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美 완성차 업체들과의 경쟁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 반전할 카드
어려운 유럽 경제 상황…EU 기후의제 ‘암흑기’에 들어설 가능성↑
EU, 옴니버스 패키지 등 환경규제 완화…“이러한 흐름 지속될 것”
![자동차에서 매연이 나오고 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의 특정 사실과 연관 없음. [사진=연합뉴스]](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503/351314_557244_4559.jpg)
유럽연합(EU)이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수송 부문 탄소중립 실현에 적신호가 켜졌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전략대화’ 2차 회의가 끝난 뒤 이달 안에 ‘CO₂표준 규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EU는 유럽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평균 탄소 배출 가능 상한선을 정하고, 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탄소 배출 가능 상한선 강화 및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g당 95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었는데, 개정안은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3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한다는 게 골자다.
이번 EU의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 완화는 중국·미국 완성차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로 풀이된다. 유럽 제조업의 근간인 자동차산업은 기술과 수출을 통해 EU 경제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철강 및 연관 산업과도 긴밀히 연계돼 있어 유럽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곧 EU 경제 전반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친환경 정책에 따라 전기차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던 유럽 자동차산업은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점차 밀리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자토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유럽 전기차 시장의 중국산 점유율은 18.2%로 전년 동기보다 5.1%p 높아졌다.
문제는 이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 완화가 본격 시행될 시 EU 경제를 이끌던 자동차 산업의 중흥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전기차 관련 인프라 및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유인은 약화시켜 수송 부문 탄소중립 실현의 ‘키’를 쥔 전기차 전환 속도는 늦출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관련 업계는 환경규제 강화 흐름을 선도하던 EU의 이러한 규제 완화 움직임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이와 관련해 최승신 C2S 대표는 “유럽은 전기차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며 “3년 유예한다는 얘기는 당장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내연기관차 모델을 다시 개발·생산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으로, 3년 뒤 다시 강화를 이야기할 수 있진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앞서 EU가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한 데 이어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 완화를 공식화하는 등 EU의 환경규제 완화 흐름에 관한 굵직한 증거들이 나온 상황”이라며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재민 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 대표 역시 “유럽은 탄소중립에 필요로 하는 재원들을 만들어 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며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재원 자체에 대한 고갈, 경제적 어려움들 때문에 2~3년 간은 EU의 기후변화 관련 의제들이 ‘암흑기’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에는 미국이 받쳐주는 게 있어서 국방비 등에 쓸 돈을 기후변화와 같은 이상적인 곳에 사용할 여유가 있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새로운 질서가 나오고 있어 EU가 내놓은 선진적인 정책들이 주저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계에서는 수송 부문 탄소중립 실현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다만 한국은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세종 플랜1.5 정책활동가는 “기후변화에 따른 상황들이 계속 악화되고 있고, 과학적으로도 감축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변화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속도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도 속도 조절을 하니 우리도 조절에 나서야겠다’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며 “한국과 달리 미국은 청정 기술과 녹색 산업, EU는 환경 규제와 정책이 크게 앞서 있다. 때문에 정책 방향성을 명확하게 가져가야 지금이라도 벌어진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려면 EU 27개국과 유럽의회 표결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 회원국이 시행 유예 혹은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큰 이변이 없으면 가결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