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 생산라인 60% ‘증발’·시공사 이탈 조짐도 본격화
업계 “비우호적 정책 지속…국산 역량 약화 방조·조장”
“태양광은 에너지 안보에 필수…관련 산업 육성해야”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통해 이달 17일부터 충북 음성공장 가동 중단을 의결했다. 해당 생산설비는 한화솔루션의 전체 캐파 6.2GW 중 3.5GW를 차지한다. 총 12GW급으로 추산되는 국내 전체 모듈 생산라인 중 30%가 단숨에 날아간 셈이다. 이에 앞서 2.9GW급 설비를 갖춘 충북 진천공장에서도 연말까지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방침이다. 음성과 진천 등 두 공장의 생산직은 17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2분기부터 800MW급 생산설비의 가동을 멈췄던 솔라파크코리아는 폐업절차에 돌입했다. 600MW급 설비를 갖춘 한솔테크닉스도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이 밖에 국산 모듈업체로 분류됐던 JSPV, 탑선 등은 타사에 매각돼 국산 모듈 생산이 불투명한 상황이고, HD현대에너지솔루션 등은 OEM을 통해 생산여력을 이어가고 있다. 국산 태양광 인버터의 마지막 보루로 일컬어지던 윌링스도 지난해 외국계 자본으로 분류되는 제이스코홀딩스에 매각됐다.
국산 태양광 모듈업체들이 대거 퇴각행렬에 합류하면서 국내 태양광 산업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들어 가동을 중단하거나 매각, OEM 등을 채택한 생산라인은 국내 전체의 60.6%에 달한다. 가동률에 따라 집계가 판이하지만 대략 전체 12GW 규모 중 7.4GW를 상실한 셈이다.
문제는 모듈을 비롯해 태양광 발전사업을 구성하는 제조·시공·개발 단위의 산업도 성치 않다는 것이다. 태양광 사업을 수행하려는 사업자들이 급감하면서 개발·시행사들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있다. 태양광 시공업자들도 살길을 찾아 전기공사로 복귀하고 있다. 오히려 제조사들의 위기는 태양광 산업 위기의 가장 마지막 단계라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 ‘연쇄 붕괴’가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막막한’ 기업들, 각자도생 시작됐다
한국에너지공단의 '2021년 신재생에너지 산업통계'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발전소재업체 중 모듈기업체는 22곳으로, 전년 25개사에서 3개사가 줄었다. 같은 기간 태양광 분야의 종사자수는 7355명에서 6654명으로 9.5% 급감했다.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초까지 산업 부가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태양광 전지(셀) 생산업체도 오래전 명맥이 끊겼다. 이제 고부가가치의 중심은 모듈로 옮겨온 참인데, 국내 생산 여건도 갈수록 악화하는 중”이라며 “특히 한화솔루션의 사업철수는 산업 전체 붕괴에 결정타다. 이제 국산 모듈은 종언을 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그나마 해외를 겨냥해 대안을 찾고 있는 대형사들은 사정이 낫다. 실질적인 위기는 중소기업에 찾아왔다. 특히, 최근 조달청 등도 직접생산위반 등을 들어 제조업체 감사의 고삐를 죄면서 사업환경은 더욱 침체되고 있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업다각화를 노릴 수 있는 대기업들은 해외 진출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타 분야로 진출할 원천기술 확보 등이 어려워 고사 외엔 마땅한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시공업계도 위기…발전사업 매력 떨어져 업계 이탈
제조업계의 위기는 전방산업인 개발·시공업체들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시공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들은 모듈·인버터·구조물 등을 매입해 엔드유저인 발전사업자에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이 가치사슬(밸류체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1차적으로 시공사들이 타격을 받으니 시간을 두고 제조사들이 받은 타격도 본격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2만여 개로 추산됐던 태양광 시공업체는 2020~2021년 사이 각각 2028개, 2063개수준으로 급감했다. 종사자수도 1년 새 1만6058명에서 1만3784명으로 14.2%가 줄었고, 전체 매출액도 5조7653억원에서 5조4346억원으로 5.7% 감소했다.
