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축복과 풍요의 계절 가을이 어느새 사라진 것 같다. 옛 어른들 말씀에 가을비가 한 나절만 내려도 논 한 배미에 쌀 한 말이 줄어든다는데 가을장마까지 있었으니 농민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소상공인들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 경제는 추락할 대로 추락해 골목상권의 붕괴라는 초유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계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온 산을 단풍으로 물들이더니 어느덧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이제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이 올 것이다. 시간은 이렇게 비정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시간은 우주의 세계에서 무한정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한문 풀이를 해 보자면 시(時)는 때 시, 간(間)은 사이 간이다. 때와 때 사이에서의 일정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불가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방(四方), 사유(四維), 상하(上下)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 등을 나타내는 시방삼세라 한다.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며 무한대적 공간에서 머무름이 없이 일정한 빠르기로  연속되는 흐름이며 인간은 그 사이에서 모든 운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건강과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고 있지만 시간은 결국 그것을 용납하지를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탄생이라는 생성과정에서부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神)인 크로노스 신의 노예가 된 것이다. 

1978년 대학가요제 수상곡인 가수 김만준의 ‘모모’라는 노래가 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라고 시작하는 노래인데 여기에서도 인간은 시간을 쫓아가는 시간의 노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동네 앞 음식물쓰레기통 앞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다. 아마도 먹잇감을 놓고 싸우는 것 같다. 저 먹잇감을 놓치는 패배자의 가족은 굶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인들은 통상적으로 고양이를 인간의 세계에 접목시켜 의인화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 가림 막이 없는 경쟁의 세계에서 서로 간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근원인 선(善)과 악(惡)사이에서, 편을 가르며 이념적 싸움에 몰두하는 현실의 세계를 보면 우리는 고양이들의 적자생존 세계와 매우 흡사하다. 인간 옆에서 함께하는 고양이들은 인간을 닮아가고, 인간은 고양이를 닮아간다.​ 고양이들은 항상 제 영역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우리 인간 또한 생존의 싸움에서 이겨야하고 환경에 먼저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냉혹한 세계는 고양이들의 영역 다툼과 유사한 것이다.

그 인간과 고양이들은 쉼표도 없는 악보 위 음계처럼 긴 시간을 롤러코스터를 타며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똑같은 조건, 똑같은 환경에서 한 순간이라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먼 산 바라보며 쉼이 있는 시간을 갖게 되면 바로 도태되는 것이다. 한 가정의 평온과 안정을 위해 한 눈 팔 사이 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지만 생명체들은 시간이 지나면 노화하고 생의 리듬이 느려진다. 시각은 물론 청각도 떨어진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마음은 젊은 시절 그대로라 생각하고 발버둥 치며 또 다른 무엇인가 잡아보려 온 힘을 다해 본다. 그러나 세상은 연로한 어르신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질 않는다. 허공 속에서 그 무엇을 잡아보려 애를 쓰지만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저 허무할 뿐이다.

또 다른 출발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해 걸어보지만 비틀거리는 이 걸음을 어이 할까. 파지를 잔뜩 실은 어르신이 손수레를 힘겹게 끌며 피안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으로서 선을 베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는 방법은 서로가 달라도 결국 가는 방향은 한 방향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하루라는 시간은 어찌 보면 상황에 따라 긴 시간이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짧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이제 하던 일 멈추고 허리 곧추세워 잠시나마 파란 가을 하늘과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도 어쩌면 시간의 노예에서 탈출하는 쉼이 있는 삶,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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