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계, 전력 도매가격 낮추기 위해 해상풍력 선호
러-우 전쟁으로 폭등한 에너지 가격, 풍력‧태양광으로 잡아
中 공급망 사용했으나 경제효과‧일자리 창출 성과 확인
韓도 “재생E 확대 위해 국내 공급망 가격 내릴 준비 서둘러야”

독일 노드씨(Nordsee) 해상풍력발전소 전경. [제공=RWE]
독일 노드씨(Nordsee) 해상풍력발전소 전경. [제공=RWE]

제조업 강국 독일이 비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해상풍력으로 생산한 저렴한 전기를 산업용으로만 공급한다는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있다. 형평성 문제로 인해 실제 정책화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이는 해상풍력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독일은 자동차, 철강, 기계, 화학 등 제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한다. 그러나 독일의 전기요금은 유럽에서 영국과 더불어 가장 비싼 수준이다.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보급정책 이후 상승한 전기요금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베를린 시민 톰 롤렌하겐 씨는 “독일 내에서 생산하던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려오면서 독일이 여전히 제조업 강국인지 시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있다”고 토로했다.

세계 에너지 가격을 비교하는 글로벌 페트롤 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0.239유로(0.272달러)로, 146.958원(0.112달러)인 한국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비싸다. 한국이 지난해 4분기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182원/kWh)했어도 여전히 독일의 요금이 확연히 높은 상황이다.

이에 독일에서는 제조업 역량을 유지하기 위한 세제 혜택을 비롯해 저렴한 발전원을 기업에 우선 제공하는 등 지원책을 실행하고 있다. 올해 들어선 새 정부도 전기요금 인하를 정책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우선적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이 과정에서 해상풍력에서 생산된 전력을 산업용으로만 사용해 전기요금을 낮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 내 해상풍력 LCOE는 kWh 당 100~120원 수준으로 타 발전원 대비 저렴한 수준이다. 이에 더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과 달리 각종 세제 혜택이 부과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력을 산업용으로 몰아 줄 경우 전기요금 인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테판 가브리엘 하우페 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BMWE) 수석대변인은 “OECD 기준으로 독일의 전기요금이 비싼 것은 기정사실이고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전기요금 시스템 개편을 통해 가정용·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제조업 강국 위상 ‘흔들’...정부, 전기 관련 세제 혜택 제공

독일 제조업을 대표하는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브랜드 '메르세데스 벤츠' 조형물이 베를린 시내의 한 건물에 설치돼 있다. [사진=안상민 기자] 
독일 제조업을 대표하는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브랜드 '메르세데스 벤츠' 조형물이 베를린 시내의 한 건물에 설치돼 있다. [사진=안상민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서 가스를 수입해 오던 유럽은 대규모 전력 가격 상승을 겪어야 했다. 특히 독일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천연가스와 화석연료를 통해 조율해 온 만큼 전쟁 이후 전기요금이 30% 가량 상승했다는 것이 현지 업계의 설명이다.

이 같은 비용상승의 영향으로 독일을 상징하는 자동차 3사는 경영 악화와 함께 독일 내 사업 축소를 추진하는 등 비상등이 켜졌다. BMW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37% 감소한 76억7800만 유로(약 12조2159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폭스바겐의 영업이익도 191억 유로(약 30조3886억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15% 감소했으며 메르세데스-벤츠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30.8% 줄었다. 

이 여파로 폭스바겐은 독일 내 공장 10곳 중 3곳을 폐쇄해 수만명의 일자리를 감축하고 직원들의 급여를 10%씩 삭감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으며 BMW 또한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는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철강, 화학, 기계 업종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모두 전기요금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비싼 전기료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독일 에너지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역시 독일의 사례를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기요금 상승은 제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전력요금 상승을 동반하는 재생에너지의 보급과 전기요금 상승의 페이스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독일 정부도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세제 혜택과 산업용 전기요금 보조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전력도매가 외에도 ▲부가가치세 ▲송배전망 사용료 ▲해상풍력 계통연계 비용 등 각종 정책비용으로 구성돼 있다. 독일 정부는 이 중 전력도매가를 제외한 정책비용들을 면제하거나 대폭 감면해 주는 등 세재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사업자는 발전사업자와 직접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해 최소 비용으로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하고 있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연구기관 IWR(International Economic Forum for Renewable Energyies)에 따르면 독일의 전력 도매가격은 재생에너지 보급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후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해 한 때 kWh 당 평균 도매가격은 0.14유로(218원)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재생에너지가 도매가격을 끌어 내렸다. 2024년의 전력 도매가격은 kWh 당 0.079유로(124원) 수준으로 이는 원자력 발전 퇴출 이전인 2021년 0.0996유로(151원)보다 더 낮다.

