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를 쓰러뜨리고 천하를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은 전장에서 적을 쓰러뜨린 장수들 보다 물자와 군량을 안정적으로 보급한 소하의 공을 높게 쳤다. 6‧25전쟁에서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며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 보급은 언제나 전쟁의 판도를 좌우한다.

로비와 편법이 난무하는 국제 무역통상 시장에서 전장의 판도를 바꿀 새로운 보급 키워드가 등장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산업군에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촉구되고 있다. 한 중견 수출기업 대표는 유럽의 한 바이어로부터 RE100 달성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IRA법이나 유럽의 탄소국경세도 궤를 같이 한다. 제조‧유통으로 먹고 사는 수출기업들은 더 이상 재생에너지 사용을 미룰 수 없는 마지노선을 향하고 있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은 제 10차 전기본에 따라 계단식 확대가 계획돼 있다. 그러나 그 속도에 있어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수소로 대변되는 신에너지는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의 경우 보급 속도가 해외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주장이다.

태양광의 경우 소규모 발전사업자를 중심으로 발전하다 보니 대규모 보급 확대에 부침을 겪는다. 지자체별 이격거리 제한으로 인해 부지선정과정부터 어려움을 겪는 데다 최근 태양광에 부정적인 정부 정책으로 인해 신규 보급용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한 때 연간 4GW에 달했던 신규 보급량이 올해는 2GW를 겨우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확연한 감소세가 보인다.

풍력사업도 마찬가지로 부지선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육상풍력의 경우 발전 용량은 크지 않은데 지자체와 주민 등 이해관계자가 많다보니 대규모 사업 개발이 어렵다.

그나마 가능성을 보이는 것은 해상풍력이다. 해상풍력은 적게는 수백 MW에서 GW 단위로 대규모 재생에너지 보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다만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많은 정부 기관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 돼야함에도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탄력을 받지 못하면 소위 수출로 먹고 산다는 우리의 산업이 자칫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쟁에서 가장 허무하게 지는 방법은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둔한 아군에 의해 보급이 끊기고 적에게 서서히 잠식돼 가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군영과도 같은 이름을 걸고 악전고투를 벌이는 우리 기업이 재생에너지만큼은 제때 보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한 상황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