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발전소 일상화, 일조 적은 지역서도 태양광 쉽게 확인
공공건물 중심 태양광 확대, 산업계 부담 줄이려 유인책 제공
![베를린의 한 주택 발코니에 설치된 소형 태양광발전소 전경. [사진=김진후 기자]](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505/355441_562453_1437.jpg)
독일 베를린 미테(Mitte)구에 위치한 모아빗(Moabit) 주거지구. 베를린 시내를 관통하는 슈프레강변과 인접한 이곳에 120년 역사의 모아빗 열병합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심지에서 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주민 거주지와 바로 이웃한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석탄을 태워 주변 4만4000가구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해 왔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주역이었던 이곳은 2026년까지 석탄을 전면 퇴출하고,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고 있다. 재생가능 연료 기반인 바이오매스와 LNG를 혼소하는 전환을 통해 주민 곁을 지킨다는 방침이다.
이 거대한 전환의 동력은 의외로 조용하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라도 주민들은 “으레 있는 일”이라며 개의치 않았다.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모아빗 열병합발전소는 최근 탈석탄 기조 아래 천연가스 및 바이오연료로 에너지전환을 추진 중이다. [사진=김진후 기자]](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505/355441_562401_2124.jpg)
◆일조시간 짧지만 쉽게 찾을 수 있는 태양광
베를린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 10일 오후 9시경. 이제서야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모습을 보며 독일의 태양광발전 환경이 궁금해졌다.
독일의 일조시간은 유럽 내에서도 짧은 편이다. 연평균 2.9~3.2시간으로, 서울의 3.6시간보다도 짧다. 그럼에도 베를린 시내를 걷다 왕왕 태양광 패널을 마주쳤다.
공공건물 지붕은 특히 그랬다. 관공서가 밀집한 레겐스부르거 슈트라세 지역을 방문하면 국가의회의사당부터 연방하원 건물인 폴 뢰베 하우스(Paul-Löbe-Haus), 의회부속동 루이젠블록(Luisenblock) 등 주요 공공시설 대부분에 태양광이 설치돼 있었다. 햇볕이 좋은 남향 민간건축물에서도 이따금 소규모 지붕형 태양광을 만날 수 있고, 건축된 지 200년이 지난 훔볼트 대학교 일부동은 기념물 보호 논의에도 불구하고 2020년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한 사례가 있다.
독일의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햇빛이 좋지 않음에도 이처럼 보편화된 건 강력한 정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보급을 넘어선 국가 시스템이다. 2000년 발효돼 우리나라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신재생에너지법)’의 모태가 된 연방재생에너지법(EEG)과 독일 건축법, 베를린 조례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물에는 태양광을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태양광 설치율이 낮은 지역에 속하는 베를린도 이럴진대, 바이에른 등 일조량이 상대적으로 좋은 남부 지역에는 MW 단위의 유틸리티 태양광 단지도 더욱 흔하다.
통계를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프라운호퍼 ISE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독일의 태양광 누적 설비용량은 94.1GW다. 이어 ▲육상풍력은 64.7GW ▲해상풍력 9.2GW ▲바이오매스 9.1GW ▲수력 5.5GW 순이고, ESS는 19GWh에 달한다. 이들 재생에너지가 지난해 생산한 전력은 전체 55.5%를 차지했다. 취재진이 현지를 찾은 2025년 5월, 월간 기준으로는 65.9%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붕 태양광을 차용한 베를린 내 관공서 옥상 전경. [출처=구글맵 캡쳐]](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505/355441_562406_2448.jpg)
◆재생에너지 보급에 전기요금도 비싸다?
하지만 외신이나 국내 언론에서는 종종 “독일이 재생에너지를 너무 빨리 확대하다 보니 전기요금이 급등했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실제 가정용 소매요금만 놓고 보면 독일은 유럽 내 최고 수준이다. 이 수치는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도매시장만 놓고 보면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전기요금이 저렴한 국가 중 하나다. 낮은 균등화 발전단가(LCOE)를 바탕으로, 도매 전력은 재생에너지가 가격을 억제하고 있다.
