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업서 주민 참여 채권 전부를 사업자가 대출로 마련해줘
주민 참여 통해 재생E 인식 높이는 사업이 단순한 현금 지원 전락
일부 업계선 “지역주민 참여할 경제성 안돼…상생 측면서 의미있어”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태양광발전단지 전경.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태양광발전단지 전경.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이 단순 현금지원 사업으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남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단지 등 일부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이 사업자가 주민들에게 채권 형태로 투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발전소 조성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외부 자본만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정 지분을 주민들이 확보할 수 있게끔 해서 태양광 사업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공유할 수 있고,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도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 주민이 태양광 사업에 참여했을 때 REC 가중치를 0.2 적용하고 있다.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단지로 최근 상업운전을 시작한 98MW 규모의 솔라시도 구성지구 태양광 발전소 사업 역시 지역 주민의 이익 공유를 위해 반경 1km 이내 5개 주민법인이 참여할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주민들이 직접 투자함으로써 사업에 참여하게 만든다는 기존 취지와 달리 사업에 참여한 5개 주민법인은 채권 160억원 전체를 사업자 A사에 대출받는 형태로 마련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인근 주민들이 주민법인에 이름만 올려놓고 있으면 알아서 출자수익을 매월 받아갈 수 있는 사업으로 단순한 현금지원과 다를 바 없는 형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은 매월 8.8%의 채권수익률을 거둘 전망이다. 이자를 공제한 후 순수익만 5%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자가 주민들의 투자비를 대출해주는 게 비단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단지만의 사례는 아니라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 추진되는 사업들 가운데 이처럼 오로지 주민수용성을 높임으로써 사업편의를 확보하기 위한 변종 주민참여형 태양광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직접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최근 들어 쇠퇴하고 있는 농어촌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사업이 결국 발전소 건설을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이 결국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현금 지원을 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 반발이 심해지면서 재생에너지 업계에는 ‘주민 동의를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을 보상해야 한다’는 말이 관행처럼 돌고 있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 해상풍력단지의 경우 보상비로만 공사비의 10% 정도가 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 기준이 되고 있다.

주민참여형 사업이 이 같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익공유형 사업이 이 같은 현금보상으로 굳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이미 경고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신재생에너지 수용성 개선을 위한 이익공유시스템 구축 연구’ 보고서에는 “발전소 진입에 따라 발전 사업자로부터 경제적 이익이 주어졌을 때 현금 보상을 지양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많은 사람들이 각 개인에게 현금을 보상해 주는 것을 선호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발전소 건설에 대한 현금 보상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명문화된 법률이 없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지속적으로 현금 보상을 정당화한다면 현금 보상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보고서에서는 정부는 발전소 건립으로 발전 사업자가 지역공동체에게 어떤 경제적 혜택을 제공할 때 지역공동체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기금을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이 경제적인 이유 탓에 사업에 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앞서 에경연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정부가 이익공유 유형으로 발전소 공동 소유 또는 발전소 채권 투자를 활성화하고자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 비중이 아주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여력이 적어 발전소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다. 주민참여형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발전소 공동 소유 또는 발전소 채권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발전소 건립 주변 지역 주민들의 경제력을 고려하는 금융 지원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주장했다.

태양광 업계 한 관계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있다. 당초 정부가 처음 주민참여형 사업을 제시할 때는 주민들이 투자하고, 발전사업자와 수익을 공유하게 해서 민원 요인을 제거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의 현실은 사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주민참여형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농어촌 지역에서 제대로 투자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금 추진하는 방식이 무조건 나쁘고 옳지 않다고 말해선 안 된다”며 “지역 주민들과 상생하고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활성화를 위해 20대 국회에서 미뤄진 계획입지법 등이 조속히 통과돼야만 이 같은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공공부지를 개발하는 데 있어 지자체의 역할을 한층 강화하고 인근 지역의 주민참여가 지자체 주도의 크라우드 펀딩 등 형태로 진행돼야만 정부가 주장하는 주민참여형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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