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강수진 기자]“한전 AMI 보급 사업 지연이 계속해서 계단 형태로 진행돼 왔습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씩 지연되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 기술 규격까지 바뀔 때는 그야말로 업체들의 시간과 비용, 노력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겁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원격검침인프라(AMI) 업계 종사자의 한탄 섞인 토로였지만, 이는 업계 전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한전이 AMI 보급사업을 지난 10여 년간 추진하면서 호환성, 통신 문제, 리콜 등 각종 이슈로 사업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또 전력 계량기는 한번 설치하면 내구연한이 7~10년이지만, 한전 AMI 보급사업 기간에 표준, E타입, G타입, AE타입, 보안계기 등 크게 5번의 변화를 거쳐왔다.

사업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돼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고, 기술 변화에 따라 규격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한전 사업계획에 따라 기술 개발에 투자한 기업들은 잦은 변화 속에서 시간과 비용만 들이고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전은 국내 유일한 전력공급사업자인 만큼 한전의 사업계획에 따라 업계는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한전이 발표하는 계획 하나하나가 시장 생태계와 업계 생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한전 AMI 사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기술업체가 없다는 것이다. 껍데기뿐인 업체가 태반”이라며 “기술혁신을 하는 기업에 우선 인센티브를 줘도 어려운 판에, 오히려 기술 개발을 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프라 사업인 만큼 비용이 들더라도 기술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며 “다만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게 되면 기존 업체들의 반발도 큰 만큼, 기술 개발 업체에 의무 쿼터제처럼 최소 물량 개런티를 주고, 기득권 업체들도 기술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방식이 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밥그릇 다툼만 심해질 뿐”이라고 제언했다.

최신 산업 트렌드는 4차 산업 혁명 기술의 빠른 접목이다. AMI 분야라고 해서 이러한 혁신의 바람을 비켜 갈 수는 없다. 유일하다는 것은 ‘독보’적인 의미로 관련 시장의 기술 개발에 불을 댕기고, 시장을 선도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누구도 할 수 없는 ‘독식’이라는 의미로 곯기도 쉽다. 기업들이 신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개발하도록 한전이 유일 사업자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기업들의 기술 개발 노력이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 마련 등 전력 산업 성장을 주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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