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옌타이시에 100여 개 기업 활동

中 하부구조물과 타워, 터빈 기업, 韓 시장 호시탐탐 노려

풍황 계측부터 WTIV 용선까지 中 공급망에 속수무책

韓과 합작도 봇물, 업계는 ‘택갈이’ 위한 꼼수 아니냐 의심

옌타이 펑라이 경제개발구 해상풍력 국제모항 산업단지[사진=바이두]
옌타이 펑라이 경제개발구 해상풍력 국제모항 산업단지[사진=바이두]

중국 해상풍력 공급망 기업들의 한국 시장 공략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풍황 계측부터 단지 건설까지 해상풍력 사업 전 과정에서 ‘차이나 윈드’의 파워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중국 공급망 기업의 한국 공장 구축과 합작사 설립 등 시장 공략이 확대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낮은 브랜드 위상으로 인해 해외시장 진출이 쉽지 않은 중국 업체들이 한국의 브랜드파워를 활용하기 위해 이 같은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 시장 공략의 전초 기지로 삼고 있는 중국 산둥 옌타이시 봉래구의 해상풍력 배후항만에는 해양 산업 관련 3개의 상장 기업과 59개의 전문 중소기업을 비롯해 총 100개 이상의 관련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대표적으로 ▲다진중공 ▲쥐타오중공 ▲동방전기 ▲상해전기 ▲다진중공 블레이드 ▲YCRO ▲붕래중배징루조선 등 풍력산업 관련 기업들이 위치해 있다.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옌타이시는 배후항만에 입주한 기업들을 활용, 총 9개 프로젝트를 추진해 3GW의 해상풍력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이 실적을 기반으로 한국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전라남도와 옌타이시의 거리는 직선으로 불과 5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지리적 접근성이 좋고 가격경쟁력 또한 우수해 자국 프로젝트가 끝난 중국 해상풍력 기업들의 한국 진출은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다진중공, 쥐타오중공, 동방전기 등 하부구조물과 타워에 강점이 있는 중국 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할 경우 장기적으로 SK오션플랜트, GS엔텍, 성동조선, CS윈드 등 전문 업체들과 후판 등 철강 기업들의 타격이 우려된다. 최근 자국 철강 수요 하락으로 해외 시장에 저가 공세를 벌이고 있는 중국의 철강업 현황을 고려하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해상풍력 사업의 시작인 풍황계측 시장 상황부터 녹록치 않다. 국내 기업보다 20~30%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 풍황계측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한국 시장에 에이전트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풍황 데이터는 국가 안보와도 연관되는 중요 기밀사항이지만 중국 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그대로 시장을 내주고 있다고 한국 기업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 다진중공과 상해전기를 비롯한 터빈 기업들도 한국 시장을 눈여겨 보고 있다.

상해전기는 국내에서 효성중공업과 협업해 이미 국내 시장 공급처를 확보했다. 상해전기는 풍력 터빈 설계·제조·운영 및 유지·보수를 비롯해 투자·개발까지 총괄하는 풍력발전 전문기업으로, 자회사인 SE윈드는 해상풍력 터빈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에선 코리오제너레이션이 부산 사하구 인근에서 추진 중인 다대포해상풍력 프로젝트에 터빈 판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중국의 터빈 그룹 밍양과 중국 골드윈드가 지난 2008년 인수한 벤시스도 한국 시장 공략을 가시화하고 있다. 밍양과 벤시스는 지난해 풍력 고정가격입찰계약에 낙찰된 76MW 고창해상풍력과 364.8MW 낙월해상풍력에 각각 터빈을 공급할 예정이다. 밍양은 국내 터빈 제조사 유니슨과 합작사 ‘유니슨-밍양에너지’를 설립할 예정이며 벤시스는 이번 사업을 통해 한국에 제조공장 설립까지 검토 중인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연말 해상풍력 장기고정가격입찰에서 중국 업체들이 기술이전, 조인트벤처 설립 등을 확약해 국내 사업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계약내용을 이행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 “형식적으로 공장만 설립해 놓고 중국 제품을 들여와 ‘한국산’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조선업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우리나라는 유독 해상풍력 관련 선박시장에서 만큼은 사실상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국내에서 운용 중인 해상풍력전용설치선박(WTIV)은 현대스틸산업이 보유한 8MW급 1척이 유일하며, 10MW급 이상 터빈을 설치할 수 있는 WTIV가 필요하면 가까운 중국에서 용선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 국내 풍력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빠른 국내 시장 진출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산업 육성과 안보 차원에서 중국으로부터 한국의 풍력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신속히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해상풍력 초기 공급망, 에너지·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중요

막대한 국부유출은 물론 인버터 해킹 등 가능성 배제 못해

해저케이블 설치 시 해저지형 데이터 도출, 제대로 관리해야

해상풍력 업계의 공급망 형성은 경제적 문제와 함께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살펴볼 여지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초기 시장에 물밀듯이 유입되는 해외기업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신규시장을 통째로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막대한 국부 유출은 불가피하다.

