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 선진화 3종 패키지’ 육지 도입 시 전력시장 대변화 몰고 올 것

제주 지역 재생E 사업자 절반 가까이 참여…발전설비 예측 능력 ↑
계통 여건 따른 전략적 입찰 강화…예비력 자원에 대한 보상 현실화

전력거래소가 제주 지역에 전력시장 선진화 시범사업을 추진한지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시범사업을 통해 전력시장의 도매 가격 역동성 확보 등 다양한 성과를 냈다.[사진=남동발전]
전력거래소가 제주 지역에 전력시장 선진화 시범사업을 추진한지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시범사업을 통해 전력시장의 도매 가격 역동성 확보 등 다양한 성과를 냈다.[사진=남동발전]

지난 2001년 개설된 한국의 전력시장은 그동안 큰 변화없이 세부적인 규칙만 일부 수정하며 20여년의 시간 동안 운영됐다. 한전과 발전자회사 중심의 전력시장은 변동비기반(CBP)으로 꾸려졌고, 다양한 시장 형태 중에서도 하루전 현물시장만이 존재했다.

그동안 우리 전력시장이 화석연료와 원자력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2024년을 기점으로 우리 전력시장이 큰 변화를 준비하게 됐다.

제주에서 지난해 6월 시범사업이 본격화된 이른바 ‘전력시장 선진화 3종 패키지’를 통해서다. 전력거래소는 지난해 제주지역을 대상으로 ▲실시간 시장 ▲예비력 시장 ▲재생에너지 입찰시장 등으로 구성된 3종 패캐지의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시범사업은 2024년 3월 본격 도입된 가운데 3개월이 지난 6월부터 실제 정산까지 반영하며 본격화됐다.

약 반년여에 걸친 시범사업은 한전의 도매전력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의 단순한 변화뿐 아니라 우리 발전 사업자들의 계통 기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이번 3종 패키지가 제주를 벗어나 육지까지 도입될 경우 24년간 단순한 형태로 운영됐던 우리 전력시장에 대격변이 이어질 전망이다.

◆무탄소 전원 확대에 따른 전력시장 개편 시급=글로벌 탄소중립의 움직임 속에 기존 화석연료 중심의 전원 구성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깨끗한 발전원 확대를 위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17년 정부는 ‘3020 재생에너지 이행계획’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처음 내놓았다. 이후 태양광 발전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줄곧 한자릿수에 머물렀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두자릿수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발맞춘 전력시장 제도 개편의 필요성도 커지기 시작했다.

태양과 바람과 같은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기존 설비와 달리 0원이기 때문에 연료비를 중심으로 정산하는 기존 시장 제도를 적용하기 쉽지 않아서다. 그동안 수요에 맞춰 발전량을 제어해왔던 시스템에서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가 주력전원이 됐을 때 실시간으로 변하는 계통 여건에도 발맞추기 어려웠다.

특히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한 글로벌 에너지 요금 상승 국면에서 하루전시장 단일로만 구성된 우리 전력시장은 큰 위기를 겪었다. 안정적인 요금 정산을 위한 계약시장의 부재로 가격 변동성에 대한 리스크가 큰 현물시장만을 운영했던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 이는 한전의 200조원에 달하는 누적부채라는 경영난의 주요인 중 하나가 됐다.

제주 시범사업은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언급되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제시한 전력시장 혁신 과제와도 궤를 함께 하는 모습이다.

IRENA가 제안한 혁신 과제는 ▲전력시장의 공간적 세분화 ▲전력시장의 시간적 세분화 ▲보조서비스 혁신 ▲분산에너지의 시장통합 등으로 이뤄졌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로 인한 송전 혼잡과 변동성에 대응하는 한편 전력시장 참여를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전력거래소가 추진 중인 이번 시범사업은 실시간 시장을 통한 시간적 세분화와 함께 예비력 시장을 통한 보조서비스 혁신을 만족시킨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을 통해 그동안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 아래서만 운영됐던 재생에너지 사업자를 일부 전력시장에 참여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시장 선진화 시범사업 성과는=전력거래소는 별도의 계통으로 운영되는 제주도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지난해 6월부터 추진 중이다. 새로운 제도 아래 실제 정산까지 진행된지 어느덧 반년 여가 흐른 셈이다. 연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18%에 달하는 제주 지역은 점차 그 숫자를 늘려가는 육지에서의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됐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총 395.6MW 수준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참여했다. 이는 제주 시장참여 태양광·풍력발전설비의 45.2%에 해당하는 수치다. 절반에 가까운 설비가 선진화된 전력시장에 직접 참여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가상발전소(VPP) 사업자 13개 회사가 203.4MW 정도의 자원을 모집해 시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를 통해 소규모 사업자도 VPP와 연계해 시장의 신뢰도를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됐다. 단독으로 참여한 자원도 192.2MW에 달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범사업과 관련 전력거래소가 공개한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여 간의 기록을 살폈을 때 그동안의 선진화 작업은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증명하고 있다.

