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간헐성 대응 프로젝트 ‘수드링크·수드오스트링크’ 한창
연방네트워크청, 행정 정보 투명 공개로 신뢰 확보에 주력
2년 단위로 사업 점검...사업지연 vs ‘정당성’ 확보 줄다리기 여전
현장 워크숍·전문가 소통으로 수용성 기반 다져

독일의 대표 송전운영사 중 하나인 테넷이 시공 중인 700km 길이 초고압 직류송전(HVDC) 프로젝트 수드링크의 지중 노선 현장. [제공=테넷(TenneT TSO GmbH)]
독일의 대표 송전운영사 중 하나인 테넷이 시공 중인 700km 길이 초고압 직류송전(HVDC) 프로젝트 수드링크의 지중 노선 현장. [제공=테넷(TenneT TSO GmbH)]

지난 4월 발생한 스페인 전역의 대정전 사태는 재생에너지 계통 전략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간헐 전원의 안정적 연계는 전력 시스템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도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발전량 기준 55%를 넘긴 독일은 이러한 도전의 선두에 있다. 독일은 간헐성 보완과 계통 안정화를 위해 HVDC에 주목하고, 에너지전환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직송뿐 아니라 기존 교류(AC)망의 부하를 덜어 345kV 송전선 신설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독일은 이미 2000년대 초 재생에너지 보급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HVDC 시스템 구축에 돌입해 현재 운영 또는 건설 중인 노선만 총연장 3900km에 달한다. 연방 네트워크청(BNetzA)의 전력망개발계획에 따라 2037년까지 추진 예정인 신규 HVDC 노선은 총 5200km로, 이를 반영하면 역내 노선은 9000km(용량 기준 최대 18GW)를 넘어선다. 11차 장기송변전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3818C-km(약 800km, 용량 기준 11GW)를 구축할 계획인 우리나라 대비 1.8배 긴 거리다.

발 빠른 시장 진입 덕에 이미 지멘스에너지 등 글로벌 전력설비 제조사와 테넷(TenneT TSO GmbH)·50헤르츠(50Hertz) 등 시공 경험이 풍부한 송전망 운영사(TSO)도 보유하는 등 ‘HVDC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덕분에 연간 정전 시간은 약 12분으로(한국 9분)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 안정성을 자랑한다.

슈테판 미허셀 테넷 수드링크 총괄감독관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풍력·태양광 전기를 기존 AC망으로는 제어하기 어렵다. HVDC는 계통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대용량 송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50헤르츠 관계자는 “독일 남부에서는 2023년 봄 마지막 원전의 폐쇄와 석탄발전의 단계적 중단으로 인해 향후 수년간 구조적인 전력 부족 현상이 발생할 전망”이라며 “이를 전력 생산량이 풍부하지만 수요는 부족한 북동부 지역 재생에너지를 통해 해결하는 핵심 축이 HVDC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대표 송전운영사 중 하나인 50헤르츠가 건설 중인 HVDC 프로젝트 수드오스트링크의 지중 케이블 시공 현장. 한 작업자가 정보 식별용 보드에 시공 구간 정보를 표시하고 있다. [제공=50Hertz]
독일의 대표 송전운영사 중 하나인 50헤르츠가 건설 중인 HVDC 프로젝트 수드오스트링크의 지중 케이블 시공 현장. 한 작업자가 정보 식별용 보드에 시공 구간 정보를 표시하고 있다. [제공=50Hertz]
테넷의 HVDC 프로젝트 수드링크가 경과하는 니더작센주 헤슬링겐 인근 현장에서 케이블을 지중관로에 삽입하는 주요 인입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테넷]
테넷의 HVDC 프로젝트 수드링크가 경과하는 니더작센주 헤슬링겐 인근 현장에서 케이블을 지중관로에 삽입하는 주요 인입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테넷]

