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침수된 ‘기아차 EV6 배터리팩’ 열어 봤더니…
팩 겉면에 흙 덕지덕지, 방수처리로 내부는 ‘멀쩡’
남준희 대표 "친환경차 핵심부품 재사용시장 빨리 열려야"

지난 16일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굿바이카 폐차장에서 강남 폭우 때 침수된 EV6 전기차의 배터리팩을 열어보는 작업이 진행됐다. 팩 겉면에는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안쪽은 물 한방울 들어가지 않은 멀쩡한 상태가 확인됐다. 
지난 16일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굿바이카 폐차장에서 강남 폭우 때 침수된 EV6 전기차의 배터리팩을 열어보는 작업이 진행됐다. 팩 겉면에는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안쪽은 물 한방울 들어가지 않은 멀쩡한 상태가 확인됐다. 
배터리 팩 겉면에 붙은 흙이 침수차임을 금방 알게 한다.
배터리팩 겉면에 붙은 흙이 침수차임을 금방 알게 한다.

지난달 8일과 9일 서울지역에 공식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시간당 최대 141.5mm, 하루에만 381.5mm 비가 왔다. 저지대에다 침수 대책이 미흡했던 강남역 일대는 삽시간에 물바다가 됐다. 지하주차장에도 빗물이 들이닥쳐 주차 차량이 모두 침수됐다. 이날 폭우로 보험사에 접수된 침수 신고만 4000여건에 이르렀다. 침수차 중에는 전기차도 꽤 있었다. 

지난 16일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굿바이카의 폐차장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강남 지하주차장에서 이틀 동안 완전히 침수됐던 기아차 전기차 EV6의 배터리팩을 열어보는 것이다. 과연 배터리팩 안에도 물이 들어 왔을까. 

굿바이카 직원에 따르면 이 차량은 출고된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차량 내부의 비닐이 뜯겨 있지 않아 직원이 직접 벗겼다고 한다. 

차량 하부에서 탈거한 배터리팩의 겉면에는 마른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침수차량 것임을 금새 알 수 있었다. 

팩 상단에 둘러진 수십개의 나사를 풀고 뚜껑을 열자 놀랍다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겉면과 달리 내부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배터리 모듈과 부품들이 들어 있었다.  

굿바이카 직원이 GIT사의 기기를 통해 배터리 상태를 스캔하고 있다.

직원이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팩의 어두운 구석까지 샅샅이 살피더니 "깨끗하네요. 물이 들어온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직원은 배터리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GIT사의 스캔기기를 가져와 점검을 시작했다. 해당 기기는 배터리팩의 BMS 접속을 통해 전체 전압, 충전률, 각 셀의 전압, 온도, 부동액 수위 등 다양한 항목의 상태를 스캔하고 자동으로 항목별 고장 여부도 알려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직원은 "충전률이 94.5%로 완충 상태입니다. 밤새 충전을 완료한 상태에서 바로 침수된 모양이네요. 셀 전압과 온도도 정상이고 고장코드도 안 떴습니다"라고 말했다.

굿바이카는 이 차량을 보험사 경매를 통해 구매했다. 정상 상태가 확인된 배터리는 다른 곳에 판매할 예정이다. 배터리 셀은 SK온, 모듈 및 팩은 현대모비스에서 제작했다.

남준희 굿바이카 대표는 "전기차 배터리에는 침수 규정이 있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틀 동안 물 속에 완전히 잠겼던 차량의 배터리치고는 너무 깨끗한 상태라서 적잖이 놀랐다"며 "예상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 시행세칙' 별표1 48호-구동축전지 안전성시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는 침수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조건은 배터리를 수조에 넣고 완전침수 1시간 동안 발화 및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지난달 초부터 이달 초까지 전국에 내린 폭우로 1만대가 넘는 차량이 침수됐다. 이 가운데 전기차, 수소차도 꽤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완전침수차량은 무조건 폐차시켜야 한다. 이에 따라 상태가 멀쩡한 배터리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 규정으로는 이 배터리를 마땅히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전기차에서 탈거한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에 관한 규정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관련 규정을 마련 중에 있으며 이르면 내년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굿바이카를 비롯해 현대차, SK온, 피엠그로우 등 여러 기업들이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 대표는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 폐차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배터리, 구동모터, 스택 등 상태가 멀쩡한 핵심부품을 재사용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너무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그는 "전기차에서 배터리 다음으로 중요한 부품이 차를 움직이게 하는 구동모터입니다. 구동모터의 사용연한은 거의 반영구적이며 활용가치가 매우 높지요. 그런데 이 구동모터를 재사용할 수 있는 규정이 없습니다. 현재 제주도 생산기술연구원에서 관련 규정을 마련할 계획으로 알고 있고 있어요. 하루 빨리 만들어져서 친환경차 핵심부품의 재사용률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굿바이카는 경기도권에 친환경차 전용 폐차장을 건설 중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