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타계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아직 오자와를 능가하는 지휘자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자와는 지난 2002년 한국이 자랑하는 정명훈 지휘자도 한 번도 지휘한 적이 없는 빈필 신년음악회를 화제 속에서 지휘했다.

당 타이 손이 쇼팽 콩쿠르에서, 정경화가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 동양인이라는 편견은 없었다. 오로지 실력만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휘는 테크닉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악과는 다르다. 악기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절대음감도 필요하지만, 곡 해석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오자와는 ‘동양인이 베토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편견과 싸워야만 했다.

정명훈 지휘자는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때는 ‘동양인 운운’하는 이런 말은 쑥 들어갔다. 오자와가 선구자로서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오자와는 음악가로서 동양인의 가치를 몇 단계 올렸다고 볼 수 있다.

해석, 시험, 표준 이런 것은 실력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신뢰에 바탕을 둔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분야는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에서 움켜쥐고 신흥국가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 선진국은 제도와 시험 같은 규칙을 선점해서 자국의 기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그만큼 여기에 끼이지 못하는 국가들은 불리한 상황에서 경쟁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런 시험 인증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2번째의 위치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전력기기 인증 분야다. 중국은 따라올 수 없다. 중국은 STL 정회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도 내수용은 상관없으나 수출하려면 전기연구원과 같은 STL 회원 기관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베를린필 상임지휘자를 제외하면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인 빈필 신년음악회 지휘자로 오자와가 선정될 때 '빈 출신' 혹은 '빈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배운 사람'으로 지휘자를 한정했던 보수적인 빈 음악계의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오자와의 실력과 자격은 차고도 넘쳤다. 불과 38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명문 교향악단 보스턴 심포니의 상임지휘자가 됐고 29년이나 장기집권을 했던 오자와가 만주국에서 태어났고 일본에서 음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논쟁거래가 되지 않았다. 오자와의 장기집권에는 소니와 같은 일본기업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다. 고급문화인 클래식에 자국인이 미국 명문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제품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서재훈 전기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전기연구원이 STL정회원이 되고 나아가 세계 2위의 전력기기 시험인증기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오자와 이전에 유럽의 명문악단을 지휘했던 동양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국가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안익태 선생은 기업 후원 대신 대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추천서를 가지고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베를린필 등 유럽 명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안익태와 오자와는 29년의 나이 차이가 있고 안익태 말년에도 둘이 만났다는 기록은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정명훈 지휘자가 오자와에 감사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오자와도 안익태 지휘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오자와가 개인적인 자리에서 혹은 속마음으로 감사했을지도 모르지만 알 수는 없다. 마에스트로 오자와가 살아계실 때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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