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헌법은 헌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1949년 당시 서독에서 ‘기본법’(Grundgesetz)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1990년 통일 이후에도 ‘헌법(Verfassungsrecht)’으로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독일 헌법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본법은 흔히 모법(母法)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다른 법률의 근간, 토대가 된다는 뜻이다. 산업과 관련한 기본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전기산업은 그동안 기본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기산업의 무게감이나 중요성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류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이용해 문명을 일궈냈듯 전기산업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전기사업, 특히 한전을 중심으로 성장과 진화를 거듭했다.

1961년 군사정권에서 제정된 전기사업법은 그래서 전기산업의 기본법처럼 작용해왔다. 오랫동안 전기산업은 한전과 이음동의어였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기후변화와 전쟁, 팬데믹 등에 따라 한정된 화석연료의 가격이 요동치며 에너지 위기가 가속화되고 급기야 국가의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에너지안보 시대가 도래했다.

전기산업도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인류가 지옥문을 열었다”(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기후 변화로 세계가 붕괴하고 있으며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프란치스코 교황)와 같은 경고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2023년 세밑 전기산업계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마침내 전기산업발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제정된 것이다. 2016년부터 전기관련단체협의회에서 논의가 시작된 기본법은 이후 전기업계의 숙원 과제 중 하나로 부상했다.

2019년 국회에서 처음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합의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다 21대 국회에서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됐다.

전기산업 전체를 관통하게 되는 ‘전기산업발전기본법’은 전기사업법 제정(1961년) 이후 60여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는 격이다.

기본법이 생기면 5년마다 전기산업발전 기본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추진할 수 있게 된다.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또 전기기술의 연구개발, 인력양성, 해외진출, 디지털 전환 등 정부 지원의 폭도 넓어질 전망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제정된 전기산업발전기본법이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이슈에서 전기산업의 존재감과 책임감을 재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더불어 전기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과 확장, 전기의 중요성,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제고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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