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제도가 본격 시행을 알렸다. 한국전력이 전력판매를 독점하는 구조이지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한해 소비자에게 직접 전기를 공급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실천을 요구받는 기업들이 좀 더 수월하게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의도인데, 과연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참여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 애플·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 이미 RE100 동참...우리 기업들도 참여 요구 거세져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국가를 넘어 기업으로 확산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이에 동참하며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국제 캠페인인 RE100 참여 기업은 세계적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애플, 구글, BMW,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을 포함해 380여개 기업이 이미 참여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 중에서는 SK그룹 7개사,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22개사가 이미 RE100 에 가입했으며, 삼성전자는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적극적인 우리기업들의 RE100 참여를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기업 300개사(대기업 80개, 중견기업 220개)를 대상으로 '국내 제조기업의 RE100 참여 현황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 14.7%가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고 응답했다. 응답 기업 중 대기업은 28.8%, 중견기업은 9.5%가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서 RE100 참여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로 미미한 수준인 것은 물론 한전 전력 판매를 독점하는 현 구조상 기업들이 RE100을 실천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뛰어들거나,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녹색 프리미엄' 요금제에 참여하는 방법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고자 지난해 전력 공급-수요자가 한전을 끼고 계약을 맺는 제3자 PPA 제도를 도입했다.

제3자 PPA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간 합의 내용을 기초로 한전이 발전사업자와 구매계약을, 전기사용자와 판매계약을 각각 체결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제3자 간에 거래하는 제도다. PPA 계약을 한전이 중개하는 형태다. 하지만 계약 성사 건수는 단 2건에 그치며 기업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발전사업자와 기업 1대1로 전력거래 체결…기업들의 선택 폭 커지고 부담은 줄어

직접PPA 거래구조도
직접PPA 거래구조도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를 전기 사용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직접PPA 제도'를 마련했다. 이 제도는 이달부터 본격 시행중이다.

직접 PPA는 한전이 전력구매계약을 중개하는 '제3자 PPA'와 달리 발전사업자와 기업이 1대1로 전력거래를 체결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한전이 중개하지 않고 발전사업자와 사용자간 직접거래가 가능해 기업들의 선택의 폭이 확대되고 부담도 어느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업부는 직접 거래가 허용되는 발전원을 태양에너지, 풍력, 수력, 바이오, 지열, 해양에너지 등 6개 재생에너지로 규정했다. 거래 규모는 기업 수요를 고려해 기존 1㎿ 초과에서 300㎾ 이상으로 확대했다. 계약형태는 발전설비 대 전기사용자 기준으로 1:1, 1:N, N:1 등으로 다양한 방식을 취했다. 발전량이 소비량보다 많아 남는 전기는 전력시장에 판매하고, 반대로 부족한 전기는 전력시장 또는 한전을 통해 구입할 수 있게 했다.

직접PPA 전력거래대금 흐름도
직접PPA 전력거래대금 흐름도

정산구조의 경우 ▲전력량 대금 ▲망이용 요금 ▲부가정산금 ▲전력산업기반기금 ▲거래수수료 등을 책정해 정하기로 했다.

제도를 구축한 산업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구매 희망자의 선택 폭이 넓어진 만큼 국내 기업의 RE100 참여가 더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야심차게 시행했지만…망 이용료 부과·수수료 지불 등 여전히 걸림돌 산재

하지만 직접 PPA 제도 도입으로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PPA 제도를 도입하고도 흥행에 실패한 이유로 망 이용료 부과, 수수료 지불 등으로 인한 높은 전력 이용요금이 꼽혀왔다. 여기에 아직까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 특성상 현 시점에선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구매 희망자는 물론 판매 희망자의 참여 유인이 낮은 상황이다.

PPA 방식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송전하기 위해서는 발전사업자가 한전으로부터 허가증을 발급받고 송전 가능한 배전선로를 공급받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공급받은 한전의 송배전망 이용요금은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시장 구조상 발전사 측이 아닌 전력수요자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

이에 전력수요자인 기업은 송배전망 이용금과 한전이 제시하는 전력손실반영금액, 부가정산금, 거래수수료, 복지 및 특례할인 금액, 전력산업기반기금 등 각종 부대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다.

이러한 제반비용을 모두 고려했을 때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을 이용하거나 타 대체 가능한 RE100 이행수단을 고려하는 반면 PPA를 통한 재생에너지를 이용할 유인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PPA 제도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으로 높은 전력 이용요금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망 이용요금에 대해 가격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망이용 요금 부과와 관련해 이미 기존 산업용 전기요금을 통해 한전의 송배전망에 대한 사용료를 내고 있는 만큼 PPA 체결과정에서 망 사용료를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것에 대한 개선방안 마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는 직접 PPA의 초기 참여를 독려하고자 PPA 참여 기업에 대해 전력거래소에 내야 하는 거래수수료를 3년 동안 면제하고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선 망 이용요금을 녹색프리미엄 조성 재원으로 대신 납부해 준다는 복안이다. 20㎿ 이상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대해선 일부는 직접 PPA로, 나머지는 일반 전력시장에 파는 분할거래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시적인 지원으로는 기업들의 장기적인 참여가 힘들며, 직접PPA 제도가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입장에서 사실상 큰 메리트가 없는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SMP가 ㎾h당 200원을 웃돌고 있어 ㎾h당 60~80원 수준인 산업용 전기요금(소매가)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다.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소매가격으로 기업에 전기를 직접 판매하는 것보다는 도매가로 한전에 판매하는 것이 훨씬 이득인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MP가 치솟는 상황에서 지금은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향후 SMP 가격이 하락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면 특정 기업과 일정 가격으로 장기적인 거래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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