먼저 전력거래소는 실시간 시장 도입을 통해 하루 1회 진행된 전력시장 입찰에 15분 단위로 진행되는 입찰 96회를 추가했다. 이를 통해 하루전시장에서 낙찰된 양은 하루전가격으로 정산하고, 실제 발전량과의 편차를 실시간 가격으로 정산, 가격신호에 따른 사업자의 시장 참여를 유인한다는 방침이다.

계통여건에 따라 실시간으로 입찰하는 방식에 따라 제주에서도 네거티브 프라이스가 발생했다. 음(-)의 가격으로 불리는 네거티브 프라이스는 계통에 필수유지전원을 제외한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전원이 연료비 0원인 재생에너지만 남았을 때 발생한다. 이때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계통에 전력을 보내겠다는 발전소들이 음의 가격으로 입찰을 하기 때문에 네거티브 프라이스가 발생하게 된다. 연료비가 0원인 만큼 보다 계통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략적인 판단을 통해 입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4개월 간 시범사업 기록을 살폈을 때 하루전 시장에서 발생한 음의 가격은 9시간(9회)으로 전체 시장의 0.3% 정도를 차지했다. 4개월 간 평균 SMP는 kWh당 139.17원 정도였다.

실시간 시장에서는 좀 더 시장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음의 가격 발생 시간은 총 37시간(148회)으로 1.3% 정도였다. 평균 SMP는 139.80원/kWh로 하루전시장 대비 소폭 높은 수준이었다.

시장에서 입찰을 통해 전력을 거래하는 만큼 출력제어가 현저히 줄었다. 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재생에너지에서 발생한 출력제어 횟수는 같은 기간 동안 3회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28% 수준에 그쳤다는 게 전력거래소 측의 설명이다.

실시간시장 등 입찰이 도입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예측 능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계통을 마련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

◆입찰시장 정교함 늘었다…발전사 전략적 판단 필요=15분 단위로 진행된 실시간 시장 입찰은 전력시장에서 거래의 정교성을 크게 높였다. 실제 계통여건에 따라 발생하는 발전량의 차이에 따른 유연성 자원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는 기회를 마련했다.

기존 예비력과 무효전력, 자체기동 등 보조서비스에도 시장의 메커니즘이 도입되며 1차 예비력과 주파수제어예비력, 3차 예비력 등으로 세분화됐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예비력을 확대하는 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범사업 4개월 평균으로 살폈을 때 1차 예비력 가격은 kW당 13.55원 수준이다. 출력제어시 하향예비력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주파수제어예비력은 14.81원/kW 정도로 형성됐다. 이전까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던 3차 예비력도 0.76원/kW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돼 예비력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재생에너지 입찰을 통해 일부 사업자가 전력시장에 진입하며 정산금에도 다소 차이를 보였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입찰제 미참여 자원 대비 참여 자원의 정산금이 kWh당 3.19원 가량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입찰제 미참여 자원들이 에너지 정산단가만 적용받는 대신 참여 자원들은 에너지 정산단가에 더해 ▲부가 정산단가 ▲용량 정산단가 ▲임밸런스 페널티 단가 등을 추가로 적용받게 된다. 이때 급전지시량 대비 실시간 발전량에서 발생한 오차에 의한 임밸런스 페널티로 정산금이 다소 줄어들더라도, 용량·부가 정산단가가 이를 크게 상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범사업과 함께 전력당국은 전력거래소를 중심으로 전력시장 제도개선 추진단을 구성해 시장 선진화 작업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전력거래소와 함께 유관기관 전문인력으로 추진단을 구성, 시범사업 성과를 분석하고 보완할 점을 도출하고 있다.

전력거래소 관게자는 “이번 제주 시범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시장 가격의 역동성을 확보하고 실시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산정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예측 가능력을 높이는 한편 안정적 계통 운영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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