◆‘Beyond 에너지전환’ 위한 에너지고속도로

이 같은 기술적 필요에 따라 독일은 향후 10년 내 총 5200km에 달하는 HVDC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대표 프로젝트는 테넷이 추진하는 수드링크(Südlink, 약 700km, 4GW급)와, 50헤르츠가 주도하는 수드오스트링크(SuedOstlink, 약 540km, 2GW급) 등이 있다. 두 노선은 525kV급 고압 송전으로 북부의 재생에너지 발전지에서 남부 산업지대인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로 전력을 이송하기 위해 기획됐다. ‘계통 안정화 도구’로서 전압형 HVDC(VSC)를 채택해 무효전력 공급 및 전압 유지 기능을 확보했다.

수드오스트링크의 사업자인 50헤르츠 관계자는 “독일 내 최장 지중 HVDC 중 하나로, 기술적 복잡성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들 노선이 완공되면 독일-폴란드-체코 국경의 위상변이 변압기(PST)와 연계해 비계획 전력흐름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며, 독일 도매시장 입찰구역(Gebotszone)의 안정성 확보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HVDC는 건설 공법 또한 고도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케이블은 초고압을 견디도록 설계돼야 하는데, 이때 단선과 단선을 연결하는 조인트(접합부) 품질이 계통 안정성의 핵심으로 꼽힌다.

슈테판 미허셀 총괄감독관은 “지중 현장에서 불량 조인트 복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초기 자재 선정과 품질관리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BNetzA가 운영 중인 공공 정보 공유 시스템의 한 화면. HVDC 프로젝트별 위치, 경과지, 인허가 단계, 환경심사 결과, 주민설명회 일정까지 모두 열람이 가능하다. [출처=BNetzA 홈페이지 캡쳐]
BNetzA가 운영 중인 공공 정보 공유 시스템의 한 화면. HVDC 프로젝트별 위치, 경과지, 인허가 단계, 환경심사 결과, 주민설명회 일정까지 모두 열람이 가능하다. [출처=BNetzA 홈페이지 캡쳐]

◆투명성 담보하는 BNetzA...‘공개 행정’ 뚜렷 vs 행정 지연은 관건

독일은 계통 전환에서도 거버넌스의 힘을 발휘했다. 전력을 비롯해 가스·우편 등 국가 인프라 사업 규제를 총괄하는 BNetzA는 다수 TSO와 10년 단위의 전력망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주체다. 비단 독일 내 전력 흐름뿐 아니라 유럽 인접 국가와의 계통까지도 고려하기 때문에 논의체의 폭과 논의 범위도 상당히 광범위하다.

BNetzA의 계통 계획 중 두드러진 특징은 모든 송전사업 계획을 사전에 검토하고, 해당 노선이 언제 어디를 지나며 어떤 방식으로 시공되는지 상세히 공개한다는 점이다. 사업의 설계부터 수용성 관할 범위와 규정, 프로젝트별 추진 현황까지 한 기관에서 총괄한다. 행정 자체의 속도는 느리지만, TSO가 다수 부처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우리나라와의 사정과는 딴판이다.

실제 BNetzA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HVDC 프로젝트별 위치, 경과지, 인허가 단계, 환경심사 결과, 주민설명회 일정까지 모두 열람 가능한 공공 정보 공유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주민 수용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BNetzA가 비단 심사기관 역할뿐 아니라 에너지전환 과정의 ‘사회적 조율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다.

다만 설비 확산과는 별개로 도입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제도적·사회적·관리적 난관은 독일에서도 확인되는 문제다.  

이곳에서도 HVDC 사업의 실제 진행은 당초 계획보다 3~6년 이상 지연됐다. 가장 큰 원인은 독일 특유의 느린 행정절차가 꼽힌다. 기본적으로 모든 송전사업은 2년 단위로 계획 이행 실적을 평가받는다. 신규 구간 설계가 끝난 뒤에도 환경성 검토, 주민 의견수렴, 지방정부 협의, 기술 안전성 심사 등 수십 단계의 확인 절차가 병행된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수년을 설득과 문서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데다, 법률적으로 빈틈이 없이 모든 서류가 갖춰져야 논의의 시작점에 설 수 있다.

