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가공송전 전담 연구조직
765kV·500kV 선로 핵심 기술 독자 확보 및 실증 완료
세계 최초 도체귀로 방식 HVDC 선로 설계 본격 추진
미래 먹거리·에너지 안보 위해 전문인력 양성·제도 구축 시급

한전 전력연구원 전력계통연구소 송전솔루션팀의 김영홍 책임연구원(왼쪽 네 번째), 이승우 책임연구원(오른쪽 세 번째) 등 팀원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한전 전력연구원 전력계통연구소 송전솔루션팀의 김영홍 책임연구원(왼쪽 네 번째), 이승우 책임연구원(오른쪽 세 번째) 등 팀원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국내 전력산업은 전력 수요 증가, 대규모 발전단지 확산, 기후 변화 대응, 사회적 수용성 확보 등 복합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송전 분야에서는 초고압 기술 수요가 늘고 있지만,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과 기업은 극히 드물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송전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실증까지 수행 가능한 국내 유일 기관인 한국전력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력망 유지를 위해 기관 단위의 전략적 기반 마련이 중요한 시점이다.

그 중심에 선 조직이 한전 전력연구원(원장 심은보) 산하 전력계통연구소의 송전솔루션팀이다. 이들은 철탑과 전선, 주변 전기환경을 포함한 가공송전 기술을 전담하며, 국내 송전 기술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후변화와 설비 노후화에 대응해 전 생애주기 관리와 미래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력연구원 송전솔루션팀이 구축한 HVDC 실증시험선로 구성도.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전력연구원 송전솔루션팀이 구축한 HVDC 실증시험선로 구성도.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HVDC 국산화부터 프리팹·AI 설계까지, 송전 기술 대전환

송전솔루션팀은 765kV 초고압 교류 송전망과 ±500kV HVDC 송전망의 핵심 설계기술을 자체 확보했으며, 이를 국내 주요 선로에 실제 적용한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765kV 기술은 1980년대부터 수십 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345kV 대비 약 3.4배 전력을 수송할 수 있는 대용량 전송을 실현했고, 주요 기자재 국산화로 3000억원 이상의 외화 절감 효과도 거뒀다.

최근 두드러지는 분야는 초고압 직류 송전(HVDC) 기술이다. 동해안 발전력을 수도권으로 이송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한 ±500kV급 HVDC는 동일 송전용량 대비 철탑 크기를 30% 줄일 수 있고 전자계로 인한 민원도 완화할 수 있다.

송전솔루션팀은 한 발 나아가 세계 최초로 도체귀로 방식의 더블 바이폴 가공 HVDC 송전선로 설계를 추진 중이다. 도체귀로는 전류의 귀환 경로를 땅이 아닌 전선(중성선)으로 구성해 금속 부식과 통신 장애를 방지하고, 더블 바이폴은 ±극 송전선을 두 쌍으로 구성해 송전용량과 계통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금속 부식 및 통신 장애를 유발하는 전극소를 제거할 수 있어 인구밀집 지역에 적합하지만, 철탑 하중 증가 등 기술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 최적화, 중성선 가선 공법, 전용 점퍼 장치 등 다양한 기자재도 함께 개발되고 있다.

해당 기술은 동해안-신가평(230km, 4GW), 동해안-동서울(50km, 4GW) 선로를 연결하는 총 280km 규모, 8GW급 HVDC 건설사업(EP 사업)에 적용될 예정이다. 고창 전력시험센터에서는 절연 설계, 철탑 형상, 애자 검증 등 실증 기반 설계기준 수립을 완료했고, 전자파 및 코로나 소음 민원 해소를 위한 설비도 함께 검증했다.

EP 사업에 적용될 프리팹(Pre-Fab) 시공법도 특색이다. 전선을 공장에서 재단하고 클램프를 미리 부착해 철탑 고소작업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부품을 사전에 제작·가공해 시공기간 단축, 안전성 향상, 자재 낭비 감소를 동시에 잡았다.

전력연구원은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완전형(Full) 프리랩 방식을 개발해냈다. 지난해 고창시험센터에선 오차율 0.33을 기록하며 실증을 완료했고, 올해 EP 사업 1공구(4.14km)에 시범 적용할 예정이다.

송전솔루션팀은 경과지 선정에 도입할 인공지능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기존에는 지형·법령·환경정보를 수작업으로 분석해 노선을 설계했지만, 신규 시스템은 AI가 지적도·규제지도를 학습해 최적 경과지를 자동 제안할 수 있다. 설계 시간 단축은 물론 민원 리스크 사전 대응에도 효과적인 방안이다.

한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체 기술을 확보한 Pre-Fab 공법의 구성도.기존 공법 대비 시공 효율과 안전성을 크게 높였다.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한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체 기술을 확보한 Pre-Fab 공법의 구성도.기존 공법 대비 시공 효율과 안전성을 크게 높였다.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송전솔루션팀이 개발한 용량증대전선의 종류. 기존 대비 최대 1.9배의 용량으로 가공송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송전솔루션팀이 개발한 용량증대전선의 종류. 기존 대비 최대 1.9배의 용량으로 가공송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제공=한전 전력연구원]

◆복합 전선·DLR·그래핀까지...신소재·신기술 총집결

송전 제약 문제 해결을 위해 송전솔루션팀은 기존 전선보다 1.5~1.9배 높은 용량을 확보한 신소재 복합 전선(PIAC/TW)을 개발하고 보급에 나섰다. 연알루미늄 도체와 복합소재 지지심을 조합해 무게는 줄이고 인장 강도는 높였다. 이미 전체 가공 송전선로 3만527C-km 중 약 13%인 4047C-km 구간에 신소재 전선을 적용했고, 11차 장기송변전 설비계획 실행에 따라 더욱 많은 선로에 활용될 전망이다.

