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지리적・정치적 조건 비슷…일관성・간절함이 차이 갈랐다

외국계 개발사 적극 활용, 대단지 조성 성공
국내서는 자국 기업 중심, 국제 협력 고민 필요
구체적인 공급 로드맵 나와야 선주, 정부 준비 가능

타이완 먀오리현 주난진에 위치한 대만 최초의 풍력 단지 ‘포모사1’. / 촬영=안상민 기자
타이완 먀오리현 주난진에 위치한 대만 최초의 풍력 단지 ‘포모사1’. / 촬영=안상민 기자

대만의 해상풍력 산업은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그러나 대만은 국토의 사면이 바다라는 것 이외엔 특출난 조건을 지닌 국가가 아니다.

해상풍력 산업의 기반은 해저 석유와 해저 천연가스 추출 등 해양 에너지 산업이다. 글로벌 해상풍력 개발사인 오스테드, 에퀴노르, bp, 쉘 등 많은 개발사가 해저 자원 추출 산업을 근간으로 두고 있다. 깊은 바다 속에 감춰진 화석연료를 조사하고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추출 시설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산업의 형태가 해상풍력 발전사업과 비슷한 절차를 지닌다.

그러나 대만은 자국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원의 98%를 해외에서 수출하는 자원빈국이다. 자체적인 해저탐사 기술과 해저 시설물 제조 인프라도 일천하다.

이런 악조건에도 차이잉원 총통이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2016년 이래 대만은 10년도 되지 않아 해상풍력 강국이 됐다. 대만은 2025년까지 5.6GW의 해상풍력 단지를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올해가 지나면 대만에서 3.5GW가 넘는 대단지가 상업운전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대만과 비슷한 지리적, 정치적 조건을 갖고 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지이며 섬나라로서 고립계통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빈국임에도 원전과 재생에너지 활용을 놓고 정치권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또 산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대만 해상풍력 관계자들은 일관된 에너지 정책과 산업에 대한 간절함에서 성공 요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국계 개발사 역할, 실증단지 비교해 보니

대만 해상풍력 산업 초창기에 시장에 들어온 오스테드와 CIP 관계자들은 당시 대만의 공급망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시범사업을 비롯해 본 사업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공급망이 윤곽을 갖춰갔다는 설명이다.

대만의 대표적인 실증단지는 128MW 규모 포모사1 단지다. 대만 개발사 스완코(Swancor)가 오스테드 등 글로벌 기업과 함께 개발했다. 109MW의 창화1은 대만전력(Taipower)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지만 벨기에 얀데눌(Jan De Nul)-일본 히타치(HITACH) 컨소시엄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실증단지는 ▲한국남동발전의 30MW 탐라해상풍력 ▲한국동서발전의 34.5MW 규모 영광풍력발전 ▲한전과 발전 6사가 합작한 60MW 규모 한국해상풍력 등 3곳이 있다.

대만은 사업 초창기부터 글로벌 기업을 적극 유치해 협력했고 우리나라에선 공공 발전사를 활용해 사업을 추진했다. 국내 에너지 산업을 보호하고 우리 기업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한 조치로 풀이된다. 시간이 더 지나야 두 나라 중 어떤 나라의 제도가 더 효율적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당장의 결과는 대만이 두 발짝 앞서 나가는 모양새다. 1단계 경험을 통해 2단계 사업부터 자국 기업이 참여한 대만의 376MW 규모 포모사2 단지가 지난 5월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일본 JERA(49%), 영국 맥쿼리 GIG(26%), 대만 시네라 리뉴어블 에너지(25%)이 공동 개발한 현장이다

국내에서 다음 해상풍력 보급단지가 될 ▲완도금일해상풍력1, 2 ▲신안우이해상풍력 ▲영광낙월해상풍력 ▲고창해상풍력은 일부 단지에서 중국 자본이 참여했지만 대부분 국내 개발사를 위주로 개발됐다.

외국계 개발사들이 유독 한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국내 해상풍력 보급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다양한 해외기업 포트폴리오와 개발 역량을 갖춘 해외 개발사를 어떻게 국내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타이중에 위치한 해상풍력 전용 설치항만에서 CIP의 해상풍력 설치선이 출발하고 있다. / 제공=CIP 
타이중에 위치한 해상풍력 전용 설치항만에서 CIP의 해상풍력 설치선이 출발하고 있다. / 제공=CIP 

◆일관된 보급계획으로 불확실성 줄여

대만은 237MW의 실증사업인 ROUND1을 마친 후 지난 2020년부터 오는 2050년까지 5.4GW의 해상풍력을 보급한다는 ROUND2 계획을 세웠다. 이후 ROUND3에서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간 1.5GW의 단지를 매년 추가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밝혔다.

구체적인 계획을 밝힘으로서 외국계 기업을 유치하고 자국 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한 것이다. ▲호주 맥쿼리▲독일 WPD ▲덴마크 오스테드, CIP ▲캐나다 노스랜드파워 등 글로벌 재생에너지 투자사들을 비롯해 타이완 국내 기업인 스완코, 타이파워, CSC(중국철강) 등이 해상풍력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탄탄한 수익구조도 만들었다. 재생에너지개발법(Renewable Energy Development Act)을 통해 대만전력이 해상풍력으로 발전된 전기를 20년간 고정가격에 구매하도록 FIT 제도를 설계했다.

이같은 구체적인 수요에 인프라 투자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대만국제항만공사(TIPC)는 국제 항만인 타이중항만에 해상풍력 산업 지원을 위한 10여 개 부두를 개발했다. 현재 타이중 항만 내에 3개의 설치부두가 조성돼 있으며 ROUDN3에서 항만 부족을 우려해 추가 부두 개발도 진행 중이다.

대만 내 선사들은 발전기 설치를 위한 WTIV를 유럽에서 용선했으며 지난해에는 대만 로컬 조선소 CSBC에서 자체 WTIV인 ‘그린 제이드(Green Jade)’를 제조했다. 그린 제이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WTIV로 대만 해역에선 최소 3척 이상의 WTIV가 작업 중이다.

대규모 단지 조성이 확정된 만큼 글로벌 O&M 센터도 들어섰다. 타이중과 창화에는 각각 오스테드와 CIP의 O&M 센터가 조성돼 있다. 대만 정부는 오스테와 CIP에 20년간 O&M 센터 부지를 대여하며 사업체를 유치했다. O&M 기술은 풍력발전 시설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기술자 양성이 필수다. 아시아에서 이 시장을 대만이 선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연쇄효과를 위해 구체적인 로드맵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30년까지 14.3GW의 해상풍력을 보급한다는 계획 외에는 국내엔 아직까지 연도별 계획을 담은 로드맵이 마련돼 있지 않다. 당연히 인프라도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엔 아직 해상풍력 전용 설치부두가 없다. 올해 상반기 목포 신항이 개항할 예정이지만 선석이 1곳밖에 되지 않아 항만과 부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선박업계에선 구체적인 공급 로드맵이 나와야 선주들이 WTIV를 발주할 수 있고 해양수산부에서도 해상풍력 항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비록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지난해부터 연간 수요를 예측해 고정가격입찰을 시작했지만 시장에서 수요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공급 계획을 정해주는 업다운 방식도 고려가 필요하다.

대만 CIP 관계자는 “앞으로 있을 한국 내 지원항만과 제조공장 설치에도 당국의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적재중량을 감당할 부두와, 거리를 최대한 단축한 제조공장, 이러한 입지를 가능케 하는 당국의 정책적 배려가 대만 내 경제효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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