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GW 계통 대기·90억유로 손실…에너지전환 병목은 ‘그리드’
UNEZA·IRENA, ‘전력망 인프라 구축 보고서’ 통해 4대 실행 해법 제시
장기계획·선제 금융·공급망 동맹·숙련인력 확보가 속도 좌우

유틸리티넷제로연합(UNEZA)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전력망 확충의 성공 사례로 꼽은 제주-육지 HVDC 제3연계선 프로젝트. [출처=UNEZA]
유틸리티넷제로연합(UNEZA)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전력망 확충의 성공 사례로 꼽은 제주-육지 HVDC 제3연계선 프로젝트. [출처=UNEZA]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를 실어나를 전력망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와 유틸리티넷제로연합(UNEZ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3000GW가 넘는 발전 프로젝트가 계통 접속을 기다리고 있고, 2023년 유럽 6개국에서는 출력제어로 약 30TWh의 전력이 낭비됐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90억유로에 달했다. 결국 에너지전환의 병목은 ‘그리드’라는 점이 명확해졌다는 지적이다.

UNEZA와 IRENA는 최근 ‘대규모 전력망 인프라 구축 보고서(Delivering Large-scale Grid Infrastructure Projects)’를 발간하고 향후 15년간 전력망 적기 확충의 방향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2040년까지 8000만km의 송전망 신설·보강이 필요한 가운데 COP29을 통해 2030년까지 2500만km 확충을 약속한 국가들이 본격적인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IEA와 영국 정부가 제시한 ‘전력의 시대(Age of Electricity)’ 선언과 맞물려 선제적이고 계획적인 인프라 투자가 에너지전환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전력망 확충의 지름길 중 첫 요소로 장기적
보고서는 전력망 확충의 지름길 중 첫 요소로 장기적·통합적 계획 단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출처=UNEZA]

보고서는 전력망 확충의 ‘지름길’을 ▲계획(Planning) ▲금융(Finance) ▲공급망(Supply Chain) ▲인력(Skills)이라는 네 축으로 요약했다.

우선 장기적·통합적 계획이 모든 단계의 출발점으로 지목됐다. 전체 사업 기간 중 20~30%를 계획단계에 투자하고, 국가·지자체·규제기관·주민이 조기에 참여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 특히 기존 도로·철도 회랑을 우선 검토하고 인허가 지연이 예상되는 지역은 선지정 구역으로 지정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안정적 수익률과 규제 일관성을 확보한 ‘선제적 금융 종결’이 관건으로 꼽혔다. 현재 대형 전력망 사업 중 금융 종결에 도달한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UNEZA는 장기계획을 기반으로 사업성을 명확히 하고, 공공·민간 협력(PPP)과 그린본드, 혼합금융 등 다양한 조달 수단을 조기에 구조화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신흥국은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현지 통화 기반 ‘양허성 금융’(특정 프로젝트 또는 신흥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하는 금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급망은 단순한 거래 관계에서 벗어나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변압기, 고압케이블 등 핵심 자재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프레임워크 계약과 생산능력 예약, 표준화된 설계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송전망 운영사 테넷(TenneT)이 추진하는 ‘2GW 프로그램’은 동일 사양을 반복 적용해 속도와 비용을 동시에 줄인 대표적 모델로 소개됐다.

보고서는 인력 부족도 구조적 리스크로 지목했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2030년까지 3000만명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지만, 숙련 기술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각국은 직업학교·대학 연계형 훈련을 확대하고, 현장 숙소·교통·복지 등 사회 인프라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과 청년층 등 비진입 집단을 적극 유입시키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전략을 실제로 구현한 성공 사례도 다수 제시됐다. 런던 파워터널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32km 구간에 송전회로 10개를 수용하며 계획된 예산과 일정을 모두 준수했다. 스코틀랜드의 카이스니스–모레이–셰틀랜드 HVDC 프로젝트는 유럽 최초 멀티터미널 VSC HVDC 링크로, 지역 일자리 400개를 창출하며 2024년 완공됐다. 브라질의 이타이푸 HVDC는 6.3GW 송전용량을 가진 세계 최대급 수력연계망으로 2023년에 최종 상환을 마쳤다. 한국의 완도–제주3 HVDC는 200MW 연계를 통해 섬 지역 전력안정화와 재생에너지 100% 전환 기반을 마련했다.

보고서는 “대규모 전력망 프로젝트는 계획과 실행의 정합성을 확보하면 예산과 일정 안에 달성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장기 통합계획 수립, 민관 금융혁신, 공급망 전략화, 기술인력 양성이라는 네 축을 균형 있게 추진하는 것이 전력망 확충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며 “이는 에너지전환의 속도와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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