연알루미늄 전선은 일정하지 않은 신장 특성으로 기존 계산법으로는 정확한 설계가 어려웠다. 전력연구원은 이를 반영한 4차 방정식 기반의 새 계산법을 개발해 처짐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설계 오차를 크게 줄여, 2038년까지 2490C-km 신규 구간에 적용할 계획이다.

또한 송전솔루션팀은 실시간 기상조건에 따라 송전 용량을 자동 산정하는 DLR(Dynamic Line Rating) 기술도 도입 중이다. 기존 계절별 고정 용량 설계보다 최대 30% 송전 용량을 높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전선 부착형 센서 4종과 AI 기반 고해상도 기상 예보 알고리즘도 개발해 시범 적용 중이다.

아울러 그래핀 기반 신전력기기(GLCP) 개발도 병행되고 있다. 확보한 원천소재기술을 기반으로 초경량·고강도 전력기기, 전선과 해저케이블도 연구 중이다. 이를 실증하기 위한 250억원 규모 국산화 사업도 내년부터 2031년까지 추진할 예정이다. 이 기술은 선로 처짐과 진동을 줄이고 민원을 완화하는 미래형 솔루션으로 기대를 모은다.

송전 인프라의 장기적 신뢰성 확보를 위해 설계 기준도 연구원을 통해 진화 중이다. 2050년까지 풍속·온도 변화 예측값을 반영해 기후변화 시나리오(SSP) 기반의 지형별 설계 보정 시스템을 도입한 것.

설비 진단 기술도 고도화했다. 2020년부터 개발된 ACSR 전선 내부결함 진단장비와 접속 개소 자기장 분석기술은 장비 철거 없이 전선 내부 상태를 정밀 진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지보수 주기 최적화, 사전 고장 예측, 수명 관리가 정량화 기반으로 가능해졌다.

한전 전력연구원이 운영 중인 고창시험센터 전경. 765kV, 500kV급 HVDC 설비 국산화의 산실로 기능하고 있다. [사진=한전 전력연구원]
한전 전력연구원이 운영 중인 고창시험센터 전경. 765kV, 500kV급 HVDC 설비 국산화의 산실로 기능하고 있다. [사진=한전 전력연구원]

◆국산 송전기술의 실증 거점, 세계로 뻗는 고창시험센터

연구원이 운영 중인 고창전력시험센터도 자랑거리 중 하나다. 765kV AC와 500kV DC 가공 송전선로를 실규모로 시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설비다. 선로 설계, 철탑 구조, 애자 수량, 전자파 영향 등 다양한 요소를 현장 조건과 유사한 환경에서 검증 가능하고, 그 결과는 국내 송전망 설계에 직접 반영된다. 최근 착공에 들어간 EP 사업의 반영기술도 이곳이 ‘산실’인 셈이다.

센터는 단순한 실증 기능을 넘어 국제 협력 플랫폼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 인증기관인 네덜란드 TÜV와 제휴해 고창 현장에서 초고압 케이블 시험 후 곧바로 국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 전력사들의 공동시험 문의도 늘고 있는데, 오는 하반기에는 빅테크 기업 고위 관계자의 현장 방문도 예정돼 있다. 시험장 인프라를 해외 전력시장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연구진은 향후 AC-DC 하이브리드 선로 구성, 고온저이도 도체 적용, 동적 송전용량(DLR) 확보 등 차세대 송전 인프라 연구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시험장 내 유휴 부지는 향후 신형 철탑 또는 1000kV급 초고압 선로 시험 등 고도화된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송전 인프라의 수명 연장과 국산화 기술 확보를 위한 국가 단위 실증 거점으로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고창전력시험센터 내 설치된 HVDC 실증설비 전경. 신규 철탑 설계부터 신소재 전선 시험인증, Pre-Fab 공법 개발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사진=김진후 기자]
고창전력시험센터 내 설치된 HVDC 실증설비 전경. 신규 철탑 설계부터 신소재 전선 시험인증, Pre-Fab 공법 개발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사진=김진후 기자]

◆'산업의 혈맥' 송전 인프라, 인력·제도 뒷받침 돼야 할 때

전력연구원 송전솔루션팀은 ▲HVDC 초고압 송전 ▲복합소재 전선 ▲동적용량 ▲시공혁신 ▲진단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 기술을 총괄하며 가공송전 분야의 기술 축적과 전환을 이끌고 있다. 전력산업이 디지털·친환경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면에서, 이 팀의 역할은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미래 인프라 설계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를 담당하는 팀내 정규 연구 인력은 7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수십 년간 축적된 고난이도 기술들이 소수 인력에 의존하는 구조로, 만약 조직이 축소되거나 해체될 경우 기술 단절과 계통 확충 대응력 약화가 우려된다.

실제 유럽은 한때 가공송전 R&D가 중단되면서 노후 설비 교체 시 기술 공백을 겪은 바 있다. 현재 국내 송전선로의 약 25%는 40년 이상 된 노후 설비로, 향후 교체와 용량 증대 수요가 폭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압 송전은 여전히 우리나라 전력망의 중심축이며, 향후 재생에너지 확대와 기후 위기 대응에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또한 송전 인프라 고도화는 차세대 에너지 산업의 미래 먹거리이자, 전력 자립과 안보를 뒷받침할 핵심 자산이기도 하다. 전력연구원과 송전솔루션팀이 축적해 온 기술 자산이 단절되지 않도록 인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고창전력시험센터에 설치된 HVDC용 철탑과 서지 실험 장비 전경. [사진=김진후 기자]
고창전력시험센터에 설치된 HVDC용 철탑과 서지 실험 장비 전경. [사진=김진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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