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 산업 성공 이끈 비결은 ‘일관된 정책 기조’
대만, 중앙정부-지방정부 이견·LCR 부담 등은 숙제
현지 사업자, 예측 가능성으로 사업 안정성 담보
한국, 대만과 상반된 여건 따라 정책·산업 소통 필요성 대두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재생에너지 기술배치(RETD) 분과는 지난 2017년 ‘국제 해상풍력 에너지 개발의 비교 분석’ 보고서에서 해상풍력발전 개발사업이 성공하려면 ▲금융 여력 ▲강력한 개발팀 ▲이해관계자와의 협력 ▲기술혁신 ▲규제 틀이 따라줘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앞선 해상풍력 선도국, 특히 대만의 경우 질서정연한 규제와 정책이 여타 요인을 연쇄적으로 성공케 한 기반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지향점이 명확한 정책적 바탕과 투명한 인허가 절차가 완비되면 국내외 개발사들의 사업여건이 비로소 성립되기 때문이다.
역내 개발사들은 이를 토대로 공급망과 인프라 구축에 나설 수 있고, 사업의 불확실성과 장래의 경제성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조달도 한층 원활해졌다는 분석이다. 이는 대만이 한국, 일본 등이 있는 아시아지역 해상풍력 산업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 정부 단일창구로 사업 가시성 ‘뚜렷’
국내 전문가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대만 해상풍력의 성공요인은 간결한 인허가 제도다. 이 제도의 배경에는 ‘경제부 능원서(經濟部 能源署)’라는 부처가 있다.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일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경제부 내에 에너지 관련 행정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일종의 독립기관인 에너지청 내지 에너지국 정도로 볼 수 있다. 당초 1979년 능안위원회(에너지위원회)로 출범했던 조직을 1993년 에너지국으로 격상했고, 지난해 경제부 에너지행정기본법 공포의 후속조치로 능원서(에너지청)가 개편됐다.
능원서는 전력시장과 화석연료 기반 발전사업, 재생에너지 사업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산업부와 유사하지만, 해상풍력사업의 인허가 전반을 이곳에서 모두 관장한다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다. 일종의 ‘싱글 윈도우(단일창구)’로서, 하나의 관청이 ▲보급계획 수립 ▲사업 입지 선정 ▲사업자 선정 ▲용량배분 ▲협의 및 보상 ▲주민수용성 등의 업무를 집중처리하는 형태다.
조은별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단일창구는 인허가 절차를 효율화하고 간소화한 측면도 있지만,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며 “정부 주도로 여타 발전원과 출발선이 다른 점을 감안해 전력시장을 설계했고, 계획 입지를 통해 계통 연계 차원에서도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었다. 사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대만은 국가가 지향하는 바를 경쟁입찰 기준 설정 시 발전단가와 경제성, 사회적 영향 등 정성적인 부분을 강하게 어필한 현지화정책(LCR)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LCR 제도화는 사업자 입장에선 매우 강력한 정책이었고 사업 초기 이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투명한 정책과 간결한 인허가를 통해 사업이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다수의 사업자들도 이를 충족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정부가 시장에 뚜렷하고 변함이 없는 신호를 보낸 결과 사업자들도 대만 내 해상풍력 개발사업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강도 높은 규제를 내걸었음에도 해외기업의 대만 진출(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이렇게 사업 기반이 마련되자 해외 개발사 외에도 일본전력기업인 JERA 등도 진출을 서둘렀다. 실례로 지난해 진행된 하이롱 2·3 발전단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경우 일본국제협력은행(JBIC)과 우리나라의 KDB산업은행, 영국-홍콩의 HSBC, 홍콩의 스탠다드차타드 등이 총 5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조달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개발사업의 가시성이 커지면서 내수 시장의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됐고, 제조업체들의 공급망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직ㆍ간접적인 고용효과와 경제효과도 뒤따랐다.
