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리스크랩 소장
김훈 리스크랩 소장

얼마 전 어머니가 내 팔 안에서 숨을 거두셨다. 우리는 서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었지만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누구나 이별은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어느 늙수그레한 중년의 사내가 혼자 서 있었다. 어찌 보면 소년시절 내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그때처럼 여전히 혼란스럽고 두려움에 차 있었다. 15세와 51세 사이의 세월이 찰나처럼 느껴졌다. 끝도 없는 사막과 같은 황무지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이제 전적으로 내 인생의 여정을 혼자 짊어져야한다는 상실감이 한없이 밀려왔다. 삶이라는 항해를 계속하려면 인생은 혼자 가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은 기차여행과 같다. 내 인생의 기차표를 끊어주신 이는 어머니이다. 열차는 출발점에서 최종 도착지까지 수많은 정거장을 지나간다. 나는 항상 어머니가 나와 함께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와 같이 여행을 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어느 역에선가 홀연히 내리셨다. 기차에 홀로 남겨진 나는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이제 어머니 외에도 나와 같이 출발했던 가족들과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그들이 떠나간 역에서 다른 누군가가 다시 기차에 오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테지만 그 또한 언젠가 그가 내릴 곳에서 내릴 것이다. 항상 함께 하는 인생의 동반자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삶이란 것이 늘상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맞이하는 과정이라면 이젠 그것에 익숙해지고 아름다운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 ​

​죽음은 내게 항상 숙제이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은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뒤 어쩌면 죽음은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꿈도 꾸지 않는 기분 좋은 잠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탈리아의 귀족 레몽 포스카는 시몬 보봐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설 속 주인공이다.

그는 14세기에 마신 약 덕분에 영원히 죽지 않는다. 촉망받는 여배우 레진은 포스카의 비밀을 알게 되고 영원한 시간 앞에서 너무도 하찮아 보이는 자신의 존재에 절망한다. 하지만 포스카는 불멸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사실을 레진에게 알린다. 불멸하는 인간은 필멸하는 인간에게 구속돼 있는 존재다. 자신이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가는 것을 오롯히 혼자 견뎌야 한다. 처음에 불멸을 크나큰 축복으로 여겼지만 그가 사랑한 모든 사람이 죽고, 그의 삶에서 생동감과 활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시간의 노예가 됐음을 깨닫는다. 불멸은 죽음보다 못한 저주인 것이다. 그의 옆에서 사랑하던 사람들은 죽고, 시간은 그의 곁 제자리에서 무한궤도를 돌고 있는 쳇바퀴처럼 느껴진다. 포스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레진은 불멸성을 포기한다. 

​죽음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존재를 인식하면 우린 삶을 더 풍성하게 살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축제가 한창이어서 분위기가 고조됐을 때 해골을 가져와서 손님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운명을 상기시켰다. 고대 로마인들도 그러했다.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그들은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Memento Mori 를 외치게 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이었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 시작되는 매일 매일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겨라. 그러면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이 뜻밖의 시간들임을 알게 될 것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죽음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죽음은 진정한 철학을 가리는 시험이다. 죽음은 우리가 타고난 조건이고 철학을 한다는 것은 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이것은 곧 잘 죽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의 끝에 온다. 스티븐 잡스의 말대로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어머니는 좋은 죽음을 맞이하셨다. 치매와 육신의 고통속에서 괴로워하지 않고 짧게 앓고 편하게 돌아가셨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했고, 자식들은 그의 바램대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 좋은 삶이, 좋은 죽음으로 인도했다. 주변 지인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결코 그 시간을 허비하며 살지는 않겠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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