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힘 못 쓰는 외국 개발사, 진입 장벽 더 높아져
발전사업허가 불발된 크레도, 외국 기업에 까다로운 ‘韓’
해상풍력특별법 통과 대비한 사전조치란 해석도
中 자본 유치 노리는 중소 개발사, 낙월·고창 사례 주목
현 기술력 고려 “기술이전 조건부로 유입 허가해야” 의견도

타이완 먀오리현 주난진에 위치한 대만 최초의 풍력 단지 ‘포모사1’ / 촬영=안상민 기자
타이완 먀오리현 주난진에 위치한 대만 최초의 풍력 단지 ‘포모사1’ / 촬영=안상민 기자

국내 해상풍력 산업에 외국계 자본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수출국가로서 재생에너지 공급이 간절하고 해상풍력 보급 잠재력이 높은 국내 시장은 대규모 자본을 가진 큰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국내 해상풍력 시장에는 오스테드, CIP/COP, 코리오제너레이션, 크레도 오프쇼어, RWE, 에퀴노르, 노스랜드파워 등 수십여 개의 외국계 자본이 들어와 있다. 이 외국계 개발사들은 이미 해외에서 대규모 단지 개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해상풍력 시장에 드라이브가 걸리면 그간의 단지 개발 노하우를 꺼낼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중국계 자본의 유입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금이 부족한 국내 중소 개발사 중심으로 중국 자본을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지난해 4월 LCR을 폐지하며 더 이상 중국계 자본과 공급망을 막을 방법이 없어진 현실도 이런 분위기를 만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는 무분별한 외국계 자본 유입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에너지 안보와 자급자족을 위해 추진하는 해상풍력 사업이 자칫 외국계 개발사의 먹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 한 관료가 글로벌 개발사가 다수 유입된 국내 해상풍력 시장을 놓고 ‘구한말’ 일본의 자본잠식에 빗댄 것은 업계에서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기술력과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업계에 글로벌 기업의 참여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개발사 자본 부족, 中 유입 통로 된다

대한전선이 수행한 서남해 해상풍력 프로젝트 현장. / 제공=대한전선 
대한전선이 수행한 서남해 해상풍력 프로젝트 현장. / 제공=대한전선 

국내에서 사업을 추진 중인 개발사들은 먼저 자본과 인허가의 문제에 부딪힌다. 발전사업 세부허가 기준이 강화되기 전에 공유수면을 선점한 중소 개발사들은 자금력 부족으로 사업 추진에 부침을 겪고 있다.

한 글로벌 개발사 관계자에 따르면 대규모 자본을 지닌 글로벌 기업이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받고 풍황계측기를 설치하면 근방에 20~30여 개의 중소 개발사가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신청한다. 사업지를 침범한 후 현장 지분을 강매하는 소위 ‘알박기’를 위한 것이다.

이는 가짜 개발사들이 자본금과 사업의지 없이도 해상풍력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현재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 및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현장 중 자본금과 사업의지 부족으로 탈락되는 현장이 대규모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하반기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실시한 풍력 고정가격입찰제도에서 중국 자본이 유입된 현장이 입찰에 성공하면서 중소 개발사의 사업 문을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

낙찰된 해상풍력 프로젝트 5곳 중 낙월해상풍력, 고창해상풍력  2곳은 중국 자본과 중국산 터빈·해저케이블 등이 유입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자본을 유치하면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장에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다.

풍력 업계 관계자는 “자금력이 없어서 사업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개발사들은 지난번 입찰에 성공한 2개 현장을 주목하고 있다”며 “지분 매각이든, 공급망 사용이든 중국의 자본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경험 부족하지만…국내 기업 힘 싣는 산업부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풍력2공장 내부 모습. 5.5MW 풍력발전기 나셀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 제공=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풍력2공장 내부 모습. 5.5MW 풍력발전기 나셀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 제공=두산에너빌리티)

산업부는 지난해 입찰 당시 상한가격을 비공개함으로써 가격 경쟁을 유도한 것이 중국 자본과 공급망의 유입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고 이를 수정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시행될 입찰에서는 국내산 공급망의 사용 비중을 평가하는 ‘산업기여도’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로써 저가 중국산 제품 유입을 차단하고 국내 산업을 활성화시킨다는 방침이다.

또 해외 개발사에 대한 사업 진입 장벽을 더욱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해상풍력 개발사가 ‘자본’의 벽에 막혀있다면 글로벌 개발사들은 ‘인허가’의 벽에 막혀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인허가 경험이 있는 해외 개발사들이 유독 한국의 인허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외 개발사에 더욱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전남 신안군 일대에서 초대형 발전단지 건설을 추진 중인 크레도 오프쇼어는 최근 5개 현장의 발전사업허가가 모두 불허됐다. 10조원 규모의 자본이 투자되는 이 현장은 표면상으로는 전력계통 문제로 발전사업허가가 불발된 것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외국계 개발사에 장벽을 높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크레도 오프쇼어는 글로벌 펀드사인 블랙록의 자본이다.

외국계 개발사에 장벽을 높인 데는 산업부가 해상풍력 특별법(풍촉법)을 추진 중인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정부 주도의 계획입지를 시행하게 되는데 이때 이미 현장에서 사업을 추진 중인 개발사들에 우대와 보상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해상풍력 특별법 통과를 위해 이번 달 다시 한번 국회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올해 4월에 있을 총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지막 설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답답한 공급망 육성, 타협 고려하는 산‧관

SK오션플랜트의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 제공=SK오션플랜트
SK오션플랜트의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 제공=SK오션플랜트

경쟁력 있는 조선업과 전기산업을 바탕으로 국내 공급망은 하부구조물과 케이블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SK오션플랜트를 비롯해 포스코, GS엔텍, 세아윈드, 삼일씨앤에스, 현대스틸파이프 등이 하부구조물 산업을 담당하고 있다.

또 LS전선과 LS마린솔루션 등은 해저케이블 분야에 강점이 있어 해외 시장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타워는 CS윈드가 글로벌 1위의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경쟁력이 있는 분야다.

다만 터빈 분야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해상풍력 터빈을 개발 중인 두산에너빌리티는 성장세가 더디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국내 기업 중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베스타스, GE 등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격차가 존재한다.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대형 중전기기 기업들이 해상풍력 터빈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이에 국내 개발사에 기회를 주고자 하는 정부도 지멘스 가메사나 중국의 밍양 등 글로벌 기업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체적인 기술 개발에 부침을 겪는 만큼 국내 기업에 기술 이전 등을 조건부로 내세워 유입을 허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급망 이용은 점차 피할 수 없는 산업의 흐름이 되고 있다”며 “정부와 업계가 국내 공급망 육성과 당장 급한 재생에너지 보급을 놓고 저울질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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