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신재생에너지학회서 풍력 선도국 해법 공유
영국, 세계 최초 공공금융으로 재생에너지 ‘가속페달’
국내 환평기준 국제 표준 맞춰 강화…관리 중요성 커져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는 국내 풍력발전 보급을 위해 전문가들이 해법을 제시하고 나섰다. 한국에 앞서 풍력보급량을 비약적으로 늘린 해외 선도국들의 설계에 비춰 국내 사업환경을 되돌아보고, 국내 사정에 알맞은 ‘촉매적’ 제도에 대한 가능성도 논의됐다.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는 지난 9일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추계학술대회에서 ‘한국 풍력 시장의 이슈와 금융을 통한 해결방안’ 세션을 마련했다. 이날 세션은 손충렬 인하대학교 명예교수(세계풍력에너지협회 명예부회장)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풍력발전 사업을 전개 중인 사업자 30여명이 모여 지속적이고 사전적인 환경영향평가·보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국내 풍력발전 누적 보급량은 1.8GW 내외에 그치고 있다.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2030년 보급 목표치로 제시한 19.3GW 대비 9.58% 수준에 불과하다. 남은 7년 동안 민간과 공공이 90%의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사업도 설비용량 기준 20.7GW에 이르지만, 금융·인허가제도·주민수용성 등 각종 장벽으로 인해 보급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해외에선 재생에너지 확충 정책을 통해 재생에너지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미국은 IRA법을 통해 총 213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재생에너지 투자에 배정했고, 유럽은 REPowerEU 이행계획을 통해 재생에너지 인허가 기간을 최대 2년으로 단축할 계획이다.
이중 영국은 이미 2010년대 초부터 ‘그린 금융’을 표방하는 공공금융(GIB)을 통해 풍력발전산업의 자금순환을 뒷받침해왔다. 최근에는 2030년까지 50GW의 해상풍력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인허가 기간을 기존 4년에서 1년으로 단축할 방침을 밝히며 적극성을 더하고 있다.
한승훈 맥쿼리자산운용(영국 투자그룹 GIG) 수석은 영국 정부에 의해 2012년 세계 최초의 ‘그린은행’으로 설립돼 2017년까지 활동한 GIB(그린투자은행)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GIB는 철저한 사업관리와 명확한 목표의식을 제시해 신뢰에 바탕을 둔 민간투자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한승훈 수석은 “대규모 해상풍력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반면 불확실성이 크고 안정성도 낮다. 그린 인프라 구축에 대한 정부 의지와 달리, 2012년 당시에도 민간투자자들은 이를 쉽게 감수하기 어려워 향후 수십조원의 조달 이행이 빠듯했다”며 “깊은 숙고 끝에 출범한 GIB는 에너지 전문 기관의 독립성과 신속한 자체 금융 조달이 가능한 은행의 특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 친환경 발전사업의 초기 금융을 뒷받침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프로젝트에 기반해 최소 수천억원의 대규모 금융을 일으켜야 하는 국내 해상풍력 산업의 현안이기도 하다. 대규모 조달이 가능하더라도 최소 7년이 소요되는 인허가 등이 안정성과 사업성을 낮추는 등 각종 리스크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 정부는 공공금융을 발판으로 사업 초기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사업 돌입부터 상업운전까지 추진력을 불어넣는 촉매 역할을 수행했다.
한 수석은 “실제로 GIB는 모듈당 190억달러(26조원) 이상의 자금 조달을 도왔고, 총 100개의 사업에 투자를 완료하며 풍력 프로젝트 보급에 기여했다”며 “2017년까지 총 34억파운드(5.5조원)를 직접 투자하는 동안 2.5배에 이르는 민간자본을 유치했고, 1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후 GIB를 계승해 영국 재생에너지 금융을 주도하고 있는 GIG의 성과도 뚜렷하다. GIB와 GIG는 2012년 이후 10년간 총 59만GWh의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2억1209만tCO₂e의 탄소감축효과를 기록했다. 현재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만 총 110억달러(약 15조원)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전 세계 85GW 이상의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가운데 전체 포트폴리오의 46%를 해상풍력에 집중하고 있다.
한승훈 수석은 “GIB는 ▲온실가스 감축 ▲천연자원 효율 증대 ▲자연환경 보호 ▲생물다양성 보호 ▲지속가능한 환경이라는 명확한 목표와 비전을 세우고 녹색자산의 직·간접 투자를 진행한 결과”라며 “한국 역시 강력한 성장 궤도를 이어가기 위한 투자 적합 조건을 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효율적인 공공 재정 활용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열어젖힐 정책 프레임워크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동주 RPS ESIA(환경영향평가, 이하 환평) 전문가는 글로벌 해상풍력 개발사업에서 ‘표준’으로 통용되는 환경영향평가 세부안을 소개했다. 환평은 사업개발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이따금 주민 수용성 등의 난항을 겪으며 사업 개시에 애를 먹게 하는 주역이다. 반면, 선도국들은 발전사업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철저한 사전평가와 관리방안을 수립해 위험 요소를 사전에 최소화하고 있다.

김동주 전문가는 “국제적 차원의 환평은 사업 시행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당사자 민원과 환경 관련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오히려 사업의 좌초 위험을 낮추고, 관련 비용도 절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이와 함께 상업운전·운영에 돌입한 단계는 물론 발전소를 해체하는 단계까지도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발사별로 체계화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환평은 국내 발전사업에서 발전사업허가 취득 후 본격화된다. 반면 해외 프로젝트에선 ‘적도 원칙’과 ‘국제금융공사 이행표준’ 기준에 따라 발전사업을 기획하는 사전 단계부터 면밀한 파악이 이뤄진다. 발전사업지 인근 동식물 보호종, 환경오염 등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고 악영향을 회피, 최소화하는 저감·관리방안을 세우는 것이 기본이다. 또, 주민·어민뿐 아니라 어업 노동자 등 소통해야 할 이해관계자의 범주도 더욱 넓다.
다만 풍력발전 개발사가 각 지역의 환경변수를 사전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영국·호주 등의 개발사는 다수 개발사가 협력해 기초 환경조사를 진행하거나,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사업의 난이도를 낮추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력 당국이 누적 평가 및 사전입지 등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발사 간 합동조사 및 정보공유도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환평 기준이 점차 국제 표준에 맞춰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업자들의 환평 관리는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더욱이 환평은 금융 활동과 연계되기 때문에 사업의 첫 시작과 향후 성패를 판가름 짓는 요소로 부상할 전망이다.
김동주 전문가는 “현재 전 세계 140개 금융사가 이를 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국제금융 기준에 동참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각 개발사 차원에서 이를 전문적으로 관할할 인력과 상세한 대응 방안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