특히 더 유심히 봐야 하는 것은 각 단위의 공급망이 국가안보 자원의 성격을 띄고 있을 때다. 해상풍력 분야에선 인버터와 해저케이블이 가장 취약한 고리로 꼽힌다. 이 때문에 두 자원을 국산화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매우 신중한 초기 시장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버터는 해상풍력·태양광과 같은 비전통·신재생 전원을 전력계통에 연계할 때 필요한 핵심기기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보통 인버터 전원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데, 이 그리드 네트워크를 해킹하면 전원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특정 세력이 계통 불안정을 목적으로 네트워크를 해킹해 전원에 과부하를 주거나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행위가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얘기다.

업계 전문가는 “Ddos, 해킹, 원격 비활성화 등에 따른 국소·광역정전으로 전력공급이 약해진 틈을 타 주요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등의 가능성도 상상이 가능하다면서 소규모 발전소 단위의 분산전원은 이에 대비할 재정적·행정적 역량이 미흡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에서는 송유관 파이프라인에 대한 그리드 해킹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분산전원에 대한 위협이 반복됐다. 네덜란드에서도 유통 중인 태양광 인버터 9종에 대한 사이버 보안 관련 법적 요건을 검사한 결과, 9종 모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일부는 정전 등 간섭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는 게 밝혀졌다.

류재철 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은 2021년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에서 가장 많이 해킹의 표적이 되는 나라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 한국 등을 꼽은 바 있다.

해저케이블도 국방력과 직결된 자원으로 꼽힌다. 국내 케이블 생산 역량 자체는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지만, 이를 설치할 때 투입되는 풍력터빈 설치선(WTIV)은 잠재적인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체 건조 환경이 충분히 여물지 않아 중국산 WTIV를 용선하게 된 한국으로선 코앞에 닥친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케이블 설치 시 레이저를 통해 해저지형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업계 일각에선 내심 불안하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해당 WTIV가 기간제 독점 사용이긴 하지만, 사용 기간 종료 후 중국 복귀 시 민감한 정보가 모두 그대로 유출·유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中 점령한 국내 태양광산업 전철 밟지 말아야

LCOE 하락과 보급 매몰돼 공급망 골든타임 놓쳐

관련 대기업 잇달아 철수, 내수시장 축소·고용감소 등 피해

이상적인 재생에너지 공급망 형성의 요체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 시장에서 국산 제품을 통해 개발비용을 포함한 균등화발전원가(LCOE)를 낮추는 것이다.

이 점에서 태양광 산업은 해상풍력 공급망의 완벽한 반면교사로 여겨지고 있다.

태양광은 가격경쟁을 통해 LCOE가 하락했지만, 주요 자재 공급을 해외기업들에 의존하면서 온전한 국내 공급망 형성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여기에 제조기업 성장에 필요한 정책지원까지 실종되면서 국내 태양광 산업은 사실상 중국에 예속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 보급통계에 따르면 최신 집계 시점인 2022년 총 2.4GW 규모의 신규 태양광 중 국산 모듈은 72.6%, 중국산은 27.4%의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모듈 원자재인 셀의 중국산 비중은 당시 53.87%를 기록했고, 작년에는 단숨에 75%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이미 중국 제조사들은 압도적인 가격경쟁력을 갖춘 원자재 공급망을 바탕으로 잉곳·웨이퍼··모듈 등 전 단위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중국 기업의 분야별 세계 시장 점유율은 폴리실리콘 83% 웨이퍼 97% 84% 모듈 77%에 달했다. 가장 마지막 단위인 모듈가격은 역사적 저점인 0.1달러/Wp대에 진입했다.

반면 한국의 태양광 시장은 지난 정부에서 태양광발전 보급속도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수급균형을 챙기지 못해 넘쳐나는 수요를 국내기업들이 소화하지 못하고 대신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을 갖춘 중국산에 의존하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 국내 태양광 기업들은 차례로 시장에서 이탈했다. 한화솔루션과 OCI는 지난 2020년 폴리실리콘의 국내 공장 가동을 멈췄고 같은 해 SKC는 태양광 모듈에 쓰이는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 시트 사업에서 철수했다. LG전자도 2022년 태양광 모듈 사업을 접었다.

이로 인해 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 통계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제조업 내수시장 규모는 201522896억원에서 202121695억원으로 오히려 축소됐다. 20158639명이던 태양광 제조업 고용 인원 역시 20216654명까지 줄었다. 태양광 시장 자체는 확대됐지만 중국이 그 열매를 가져가면서 한국 기업의 매출과 고용은 줄어드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면 중국 기업의 급격한 추격과 시장 잠식은 예상이 가능했고 불가항력인 측면도 있다. 이 대목에서 정부 차원의 적절한 정책 설계가 필요했다면서 탄소중립이라는 전 세계적 목표에 다가가면서도, 자국 산업 위주로 공급망을 보호하고 이를 세계 시장 선점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