독일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독일 내에서 전기요금 상승은 기본적으로 재생에너지 보다는 가스요금 인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전기 다소비 기업에 정책적 비용을 제외해주고 저렴한 전력요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근 유럽의 전력요금 상승 추세에서 독일은 오히려 가장 적은 폭으로 가격을 올렸다”며 “이는 발전단가가 낮은 재생에너지가 발전설비 용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풍력‧태양광 확대하려면, 공급망 가격 내릴 준비해야

독일 포츠담에 위치한 풍차 박물관. 독일의 풍력에 대한 역사와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다. [사진=안상민 기자]
독일 포츠담에 위치한 풍차 박물관. 독일의 풍력에 대한 역사와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다. [사진=안상민 기자]

독일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육상풍력 115GW, 해상풍력 40GW, 태양광 215GW를 보급할 계획이다. 현지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대규모 보급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배경으로  저렴한 공급망을 사용하는 점을 꼽는다. 입찰 시 LCOE보다 국내 공급망 사용에 높은 점수를 주는 우리나라와는 분명 다른 행보다. 

시장 초기에 독일 내에서도 풍력과 태양광 관련 자재를 생산하던 기업이 다수 있었으나 저렴한 외산 제품이 유입되면서 대부분 도태됐다. 독일 내에서 자국 제품을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 때 힘을 얻기도 했지만 결국 가격 경쟁력으로 인해 외산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독일 에너지 업계의 설명이다.

현지 관계자는 “독일 내에서 국민들이 낸 전기요금을 가지고 왜 중국 제품을 사용하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시장 원칙을 배척하면서 자국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지 못했다”며 “자국 공급망 기업들이 중국과 경쟁할 만큼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또 외산 공급망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국가 전반적으로 얻는 이익이 크다는 것이 독일 에너지 업계의 계산이다. 해상풍력의 경우 독일은 주기기를 포함해 대다수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했지만 결국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커지자 거부감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 토목, 유지관리 산업이 지역에 자리 잡았고 항만 산업, 유통산업이 함께 성장했다. 또 지역에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생기면서 지역경제 활성화 또한 이룰 수 있었다.

독일 연방환경청(UBA ; Umweltbundesamt)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지난 2023년 풍력, 태양광, 지열,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366억유로(57조 9014억원)를 투자했으며 이로 인한 경제 유발 효과 역시 231억유로(36조 343억원)에 달했다.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설비 투자 실적 및 경제효과. [출처=UBA]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설비 투자 실적 및 경제효과. [출처=UBA]

또 신재생에너지는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독일에선 지난 2008년부터 연간 30~40만개의 일자리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생겨나고 있다. 지난 2023년 기준 해상풍력에서 12만4600개, 바이오매스에서 9만9200개, 태양광에서 10만4500개, 지열에서 7만2300개, 수력에서 59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재생에너지 보급을 적극 활용하되, 독일과는 다른 자국산 공급망 육성책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해상풍력 공급망 업종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정부의 육성정책 등을 통해 국내 시장 포트폴리오를 확보, 해외진출을 적극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국내 공급망 기업들이 서둘러 제품 가격을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독일 에너지 업계 관계자의 조언이다. 정부는 R&D 지원과 안정적 입찰 물량을 시장에 공급하면서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고, 공급망 기업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독일도 어느 정도 값을 더 주더라도 국산 제품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중국산 제품과 가격 차이가 너무 커지다보니 결국 자국 업체의 도산으로 이어졌다"며 "장기적으로 한국 공급망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부 지원 정책이 있을 때부터 가격을 내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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