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맥스터 준공 이어 한빛·고리 등 저장시설 포화 예정
특별법 처리보다 규제기준 정립, 공급망 구축 등 과제 지적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맥스터 전경.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맥스터 전경.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는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978년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가동된 이래 정부는 처분장 확보를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왔다. 그러나 총 9차례에 걸친 처분장 확보 시도는 지역 주민의 격렬한 저항 속에 무산되기 일쑤였다.

그사이 26기의 원전(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포함) 내 수조에 임시 저장된 사용후핵연료가 나날이 쌓이면서 오는 2031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고리, 한울원전 등에 이르기까지 순차 포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월성원전 2단계 맥스터 준공에 이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다시 저장시설 포화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

모두가 처분장 건설이라는 국가적인 난제 해결에 골몰하는 가운데 각 원전 내 수조에 임시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꺼내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저장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시급한 당면과제로 꼽히고 있다.

◆월성 맥스터는 신호탄에 불과, 이제는 경수로 원전 차례다

지난달 준공된 7기의 월성원전 맥스터는 현재 전량 수조에 보관 중인 경수로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문제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월성원전 2단계 맥스터 증설 사업은 지난 2020년 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데 이어 지역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찬반 논란이 과열되며 착공이 여러 차례 지연되곤 했다.

당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정의에 대한 법적, 제도적 미비가 주요한 갈등 원인으로 떠올랐다.

일부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는 맥스터를 방폐물유치지역법 18조에 따른 '유치지역에 건설이 금지된 사용후핵연료 관련시설'로 해석해 경주에 임시저장시설을 짓는 것은 법령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찬성 측은 원안위의 임시저장시설 인허가 결정과 법제처의 법령 유권해석 사례를 근거로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은 원자로의 안전에 관계되는 '관계시설'에 해당하므로 맥스터 건설은 합법적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그 후 맥스터 증설 사업은 경주지역 주민을 대표해 선정된 시민참여단 145명 중 81.4%가 증설에 찬성하면서 급물살을 탔지만, 임시저장시설을 둘러싼 법적 대립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중간저장시설 가동 이전까지 원전 부지 내에 저장시설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되 안전성이 입증된 건식저장 방식을 택할 것을 제안했다.

문제는 건식저장 방식이 맥스터 증설 당시 쟁점인 원자로의 안전에 관계되는 '관계시설'에 해당할 여지가 적다는 점이다. 한빛원전을 비롯한 나머지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하려 해도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원전에 저장돼 있거나 향후 발생할 사용후핵연료 다발의 규모와 좁은 원전 부지를 고려할 때 결국 외국처럼 복층 형태의 건식저장 방식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기존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해 임시저장시설의 성격을 명확히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빛·고리 이어 한울원전까지…순차 포화 앞둔 사용후핵연료

월성원전은 우여곡절 끝에 준공된 2단계 맥스터 덕택에 월성 2~4호기의 설계수명 만료 기한인 오는 2029년까지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3분기 기준 98.8%의 포화율을 보인 월성원전은 큰 걱정거리를 덜게 된 셈이다.

이제 시선은 오는 2031년 포화가 예상되는 한빛원전을 비롯한 고리(2031년), 한울(2032년), 신월성(2044년)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원전 본부별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은 ▲고리 6737다발 ▲한빛 6697다발 ▲한울 6344다발 ▲신월성 658발 다발 ▲새울 297다발로, 경수로 원전은 총 2만733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했다. 설계수명 만료까지 3만7745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추가로 발생해 누적 발생량은 5만8478다발로 예상된다.

전문가는 이처럼 많은 양의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저장하려면 복층 형태의 건식저장 방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일례로 프랑스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기 전문기업인 오라노티엔(Orano TN)은 일명 옥외 수평모듈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2~3층 규모의 콘크리트 시설물 내에 사용후핵연료가 담긴 저장용기를 수평으로 눕힌 채 층층이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화재나 지진, 항공기 충돌 등 외부재해에 대한 안전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미국처럼 드넓은 사막지역에 저장시설을 갖출 수 없는 우리나라의 사정을 고려하면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용기를 아파트 형태로 쌓아올리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며 "화재나 지진, 항공기 충돌 등 외부재해에 대한 안전성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오라노티엔을 비롯한 외국기업이 건식저장용기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점이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건식저장용기는 임시저장과 중간저장, 영구처분까지를 고려하면 대략 3만개 이상의 시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국내 후행핵주기 산업을 육성하는 측면에서도 지나치게 외국기업에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공급망 구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특별법만 바라볼 건가…규제기준 등 현안도 '빼곡'

지난해 하반기 김성환 의원이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만 된 채 법안 심사로 이어지지 않자 특별법 처리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건식저장시설 건설은 계획과 설계, 인허가, 제작 및 시공까지를 고려하면 최소 8년이 소요된다.

당장 건설에 착수해도 오는 2031년 한빛원전이 포화되는 시점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인데 특별법 처리에만 기대를 걸고 있다가는 자칫 사용후핵연료가 오갈 곳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규제기관이 건식저장시설과 관련된 안전규제 기준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입법이 늦어지더라도 규제기관이 원자력안전법 하위규정을 손보는 작업은 충분히 재량껏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규제가 진흥을 이끄는 원자력산업의 특성상 더 이상 건식저장시설 구축이 늦어지지 않도록 규제기관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규제기준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로 국내 후행핵주기 산업 육성을 거론한다.

복수의 국내기업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용기 제작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특별법 처리와 함께 규제기준 정립이 늦어지면서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문가는 "일부 국내기업이 북미지역이나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 발주되는 건식저장용기 수주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규제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들 기업은 설계에 착수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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