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정책 설계로 제조사·발전사 모두 놓쳐”
일자리·산업체 증가 효과 ‘미미’
차기 장기고정가격 입찰서 개정 여부 촉각

‘탄소인증 모듈 등급제(탄소인증제)’가 도입 4년 차에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태양광 장기고정가격계약 내에서의 작동 효과가 미미한 탓에 산업진흥과 보급 활성화라는 도입 취지도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탄소인증제란 모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량에 따라 고정가격계약 입찰 시 차등해 가산점을 지급하는 제도다.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20년 당시에는 중국산 태양광 모듈의 배출계수가 높아 국산 모듈과 비교해 등급을 획득하기 어려울 것이란 공감대가 있었다. 이를 통해 국산 제품이 높은 등급을 받으면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사실상의 ‘산업보호’, ‘무역장벽’의 명목이 강했다. 그러나 제도 도입 4년이 지난 현재 정부와 업계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한 발전사업자 관계자는 “인증제 전에는 시공사, 발전사 측에서 국내산을 원했고 사용하려 했다”면서도 “하지만 오히려 제도가 시행되면서 첫 시행년도부터 사업자들은 ‘와닿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가격은 높고 배점 차등은 효과가 없어 현재와 같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제도가 도입 취지에 맞게 ‘국내 산업을 보호했나’라는 질문은 물음표로 남아있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한국산 웨이퍼’를 생산하며 탄소인증제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웅진에너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웅진에너지는 지난 2019년부터 법정관리를 거친 끝에 2022년 파산했다.

제도가 생기면 시장이 조성되고, 직접적인 수혜 기업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탄소인증제는 이 같은 효과에서 빗겨났다는 게 현재까지의 중론이다.

제도가 도입된 2020년과 최신 통계인 2022년의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 산업통계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제조업 매출은 10조7369억원에서 15조9699억원으로 5조원 이상 성장했다. 반면 제조사만 떼어보면 수혜를 입은 기업은 매우 한정적이다.

먼저 제조기업수는 499개사에서 524개사로 25개사가 늘어나는데 그쳤고, 이 기록마저도 2021년(536개사)에는 줄어들었다. 당장 모듈 이전의 소재 단위를 취급하는 기업은 2021년 3개사만 남아있던 것이 2022년에는 모두 사라졌다. 제조업 종사자수 역시 1만2759명에서 1만1864명으로 895명이 순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는 제도는 필수적이지만, 탄소인증제 도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거나 유의미한 시장 보호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지점”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시각에선 당초부터 국내 기업의 내수 시장 수요를 충족할 생산량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점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2020년 도입 당시에는 등급에 따라서 발전효율에 차이가 없더라도 가능한 1등급을 쓰려는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생산이 원활하지 않아 ‘앞으로 설치하겠다’는 확약만 받고 등급 인증을 진행하는 사례도 속출했던 것.

업계 관계자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현장에서 1등급 제품 구하기가 힘들어 수개월을 기다리는 일이 허다했다”며 “그만큼 모듈 공정이 부족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업계의 공통된 시각은 산업이 구실할 수 있는 충분한 내수시장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사 관계자는 “양면형으로 효율이 높은 제품을 생산하던 한 국내기업이 태양광 사업을 철수하면서 이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며 가격 인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수시장에 알맞은 적정한 공급망을 지키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 속에 제도의 부작용을 개선할 여러 방도가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최우선으로 ‘실효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현행 제도는 등급별 가격배점차가 고정가격입찰의 당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출처=전국태양광발전협회, 전기신문 재정리]
[출처=전국태양광발전협회, 전기신문 재정리]

현재 탄소인증제 배점은 총 15점 만점에 등급별로 5점의 차이가 나는 구조다. 전체 평가점수 100점 중 만점과 무등급의 점수차로 14점은 작지 않다. 하지만 입찰가격 점수로만 100점 중 70점이 배정돼, 결국 가격이 절대적인 변수다.

발전사 관계자는 “정부에 요구했던 게 배점을 높여달라는 것”이라며 “고정가격 상한가와 기준가격이 현실과 맞지 않게 내려가는 효과도 함께 발생하다 보니 더욱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정부도 배점 기능 복원에 무게추를 싣고 있다. 앞서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이행 설명회를 통해 탄소인증제 및 고정가격입찰의 비가격 평가 요소를 개편할 가능성을 내비친 상황이다. 다만 강제적으로 모듈 제조사의 판가를 낮출 수는 없기 때문에 배점을 높이는 것이 우선될 것이란 예상이다.

반면 업계에선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선 제도에 따르는 사업자에 대한 충분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높은 가격의 모듈을 사용한 만큼 이에 대한 보상이 수익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고정가격 입찰시장보다 현물시장이 유리하게 형성된 지금, 구태여 국산을 선택할 요인을 꼽기 어렵다는 게 뼈아픈 부분”이라면서도 “무엇보다 수익을 통해 국산 제품 사용을 유도하는 한편, 지난 입찰 미달의 원인을 분석해 소형 태양광에 대한 시장 분배, 장기계약기간의 조정 등을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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