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풍력시장은 수년간 지지부진…"대만ㆍ日 등 주변국으로 떠나나"
2023년부터 본격적인 엑소더스 전망…풍력 후진국 전락 위기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 중요한 국내 업계도 우려, 정부 심각성 인지해야

서남해 해상풍력발전단지(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양진영 기자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풍력발전 업체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지지부진한 한국의 풍력발전 시장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26일 다수의 글로벌 풍력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에 진출한 해외 풍력업체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며 “2023년을 기점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곳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풍력발전 사업 과정의 복잡한 인허가 절차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상풍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계통연계 신청 ▲발전단지 설계 ▲개발행위 허가 ▲주민보상 협의 ▲특수목적법인(SPC) 구성 ▲발전단지 건설 등을 거쳐야 한다.

풍력발전 인허가는 말단의 지자체부터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방부,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 부처까지 거치는 복잡한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풍력발전 개발은 발전사업 허가에서 개발행위 허가까지 평균 6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지난 2021년 5월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풍력발전 보급촉진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풍력 선진국인 덴마크 수준(평균 34개월)으로 기간을 축소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해관계자와 부처 간의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하면서 특별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특별법 통과를 반전의 기회로 삼고 손꼽아 기다리던 글로벌 기업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새다.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와 기조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글로벌 풍력 기업은 그동안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해온 정부의 기조를 한국에 진출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요소로 꼽아왔다.

그러나 풍력발전 시장을 위해 정부가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않았고 원전 생태계 복원을 외쳐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함에 따라 정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다.

울산에서는 현 정부와 대통령과 같은 당의 시장이 나서 해상풍력의 미래로 꼽히는 부유식 풍력발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다.

한국 업체와의 협업이 어려운 부분도 단점으로 꼽힌다. 

글로벌 풍력 업체들은 한국에 진출하며 국내 업체들과의 협업을 추진했지만 한국 업체들의 태도가 유난히 까다롭다는 게 해외 업체들의 하소연이다. 

유명 글로벌 풍력 업체 A사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도 국내시장에 대한 확신이 없고 정부의 눈치를 보다 보니 글로벌 기업과의 협상에서 미적지근하게 대한다”며 “사업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니 글로벌 EPC의 관심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운데 아시아를 중심으로 신흥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부분도 글로벌 풍력 업체들의 탈한국을 가속화할 수 있는 잠재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대만은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목표를 20%로 설정하고, 해상풍력발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일본은 2030년까지 육상 및 해상에 10GW 규모의 풍력발전을 설치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주변국들이 적극적으로 풍력발전 시장을 확대함에 따라 굳이 한국 시장만을 고집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글로벌 풍력 업체 B사 관계자는 “이미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기업도 있을 정도”라며 “2023년을 한국 풍력시장에 남아 있을 마지노선이라 보고, 인근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저울질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풍력 업체 C사 관계자 또한 “한국의 풍력발전 프로젝트 규모는 주변국들보다 작은 편으로 이미 많은 경험을 갖춘 유럽 EPC는 사업이 더 쉽고 규모가 큰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막상 나중에 한국에서 풍력발전을 크게 확대한다고 결정하더라도 설치선과 인력들이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여의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풍력발전 업계의 이 같은 기류에 대해 국내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풍력터빈의 기술 경쟁력이 낮은 국내 풍력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을 중심으로 전선, 타워, 블레이드 등 그 외 기자재의 파이프라인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풍력터빈 기술력에서는 뒤처졌지만 세계에서 인정받는 다양한 풍력 기자재를 갖추고 있다”며 “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여나가야 하는데 글로벌 기업들이 떠나고 풍력발전 후진국으로 인식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시장에 지친 기업들이 한두 곳 떠나기 시작하면 엑소더스가 일어날 것”이라며 “정부가 정말 풍력발전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면 이제라도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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