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성’ 문제, 기술 외 제도와 시장의 정교한 결합 필요
출력제어 넘어선 계통 통합 실험…프리미엄·출력제어 보상 등
다층적 정산 구조로 사업자 신뢰 확보해 해결 노력
송전 병목, 주민 수용성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아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E, 前 경제기후보호부/BMWK)와 독립 기관인 독일 연방네트워크청(BNetzA)은 사회 전반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 이후 간헐성을 수용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기술적 방안을 고안해 왔다. 베를린 시내 신청사로 이전한 BMWE 전경. [사진=김진후 기자]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E, 전 경제기후보호부/BMWK)와 독립 기관인 독일 연방네트워크청(BNetzA)은 사회 전반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 이후 간헐성을 수용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기술적 방안을 고안해 왔다. 베를린 시내 신청사로 이전한 BMWE 전경. [사진=김진후 기자]

독일은 2024년 생산된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풍력과 태양광 등이 전체 발전의 55%를 넘기며 ‘간헐성’의 에너지를 ‘통제 가능한 전원’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셈이다. 특히 산업 전력 수요가 많은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수치는 ‘계통과 시장을 재설계한 경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출력제어와 전압불안, 가격왜곡이라는 고질적 문제 속에서도 제도·기술·사회적 조정으로 이 복잡한 난제를 풀어가고 있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메르켈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다. 유럽연합의 탈탄소 정책과 제조업 기반의 전력 수요, 시민사회의 에너지 자립 요구가 교차하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은 전력체계의 전면 재편을 요구하게 됐다. 

◆'시장 수용에 방점' 정산 구조의 진화

전력계통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출력 예측이 어려운 재생에너지일수록 전력망에서는 부담 요인이 된다. 이에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기를 단순한 공급원이 아닌 ‘시장 참여자’로 편입시키는 강수를 썼다.

기초적인 수단은 출력제어 보상이다. 독일에서는 계통 혼잡이나 전압 안정성 문제로 발전을 제한당해도 ‘발전 시 예상 수익’을 기준으로 보상이 이뤄진다. 출력제어 시 ‘발전했을 경우의 손익’을 기준으로 정밀하게 보상하고 실제 발생한 순익은 정부가 보전하는 다층 정산 체계를 갖췄다.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제약량은 전체의 약 3.5%였고, 출력제어 관련 보상액만 약 5억5400만유로(약 81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 일정한 수익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한편, 계통운영자 입장에서도 발전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시장참여 방식도 개편됐다. 2014년부터 기존의 고정가격보장(FIT) 방식 대신 ‘직접판매+시장프리미엄’ 제도가 도입됐다. 발전사업자는 생산한 전력을 도매시장에서 판매하고, 정해진 기준가격보다 수익이 낮을 경우 정부가 차액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시장 가격 신호에 반응하되 투자위험은 줄이는 절충 구조를 적용한 셈이다. 2017년부터는 기술 중립 경매제도가 도입돼 신규 설비의 지원 단가를 경쟁 방식으로 결정하면서, 효율적인 설비가 더욱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그 중심에는 2021년부터 전면 시행된 '리디스패치 2.0'이 있다. 제도는 100kW 이상의 재생에너지 설비까지 출력조정 대상에 포함하고, 실시간 전력 흐름과 송전용량을 반영해 출력제어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제어부터 발전량 예측, 보상 정산까지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한다. 기존의 분산된 정산 체계는 제도 시행 이후 통합돼 신뢰도를 높였다.

요컨대 독일의 제도는 재생에너지 발전기를 ‘가격 변동성과 계통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시장 참여자’로 간주해, 발전사업자가 출력조정이나 계통지시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출력이 제한돼도 보상이 주어지고 손해를 봐도 일정 수익이 담보되기에, 사업자는 계통 안정화에 협조할 유인이 분명하다.

이는 아직 출력제어에 대한 법적 보상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은 한국과 뚜렷이 대비되는 대목이다. 제주도나 서남해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실증사업 성격의 제한적 보상이 이뤄진 바 있지만, 전국적 제도로는 정착되지 못한 상황이다. 발전사는 손실을 떠안고, 계통운영자 재량에 따라 보상 여부가 좌우되는 불안정한 구조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시장 참여 방식이 제한적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대부분은 한전과의 고정가격 계약(FIT 또는 SMP+REC 합산 기반의 RPS제도) 기반으로 거래되며, 도매시장에 직접 참여해 가격 변동에 따라 전략을 조정하는 구조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발전기를 ‘계통과 시장의 일부’로 설계한 독일과의 근본적인 차이다. 

다만 최근 독일의 간헐성 보완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2월 독일 연방선거 이후 우파 성향의 연립정부가 출범하면서, 에너지정책의 우선순위가 ‘공급 안정’과 ‘가격 경쟁력’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어보상이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반면, 효율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신임 총리는 탈탄소 기조를 유지하되, 보조금 감축과 보완시장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효율 회복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출력제어 보상 방식도 재검토 대상으로 올라가면서, 제도 연속성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아지는 양상이다.

