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성과 발표회 개최
조진만 부연구위원 “기술·제도 갖춰도 사용자가 안 쓰면 무용지물”
전기차 70% 정차상태...충전기 연결·제어 허용 유도가 관건
박기준 랩장 “현행 전기요금으론 비즈니스 모델 성립 어려워”

2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성과 발표회에서 조진만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사용자의 행태를 고려한 전기차의 유연성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 연구'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2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성과 발표회에서 조진만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사용자의 행태를 고려한 전기차의 유연성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 연구'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전기차를 전력망의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하는 V2G(Vehicle-to-Grid) 기술이 성공하려면 기술·설비·제도 못지않게 사용자 행태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성과 발표회에서 조진만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술과 설비, 제도가 완벽하게 갖춰져도 사용자가 주행을 중단하지 않거나 정차 시 충전기를 연결하지 않거나 배터리 제어를 허용하지 않으면 V2G는 제 역할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V2G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전력망으로 역전송하는 기술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2023년 8.4%에서 2038년 29.2%로 급증하면서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동하는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유연성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28년 4MW를 시작으로 2038년까지 1.5GW의 최대전력 절감을 V2G로 달성할 계획이며, 현재 현대건설 컨소시엄 주관으로 전기차 1500대 규모의 실증 과제가 진행 중이다.

먼저 조 부연구위원은 V2G 작동을 위한 기술·설비·제도 차원의 현황을 점검했다. 기술적으로는 차량과 전력망의 양방향 통신·제어 기술이 상당 수준 개발됐지만 실질적 상용화는 2028년은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설비 측면에서는 V2G 기능 탑재 전기차와 양방향 충전기가 거의 보급되지 않았고, 충전 수요와 충전기 설치 장소의 공간적 미스매치 문제도 확인됐다. 제도적으로도 전력 거래나 보조서비스 시장 참여를 위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이다.

 조진만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청중들. [사진=오철 기자]
조진만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청중들. [사진=오철 기자]

그는 “단기적 관점에서 V2G 활용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간과했던 사용자 행태 차원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는 본질적으로 이동 수단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운영 방식이 유연성 자원으로의 활용도를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조 부연구위원은 전기차가 V2G 자원이 되기까지 사용자가 거쳐야 할 의사결정을 ▲주행 중단 의사 ▲충전기 연결 의사 ▲제어 허용 의사 등 세 단계로 구분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비로소 전기차가 유연성 자원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V2G로 활용할 잠재 자원은 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한국자동차연구원 데이터를 활용해 전기차 약 1600대의 주행·충전 480만건을 분석한 결과, 하루 중 어느 시간대를 보더라도 최소 70% 이상의 전기차가 주행도 충전도 하지 않는 단순 정차 상태였다.

조 부연구위원은 “전기차 사용자들을 어떻게 충전기에 연결하고 제어를 허용하게 만드느냐가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라며 “또한 V2G를 사용했을 때 사용자별로 느끼는 불편의 정도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무작위로 참여를 독려하기보다 불편을 적게 느끼는 사용자를 데이터 기반으로 선별해 표적화(Targeting)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겨울철 기온이 낮아지면 전비의 하락을 고려해 전기차 사용자들이 차량 실내 온도를 낮춘다. 이는 겨울철에 사용자들이 배터리 사용에 더 민감해진다는 의미”라며 “배터리를 아끼려는 사용자 심리를 극복할 만큼의 높은 수준의 보상이 제공돼야 전기차를 유연성 자원으로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조진만 부연구위원은 “V2G의 빠른 안착을 위해서는 기술 개발부터 제도 마련까지 종합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하지만, 여기에 더해 사용자 행태에 대한 추가 연구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널토론 시간에 박기준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 데이터사이언스랩장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패널토론 시간에 박기준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 데이터사이언스랩장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박기준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 데이터사이언스랩장은 사용자 행태 변화의 중요성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장애물을 지적했다. 그는 “기술은 준비돼 있고 우리나라처럼 인프라 보급을 잘하는 나라에서는 충전기도 금방 깔 수 있지만, 가장 부족한 것은 정책과 제도”라고 말했다.

박 랩장은 특히 경직된 전기요금 체계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그는 “어떤 기술이 들어오고 제도가 열리더라도 현행 전기요금으로는 적절한 수익을 창출할 수 없어 비즈니스 케이스가 나오기 어렵다”며 “투자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 사례로 태양광 발전과 전기차 충전의 조합을 들었다. 그는 “지붕 위 태양광으로 전기차를 충전하면 될 것 같지만, 현행 요금 체계에서는 태양광 전기를 한전에 팔면 kWh당 170~400원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전기차 충전은 심야 요금으로 110~120원이면 가능하다”고 비교했다.

결국 현재 구조에서는 태양광 전기를 한전에 팔고 전기차는 따로 충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박 랩장은 “V2G가 도입되더라도 시간대별 요금 차이가 충분하지 않으면 적절한 차익을 얻을 수 없어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되기 어렵다”며 “경직된 요금 체계를 개선해 V2G나 가정용 ESS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케이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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