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현실 동떨어진 ‘금속 가공·설비’ 기준 전면 삭제
안전 직결된 ‘접속반’ 중심으로 공정도 단순화
법원, 관련 소송서 잇따라 ‘기업 손’...조달청 패소율 81% 달해
업계 “하자 있는 기준에 의한 처분 철회해야”

[출처=중소벤처기업부]
[출처=중소벤처기업부]

태양광발전장치 직접생산확인기준(직생기준)이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수년간 산업 현장을 억눌러 온 ‘구조물 직접생산’ 조항이 전면 삭제됐다.

업계에선 이번 개정을 두고 행정청이 규제 오류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문제가 있던 기준을 근거로 기업을 제재하는 행태도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9일 직생기준 개정 고시를 통해 태양광발전장치의 구조물 관련 생산설비와 생산공정을 모두 삭제했다. 그동안 업체들에게 요구해 온 ▲커팅기 ▲용접기 ▲드릴머신 등 구조물 제조 설비는 물론 ‘설계→가공→조립→배선→시험’으로 이어지는 금속구조물 기반 공정도 기준에서 전부 빠졌다.

또 개정 후 기준은 필수 공정을 ‘접속반 조립·배선·시험’으로 단순화하며 기준의 적용 범위를 접속반 중심으로 재정의했다. 태양광발전장치의 실제 전기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만 남긴 셈이다.

태양광 구조물 직접생산 기준을 둘러싼 제도적 혼선은 이미 2년 전부터 업계를 뒤흔들어 왔다.

조달청과 중소기업벤처부 등은 대규모 공정조달 위반 조사를 시행해 우수조달기업 및 다수공급자계약기업 전체 38개사에 대해 위반이라 판정하고, 32개 기업에는 계약해지·입찰제한·직생신청제한 등 다중 제재를 내린 바 있다.

이에 제재·비제재사를 포함한 조달 기업들은 올해 초 문제가 된 직생 규정과 해석 자체에 오류가 있다며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개정안을 도출·제출했지만, 실제 개정은 10개월 가까이 가시적인 진전이 없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불명확한 규제가 2년 가까이 유지된 채 수십 개 기업이 장기 제재 국면에 방치되고 있었다.

앞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접생산기준은 규제나 처벌의 도구가 아니라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제도 유지를 위한 최소 진입 조건”이라며 “억울한 피해가 생기면 중기부가 앞장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개정은 ‘명백한 오류의 시정’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법무법인 집현전은 종전 기준이 금속구조물 공정에 물리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배선’과 ‘시험’을 포함시키는 등 태생적인 모순을 품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업계 관계자도 “행정청이 고시 개정을 통해 규제를 삭제했다는 사실 자체가 해당 규제가 명확성 원칙을 위배했음을 정부가 사후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하자 있는 행정행위를 근거로 한 처분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법부의 판단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담당 규제 기관인 조달청은 올해 10월까지 진행된 태양광 직생 위반 관련 1심 행정소송 11건 중 9건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기준 자체의 불명확성, 중기부의 유권해석 변화, 업계 전반의 관행적 신뢰 등을 이유로 기업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묻기 어렵다는 결론을 잇달아 내리고 있다. 통상 80% 이상의 승소율을 기록해 온 조달청이 오히려 81.8%의 패소율을 보인 것은 제재 처분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풀이된다.

문제는 기준이 정비된 상황에서 조달청이 기존 처분에 대한 항소를 이어갈지 여부다. 실제 조달청은 패소한 9건에 대해 최근까지 항소 또는 법무부 항소 지휘를 요청하며 기존 제재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선 정책적 결단을 통해 소송을 종료해야 한다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앞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조달청의 패소 요인은 재량권 일탈 남용 다섯건, 처분 사유 불인정 4건이었다. 직생 위반이 인정되지 않거나 처분이 과도했다는 판단과 함께 조달청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라며 “항소를 이어가는 것은 기업을 소송으로 소모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당시 백승보 조달청장 역시 “무조건 3심까지 가겠다는 뜻은 아니다. 판결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달청이 항소를 이어갈 경우 개정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재의 기준이 개정됐기 때문에 처분 근거가 사라졌고, 종전의 기준을 적용해 제재를 지속하는 것은 법치행정 측면에서 형평성과 정당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또 직생 제도의 목적이 중소기업 판로 보호와 시장 건전성 확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제도의 행정적 목적이 이미 달성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준이 합리적으로 개선된 상황에서 경영을 압박하는 것은 제도 취지와도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직생기준 개정은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잘못된 규제를 과감히 도려낸 ‘적극 행정’의 사례지만, 그 마무리는 소모적인 법적 분쟁을 멈추는 것이 돼야 한다”며 “정부도 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기 이전에 바로잡힌 기준에 발맞춰 행정 처분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는 것이 정책 일관성 측면이나 기업 경영 불확실성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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