독일 연방네트워크청(BNetzA)가 공고한 오늘 7월 1일 시행 예정인 태양광발전소 입찰 안내문. 입찰가격 최대값(Höchstwert)과 함께 농지 입찰(Gebote auf landwirtschaftlich genutzten Flächen), 불리 경작지 및 초원 입찰(Gebote auf Acker- und Grünlandflächen in benachteiligten Gebieten) 등 발전소 입지별 입찰을 달리한 점도 특기할 만 하다. [출처=BNetzA 홈페이지 캡쳐]
독일 연방네트워크청(BNetzA)가 공고한 오늘 7월 1일 시행 예정인 태양광발전소 입찰 안내문. 입찰가격 최대값(Höchstwert)과 함께 농지 입찰(Gebote auf landwirtschaftlich genutzten Flächen), 불리 경작지 및 초원 입찰(Gebote auf Acker- und Grünlandflächen in benachteiligten Gebieten) 등 발전소 입지별 입찰을 달리한 점도 특기할 만 하다. [출처=BNetzA 홈페이지 캡쳐]

◆ 간헐성, 억제가 아닌 수용으로

'간헐성'은 더 이상 억제의 대상이 아니다. 독일은 이를 시스템 안으로 흡수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기술을 설계했다. 출력 변동이 문제라면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공급 불일치가 우려된다면 저장이나 수요조절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전력이 불안정할수록, 계통운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억제가 아닌 ‘즉각적 대응수단’이다.

그 출발점은 우선 질서 있되, 투명한 입찰이다. 독일 연방네트워크청(BNetzA, 분데스네츠아겐투어)이 수행하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는 ▲입찰 결과를 익명 처리하되 개별 단가, 용량, 지역 등 세부 데이터를 상세히 공개하고 ▲최대허용가격을 법령 또는 공청회 기반으로 사전 고시해 시장 예측성을 높이며 ▲제도 변경 시 공개 초안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참여자 신뢰를 확보한다.

또한 ▲기술·지역별 입찰 분리를 통해 정책 목표를 정밀하게 반영하고, 결과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이는 보급 현황에 대한 상세한 파악을 넘어, 계통 관리 또한 용이해지는 효과가 있다.

또 하나는 발전량 예측 기반의 계통운영이다. 프라운호퍼 ISE는 AI 기반 단기 발전량 예측 시스템을 통해 풍력·태양광의 15분 단위 변동을 고해상도로 분석하고 있다. 이 예측 데이터는 리디스패치(Redispatch)에 연동돼, 계통운영자가 출력 조정이나 예비력 투입 여부를 사전에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의 사후대응과 확연히 다른 형태다.

독일 프라운호퍼 ISE가 '에너지차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중인 태양광발전량 예측치 및 실제 발전 결과 데이터 차트. 태양광 외에도 육상·해상풍력 데이터도 살펴볼 수 있고, 송전망 소유기업이자 계통운영자인 TenneT, 50Hertz 등 기업별로도 파악할 수 있다. [출처=프라운호퍼 ISE 에너지차트 홈페이지 캡처]
독일 프라운호퍼 ISE가 '에너지차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중인 태양광발전량 예측치 및 실제 발전 결과 데이터 차트. 태양광 외에도 육상·해상풍력 데이터도 살펴볼 수 있고, 송전망 소유기업이자 계통운영자인 TenneT, 50Hertz 등 기업별로도 파악할 수 있다. [출처=프라운호퍼 ISE 에너지차트 홈페이지 캡처]

기술적 유연성 확보도 병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가상발전소(VPP)다. 독일은 소규모 태양광, 풍력, ESS, 열병합발전 등 분산형 자원을 하나의 발전소처럼 묶어 운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상업화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정책도 발맞춰 움직였다. 정부와 BNetzA는 일부 유휴 화력발전기를 ‘그리드 리저브’로 지정해, 최소 부하 상태에서 15분 내 출력조정이 가능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일종의 물리적 간헐성 보완 인프라다. 출력제어 보상액이나, 재생에너지 지원금(EEG 부과금)·해상풍력연계비용 등 전환비용 문제도 회피하지 않았다.

대신 ‘계통에 흡수 가능한 간헐성’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 국민이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에 따른 비용을 요금 고지서상에 항목별로 분담하는 구조를 수용했다. 2022년 EEG 부과금은 폐지됐지만, 이후에도 정부가 일반 예산으로 보전하고 있다. ‘전기요금으로 미래에너지에 투자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고, 요금 구성의 투명성이 수용성의 기반이 됐다.

◆재생에너지 안착 이후....계통 확장은 여전한 ‘난제’

독일은 재생에너지를 단순히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맞는 시장과 계통, 사회적 합의를 설계하려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성공과 실패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간헐성 문제는 기술만으론 해결되지 않으며, 제도와 시장의 정교한 결합이 필수임을 독일은 보여준다.

이처럼 정책, 시장, 계통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정착 구조를 구축해왔지만, 과제 역시 분명하다. 특히 풍력발전이 몰린 북부에서 전력을 산업 중심지인 남부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 확충은 지연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주민 반대와 환경 규제, 시공 난이도까지 더해지면서 HVDC 프로젝트 상당수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관련해 주민 수용성은 독일로서도 난제다.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공감하지만, 송전탑이나 HVDC 변전소가 자신의 지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선 한국 못지않은 강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정부는 경제적 보상 외에도, 지역 주민을 이해관계자이자 참여 주체로 포함시키는 다양한 제도를 고안하고 있지만, 명쾌한 답안으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송전거리 700km, 4GW 용량의 독일 내 최장 HVDC 프로젝트인 수드링크(SüdLink)는 주민수용성 논의 끝에 대부분의 구간에 지중화 공법을 적용했다. 수드링크의 핵심 구간 중 하나인 5.2km 길이의 엘베강 지중 송전선로 공사 현장. [제공=TenneT]
송전거리 700km, 4GW 용량의 독일 내 최장 HVDC 프로젝트인 수드링크(SüdLink)는 주민수용성 논의 끝에 대부분의 구간에 지중화 공법을 적용했다. 수드링크의 핵심 구간 중 하나인 5.2km 길이의 엘베강 지중 송전선로 공사 현장. [제공=TenneT]

※이번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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