이 같은 사업 지연에 대해 독일 사회 일각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BNetzA는 다층적 검토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강변하지만, 산업계 입장에선 ‘기회의 창을 놓친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팽배했던 반대여론은 2016년 지중화 도입 발표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라 에너지 공급망 재편이 국가적 과제가 되면서 변화가 감지됐다.

미허셀 감독관은 “특히, 러-우 전쟁 이후 에너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공동의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경과지 소재 지방자치단체 역시 인허가 측면에서 협조를 강화했다”며 “시장이나 지자체 직원이 직접 설명회에 동참하기도 하는 등 스킨십을 더욱 확대한 것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BNetzA도 일부 구간에 대해 ‘사전 착공 인가’를 발급하며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해당 조치는 전체 인허가가 완료되기 전이라도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고 행정적 검토가 끝난 구간부터 공사 개시를 허가하는 제도다. 이는 공사 기간을 분산하고, 병목 구간의 조기 해소를 도모하기 위한 일종의 ‘시간 전략’이다.

미허셀 감독관은 “자재 등 조달 측면에서도 프로젝트의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며 “프로젝트 규모가 크면 구매 규모도 덩달아 커지는데, 시장 내 수요가 급증하면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시시각각 균형화하는 것이 도전과제 중 하나”라고 조언했다.

슈테판 미허셀 테넷 수드링크 총괄감독관. [제공=테넷]
슈테판 미허셀 테넷 수드링크 총괄감독관. [제공=테넷]

◆결국은 기본...“주민 수용성, 소통 전략이 좌우”

한층 더 깊이 보면 행정 지연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주민 수용성 문제가 있다. 특히, HVDC처럼 지중 또는 가공선로가 장거리로 뻗어나가는 경우 경과지 주민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실제 수드링크와 수드오스트링크는 경과지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조직한 대규모 반대 여론에 맞닥뜨리고 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테넷은 이 과정에서 1000명 단위 대형 설명회 대신 50~100명 규모의 소규모 주민 워크숍을 선택한 것이 수용성 제고에 핵심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해관계자 매니저 외에도 전문기술자를 동반해 경과지 내 환경영향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한 것도 주효했다.

슈테판 미허셀 감독관은 “사람 수가 적을수록 정보 공유가 활발하고, 오히려 신뢰 형성이 빠르다”며 “전선을 깔고 몇 년간 작물이 자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단순한 보상금 몇 유로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직접 찾아가서 이해시키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50헤르츠 역시 경로 주변의 도로·철도·하천 등 주요 인프라와의 교차 구간을 동시 계획 및 시공하며 수용성으로 인한 소요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수평 시추공법(HDD) 및 관입식 추진공법(관추진법)을 적용하며 돌파구를 찾았다는 설명이다. 

50헤르츠 관계자는 “교차 구간은 최대 900m에 이르는 장거리 비개착 구간으로 시공하고, 일부 예외의 경우 직경 2m, 길이 450m의 터널형 구조물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50Hertz 관계자가 수드오스트링크 현장에서 케이블 인입 과정을 감독하고 있다. [제공=50Hertz]
50Hertz 관계자가 수드오스트링크 현장에서 케이블 인입 과정을 감독하고 있다. [제공=50Hertz]
테넷과 케이블 공급사 NKT가 독일 니더작센주 헤슬링겐(Heeslingen) 현장에서 수드링크(SuedLink)의 지중 케이블을 인입하고 있다. [제공=테넷]
테넷과 케이블 공급사 NKT가 독일 니더작센주 헤슬링겐(Heeslingen) 현장에서 수드링크(SuedLink)의 지중 케이블을 인입하고 있다. [제공=테넷]

※이번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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