업계는 약 2년이 지난 올해, 이를 더 크게 절감하고 있다. 특히 매출 내 구조물 및 원자재 비중이 높은 태양광시공업 특성상 수익성 저하가 극명하게 다가온다는 설명이다.
시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20년 고정가격계약입찰제도에서 대거 미달이 발생하는데, 해당 계약이 없으면 은행권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같은 금융계약이 어렵다”며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시공업체들은 금리까지 급등해 개발이 어려워진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업계 “흔들리는 정책, 위기 책임 80%”
이 같은 추세는 태양광 사업자에 비우호적인 조치가 지속됐던 지난해 이후 더욱 극심해졌다. 전력거래가격(SMP)은 올랐지만 각종 수익제한조치와 지원제도 일몰 등으로 더 이상 신규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지난해 출범 직후 국무조정실, 감사원 등을 통해 업계의 비리를 파헤쳤다. 일부 업체의 비위사실이 공표되면서 관련 개발사·지자체·발전사업자 등은 구속수사를 면치 못했다. 이 때문에 업계는 경색됐고, 태양광 산업 전반에 ‘범죄’의 멍에가 덧씌워졌다.
직접적으로 보급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극명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수치 하향조정을 시작으로 SMP 상한제와 한국형 FIT 제도 일몰 등이 이어졌다.
한 태양광 발전사업자는 “2021년에도 대책 없는 정책으로 고생했는데, 2022년 이후로는 SMP 상한제를 시작으로 사업자에 비우호적인 정책이 지속됐다”며 “많은 사업자들이 원하는 수익성이 나오지 못해 대형사나 RPS 의무공급사 등에 발전소를 매각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전했다.
제조사, 시공사들도 정책 기조 급변에서 산업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있다. 가까이는 발전사업자들의 수요 급감이 있지만, 정책 악화가 수요 급감에 ‘스위치’를 눌렀다는 것이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이라는 세계적 흐름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 트렌드에서 뒤처지고 말았다”며 “이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책의 몫이 80%다. 정책 방향이 명확해야 뒤따라 금융제도나 기업의 기술혁신, 시민참여 등이 뒷받침된다”고 지적했다.
연간 설비 보급량은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다. 2020년 4.7GW에 달했던 국내 신규 태양광 보급량은 올해 2.7GW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태양광 감사 강화에 따라 3MW 이하를 관장하는 지자체의 인허가 강도도 강화됐다는 증언도 뒤따른다. 이 때문에 내년 실적은 2GW 이하도 무리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대형·산단지붕 등 대안 많지만…
그럼에도 태양광 업계는 향후 RE100 달성,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 등에 있어 태양광이 여전히 필수적이라 말한다. 단기간에 급속도로 보급가능한 발전원으로 유일하다는 판단에서다. 계통연계 문제 등이 남아있지만 수백MW급 대규모 태양광이나 산업단지 지붕태양광을 비롯해 영농형·염전형·수상태양광 등으로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산업 여건이 받쳐주지 못하면 이 같은 사업들도 빛을 보지 못할 공산이 크다. 앞선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관련 생태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던 정책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에 반해 미국은 자국 내 태양광 보급 극대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설비투자와 세액투자를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를 착착 실행해 가고 있다.
조지아주에 구축 중인 총 8.4GW급 태양광 종합 생산클러스터 ‘솔라허브’가 대표적이다. 특히, 정부가 나서 잉곳·웨이퍼·셀 등 생산 단계마다 생산설비 투자세액 공제 등 막대한 인센티브를 예고하면서 ‘미국산’ 제품의 밸류체인이 완성될 참이다.
한화솔루션도 중국산 제품의 ‘위협’ 없이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미국 시장 공략에 집중할 방침이다. 더 나은 시장여건 속에서 더 높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 연간 수조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이란 예측이다.
정우식 부회장은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태양광의 명맥은 끊겨선 안 된다”며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고,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산업경제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앞서 경쟁력을 잃은 다른 나라의 선례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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