▶ 위기·과제 상존에도 사업자 신뢰 ‘꿋꿋’
물론 대만 내 해상풍력 산업도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양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고, 개발 금융의 수익성과 직결된 금리도 사업 설계 당시보다 2배 내외로 급등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해상풍력 산업과 공급망 형성에도 상당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 640MW급 윈린 해상풍력의 경우 유럽을 포함한 15개 국제 상업은행이 참여해 금융조달에 성공했지만, 총 30억유로로 예상되던 사업비에서 17억유로의 초과 비용이 발생하면서 2021년으로 목표했던 준공시점을 2년 이상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대만 나름의 정치적 불안정성도 잠재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진행된 지방공직인원 선거에서 해상풍력단지가 밀집된 타이중시, 신주현, 장화현 등의 지방정부 수장으로 모두 국민당 인사가 당선된 점도 사업자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본지 취재진이 방문한 한 O&M 센터의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권력 불일치로 센터가 전용할 공업단지 내 항만시설의 사용허가가 지연되고 있었다.
CIP 관계자는 “당초 상업용 내항이었던 곳을 우리를 위한 항구로 개조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현재 타이중항에서 발전단지로 나가는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며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이견을 보이면서 센터와 부두 모두 물리적인 준공은 이뤘음에도, 정책에 따라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사례로 남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산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들은 대만이 향후 수년간 아시아 지역의 해상풍력산업을 이끌 것이란 명제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특히,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소통능력이 사업에 속도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대만 현지 개발사 관계자는 “해상풍력정책 초기만 해도 에너지 안보와 중국 자본 및 중국산 제품의 침투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산업활성화를 최우선 기치로 정부와 지방정부, 개발사, 관련 산업계 사이에 LCR 등의 정책이 왜 필요한지, 어떤 수요를 창출할지에 대해 충분히 많은 소통이 있었다”며 “지자체는 경제효과를, 개발사는 개발 역량을 갖추며 정책도 설득력을 확보했고, 이는 개발사들의 의욕적인 재투자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발사 관계자는 “현재 PF 위기 등은 한때의 부침이라고 이해하고, 개발사로선 그때그때 적절한 사업구조나 리파이낸싱(금융재조달) 등을 고려하는 것이 숙명이다. 다행히 문제가 됐던 금리 인플레이션은 완화 국면에 들어섰다”며 “그에 반해 정부 정책은 비교적 고정적이다. 중앙정부의 기조는 뚜렷하고, 지자체도 다소간의 문제는 있다지만 역내 고용창출효과, 경제효과를 기대하고 지역 이해관계자를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국내 해상풍력업계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과 신뢰성”
대만의 해상풍력 개발 역사는 국내에 많은 질문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정부 정책의 신뢰성 확보와 소통 역량은 국내 정책 여건에서 가장 미흡한 지점으로 꼽힌다.
인허가 문제부터 단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국내에서 해상풍력사업을 추진하려면 환경부, 해양수산부는 물론 최근 공유수면 점유 등의 문제로 잡음을 내고있는 국방부까지 전체 10개 부처로부터 29개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개발사로서도 정부로서도 중복 내지 불필요한 시간·비용 소요를 가져온다. 각종 환경영향평가와 인허가 사이의 뒤바뀐 순서도 사업을 지연시키는 주요인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발전사업허가를 받고 입지 평가를 거치는 구조다. 사업 초기 에너지공단 풍력발전 추진지원단의 검토를 받긴 하지만, 검토-허가-협의 등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투자 등 개발역량을 투입하기에 불확실성이 너무 큰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책적 불안정성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주요인이다. 실례로 지난해 정부가 진행한 LCR 폐기 및 입찰요건 개정 당시에도 수많은 반발에 부딪혀야 했다.
한 국내 개발사 관계자는 “넓게는 전기요금부터 작게는 LCR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물론 기관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제도가 지나치게 오락가락하면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LCR의 경우 내부망 기준 변경이 이뤄지면서, 당초의 제도 취지대로 가중치를 두고 금융구조를 짰던 사업장들은 급격한 사업환경 변화, 사업성 급락을 맞아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LCR의 경우 처음 나왔을 때부터 WTO의 무역분쟁을 예상하며 반대한 목소리도 컸지만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인상”이라며 “국내 투자 유치를 기획한 해외기업들은 LCR 제도 변경에 따른 타격이 비교적 덜하다. 정작 국내 개발사들은 그나마 기대했던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며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하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작년 11월 유관기관과 200여개 업체가 참여해 의견을 수렴하는 풍력산업 혁신포럼을 발족했지만, 성과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정책, 주민수용성, 산업육성 등 분과별로 사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지만, 첫 성과가 나오기까지 아직 반년이 남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지만, 정작 의견수렴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제 정책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의 입김이 있는 한 아직은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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