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가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생각해 본다. 요즘 청소년들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주로 어떤 분야의 책을 읽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의 삶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못 궁금할 때가 있다, 지금은 50~60대가 훌쩍 넘은 중장년 세대의 젊은 시절과 비교해 보면 너무도 격차가 심해 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청소년들의 지식과 정보, 교양의 터득은 책과 종이 신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세대와는 달리 세칭 ‘Z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등의 청소년과 포노 사피엔스에 속하는 세대들은 지식과 교양, 생활수단,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일상의 업무수행 등 무수한 정보 대부분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 같은 미디어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뉴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은 개인의 취향에 맞는 오락과 자신이 만들어 낸 문화와 예술적 콘텐츠를 지인들과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지만 이러한 콘셉트가 과연 그들의 정서 함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표지의 책 한권을 발견 했다. 5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권고로 읽었던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헷세의 단편소설 ‘데미안’이었다. 

열 살의 소년이었던 ‘싱클레어’가 20대의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친구 ‘데미안’을 만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과 대화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무의식의 내면을 깨우치게 하는 철학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쯤 기성세대가 되어 있을 이들이 청소년 시절에 한번쯤은 읽어 보았을 책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 소설은 청소년기에 접어든 독자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으며 소설이 담고 있는 상징성은 무엇이었을까. 내용은 어느 정도 기억이 나기에 추억어린 마음에 속독으로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당시에는 참으로 지루한 소설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성장통을 앓는 청년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과 닮은꼴이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특별하게 정신이 번쩍 드는 대목은 없었지만 큰 강이 바다로 향해 천천히 흘러가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미건조하게 전개되는 소설 속 하나의 과정 에서 ‘데미안’이라는 청년이 툭 내뱉는 대화의 내용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생각을 흔들어 놓아 가슴속에서 살아 숨을 쉬게 한다. 가령 전쟁의 와중에 징집이 되어 군 복부를 하는 과정에서도 ‘거대한 한 마리의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우고 있는 것인데 그 알은 세계였고 이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조차 거대담론적인 하나의 성장통으로 승화시킨 대목이다. 즉 성장하는 과정은 세상에 태어난 어느 누구에게나 아프고 괴롭다는 것을 청소년들에게 보편적 논리로 접근하여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지만, 그 또한 마음대로 되질 않아 좌절하고 있는 청년들도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데미안’이 이야기 했지만 알에서 태어나려는 새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는 젊은 날의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이 산산조각 나도록 세상이라는 험한 파도와 싸우며 맞서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겪는 상처와 아픔은 기성세대들도 이미 겪으며 살아 와 잘 알고 있다. 젊음의 과정에서 성장통이 얼마나 아프고 아린지도 잘 알고 있다. 몇 번의 노크 끝에 그 알이 깨지지는 않는다. 사력을 다해 머리로 치받고 입으로 물어뜯어야 알은 깨진다. 그 알이 깨지기까지 많은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데미안’은 청년들에게 말한다. ‘젊다는 것은 축복이며 그 젊음의 방황과 끝없는 목마름은 한 인간의 생애에 있어 가장 소중한 체험’이라는 것이다. 도전 정신이 없이 편안함에 안주하고 현실에 쉽사리 타협하는 청년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높고 깊은 산속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나무들 같은 싱싱한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청년은 푸른 갑옷을 입은 전사(戰士)이며, 탐구자이며 개척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