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를 해도 남는 게 없다. 자금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은 대형업체조차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비상상황”이라고 말했다.

흑자도산(黑字倒産)은 말 그대로 흑자를 내면서도 도산하는 것을 말한다. 흑자와 도산이 함께 정립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실제로 종종 일어난다.

결정적 원인은 ‘자금 회전’ 때문이다. 보통 도산은 경영 부진에 따른 과중한 적자 때문이지만, 흑자도산은 재무제표상에는 문제가 없는 건전 경영인데도 회전자금 변통이 어려워 초래된다.

거래처 부도나 단기부채를 변제하기 위해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흑자도산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사채시장이나 제2금융권에서 급전을 받아 단기채무를 상환하는데 제2금융권이나 사채시장에서 돈줄이 막히면 해법이 없다.

장부상 흑자라 해도 현재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해 은행에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하지 못하면 부도를 맞기도 한다.

실제로 역대급 고금리에 대출까지 여의치 않으면서 국내 건설시장은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 PF연체율도 3년 전 3%대 수준에서 최근 17%대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평균 연 4.8%였던 증권사 부동산 PF대출 금리도 연 7.1%까지 뛰었다.

중견 건설사들의 회사채 표면이율도 8~9%대 고금리를 기록하고 있다. 현장에선 10%가 넘는 금리도 흔하다. 자금 사정이 더 열악한 중소기업들에겐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미 중견 건설사들의 폐업은 17년 만에 역대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 올 9월까지 종합건설업체의 총 폐업 건수는 400건을 넘어 200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운 수치로, 하루에 1.5개꼴로 건설사가 문을 닫는 셈이다.

더 암울한 것은 내년에도 사정이 호전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국내 건설수주는 전년 대비 1.5% 감소한 187조3000억원, 건설투자도 전년 대비 0.3% 줄어 260조7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건설사들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협력관계에 놓인 전기공사업체에도 전가되고 있다. 며칠 전 본지가 보도한 중견 전기공사업체의 사례가 단적인 예다. 해당 업체는 2년 전 공사계약 당시에 비해 현재 인건비와 자재비가 40~50% 이상 인상됐다며 폐업 위기에 몰렸다고 하소연했다.

건축전기공사업계의 부실은 전기공사업계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통신·소방·기계 등 관련 시설단체의 적절한 공동대응도 필요해 보인다.

기업들도 현금 유동성 확보나 사업 포트폴리오 수정 등 불황에 대비한 맞춤형 전략이 요구된다.

정부 역시 인프라 투자와 함께 건설금융 시장 안정화를 위해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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