라고 언급했다. 너무 안이한 인식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8월 중동산 원유 수입비중은 82.1%이며, 올해 평균 비중도 70%를 넘는다. '67%'는 2022년 연평균 비중이라고 한다. 현재 중동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핵심인데, 2022년 평균 통계를 사용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팔 전쟁 같은 에너지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벤트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해 놓은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이 국회에 첫 발의된지 1년이 넘었지만 이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 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데도 사실상 여야 모두 에너지안보에 큰 관심이 없어 계속 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에너지안보는 경제뿐만 아니라 민생,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의 기반이다. 에너지안보를 다지지 않고 경제성장을 논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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