스테판 가브리엘 하우페 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 BMWE 수석대변인은 <전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기요금이 오른 것도 맞고 사용자에게도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는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도매단가를 결정한 천연가스의 원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우페 수석은 “이를 억제하고자 정부가 2023년까지는 전기요금 상한선을 kWh당 39.43센트로 설정했고, 저소득층엔 지원금 제도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물론 시민만이 고비용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소비 산업에 ▲전력세 감면 ▲재생에너지 부과금 면제 ▲10년 고정가격 전력계약 허용 등 다양한 제도적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
![한 독일 시민의 전기요금 고지서. 요금 항목별 상세 안내와 함께 하단에서 사용 에너지원에 대한 소개도 이뤄지고 있다. [사진=김진후 기자]](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505/355441_562531_187.jpg)
◆시민이 감당하는 전환의 무게와 선택
독일의 전기요금은 어디에 쓰이는가. 그 구조는 상세하고, 복잡하지만 매우 투명하다. 발전원가는 물론이고 ▲부가가치세 ▲송배전망 사용료 ▲해상풍력 계통연계 비용 ▲재생에너지 보조금 등이 항목별로 요금 고지서에 표시된다. 이 같은 요금항목은 물론 사용한 에너지원별 비중 등이 투명하게 표기되는 점도 불만보다 이해를 이끄는 배경이다.
한 독일 시민은 “나는 경제적인 사람이라서 계약을 자주 바꾼다. 비싸다고 정부에 항의하기보다는 더 나은 프로바이더를 찾아 바꾸는 게 더욱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주소 입력만으로 수십 개 전기공급업체의 요금제와 친환경 비중을 비교해 계약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이 보편화돼 있다.
그는 “주거 여건이 괜찮은 집들은 발코니에 600유로짜리 소형 태양광 패널을 깔아 냉장고 전기만이라도 줄이려 한다. 7~8년 후엔 투자금도 회수될 것”이라며 “요금이 비싼 건 맞지만, 그만큼 나에게도 선택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시민들이 높은 전기요금과 더딘 절차에도 불구하고 전환을 감내하는 데는 분명한 배경이 있다.
또 다른 시민은 “우리 땅에서 원자력 발전은 하지 않겠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미 이뤄진 상태”라며 “에너지전환은 지금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선택이자 일정 수준의 경제적 부담을 ‘책임의 비용’으로 인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베를린 도심지에 설치된 지붕형 태양광발전소의 모습. [사진=김진후 기자]](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505/355441_562452_132.jpg)
◆전환은 더 이상 정치가 아닌 구조
물론 모든 독일인이 전환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또 다른 시민은 “절반은 이해하지만, 또 절반은 여전히 걱정이 많다. 특히 다음 세대가 감당할 비용이 너무 크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 독일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독일은 원전을 멈췄지만, 이웃 국가는 여전히 가동 중이다. 만약 비용이 동일하거나 줄어든다면 독일 내에서도 재도입 여론이 절반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다만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논의에 대해 사회 구성원 다수가 납득하는 것이 ‘기본전제’라는 반응이다. 실제 지난 2월 독일은 총선을 통해 정권을 교체했다. 새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이끄는 우파 정당 기민당(CDU)은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연정협정중 에너지 분야 정책에선 가격 안정을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에 대한 목표는 허물지 않았다. 더 이상 정권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오히려 에너지전환 논의를 심화 및 다각화해야 한다는 진단도 뒤따른다. 특히 기술적 과제는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고정가격계약을 통한 장기예측 가능성 확보 ▲Redispatch 2.0 제도 도입 ▲대규모 ESS 투자 등 다양한 방안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 에너지 분야 컨설턴트는 “송전 회선 설계나 분산전원 통합과 같은 구조적 대응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새로 선출된 정부는 이전 정부 대비 전환에 따른 인프라 정비 계획에 있어 적극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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