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류가 이겼다.”
한 세기 전, 전류전쟁을 요약하는 말로 이보다 간결한 표현은 없었다. 에디슨이 주장한 직류(DC; Direct Current)는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가 이끈 교류(AC; Alternating Current)에 밀려 전력의 중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마트폰 충전, 태양광 발전, 전기차 등 직류 기반 기술이 일상에 자리 잡은 오늘날, 우리는 다시 직류의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다. 전류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 전력 시스템의 설계를 좌우할 현실적 과제가 되었다.
19세기말, 전력 산업이 막 시작될 무렵 직류와 교류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 대결을 넘어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점이었다. 직류는 초기 전력 공급에 유리했지만, 전압 변환의 어려움으로 인해 송전 거리가 짧았고 발전소를 수요지 인근에 지어야 했다. 반면 교류는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장거리 송전이 가능했고, 송전 손실도 적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가 교류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교류의 우수성을 입증했고, 이후 교류는 전력 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교류의 승리는 기술적 우위에 더해 경제성, 안전성, 마케팅 전략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발전소와 도시 간 거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교류 방식은 대규모 전력망 구축에 적합했고, 이후 수십 년간 세계 전력 인프라는 교류 중심으로 성장했다. 직류는 전면에서 밀려났지만, 기술 기반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오늘날 전기 사용 양상이 다변화하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전기’의 중요성이 커졌다.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데이터센터 등 현대 전력 기술의 핵심은 대부분 직류 기반이다. 스마트폰, 노트북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자기기 내부 회로 역시 직류로 구동된다. 교류 기반 전력망 위에서 직류가 활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우리의 일상에 펼쳐지고 있다.
전력망은 여전히 교류(AC) 기반이지만, 새로운 전력 사용 장치들은 점차 직류(DC)로 작동한다. 전력 사용 패턴이 다양해지면서 전기 시스템은 단일 구조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효율·고정밀·고품질 전력을 요구하는 환경에서는 직류의 강점이 더욱 부각된다. 이제 전력 시스템은 AC와 DC가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 역할을 분담하며 공존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기존 송배전망은 교류를 유지하되, 장거리·대용량 송전은 HVDC(고압직류송전)가 맡고, 국지적 부하가 집중된 곳에는 DC 마이크로그리드나 직류 배선이 적용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보호 장치, 직류 변환기술, 표준화 등 기반 기술의 동반 발전이 필수적이다.
전류전쟁은 이제 ‘누가 더 우월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다. 교류가 전력망의 뼈대라면, 직류는 그 위에 더해지는 새로운 근육이다. 두 전류는 대립하는 경쟁자가 아닌, 서로의 강점을 살려 최적의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협력자가 되고 있다. 미래 전력망은 교류와 직류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이브리드 구조로 진화할 것이다. 이는 에너지 효율과 유연성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 미래 기술과의 정합성도 강화해야 한다. 전류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He is... 한국에너지공단 분산에너지실장 / 전기공학박사(에너지시스템공학 전공) / 발송배전기술사 / 기술거래사 / <분산에너지 시스템 개론>, <인생 리셋>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