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당국이 최근 도입을 준비 중이던 지역별 도매전력요금제(LMP)에 대한 얘기가 쏙 들어갔다. 분명 지난해까지도 업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LMP에 대한 논의는 새 정부 들어 갑작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정부는 당초 올해 중 LMP의 시범도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이와 함께 내년 중에는 한전의 소매 전기요금과 연동해 정식으로 전력시장에 적용하겠다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 계획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전력당국에 따르면 최근 LMP와 관련한 회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을뿐더러 정부도 언급을 피하는 분위기다.
업계는 이 같은 분위기를 두고 정치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 여당의 정치적 기반은 수도권과 호남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소매시장과 연동된 LMP를 추진하게 되면 두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탓이다.
먼저 수도권의 경우 LMP로 인해 도매가격이 비수도권 대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한전의 전기요금과 연동한다면, 수도권의 전기요금 상승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수도권 지역 국민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국내에서 태양광 설치 비중이 가장 큰 곳이다. 수도권의 도매전력가격이 상승하는 반대로 비수도권의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호남 지역에 대부분 위치한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여당의 정치적 기반인 두 지역 모두 큰 타격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 같은 배경에서 업계는 정치적 입장이 LMP 추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과도하게 개입할 때, 에너지 시장은 본래의 목적을 잃는다.
도·소매 전기요금은 산업경쟁력과 시장 효율성을 위한 기술적·경제적 판단의 영역이어야 함에도,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가 정책 추진의 발목을 잡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LMP 제도의 논의 중단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전력시장의 지역별 가격 신호는 단순한 요금 문제가 아니다.
발전설비의 입지를 효율적으로 유도하고, 계통 투자 방향을 합리화하며, 재생에너지의 출력제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러한 제도의 경제적·기술적 효과보다 정치적 파장을 우선시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 전체에게 돌아온다.
정치의 에너지 개입에 대한 단골 레파토리인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다. 왜곡된 가격 구조 속에서 한전의 적자는 누적되고, 세금으로 그 부담을 메워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에너지 정책은 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인프라 전략이어야 한다. 정치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립적 정책 결정 구조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력시장 제도 개편, 탄소중립 이행 로드맵, 요금 현실화 등은 모두 정권의 유불리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국가 과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단기적 접근이 아니라, 기술과 시장의 원리에 기반한 일관된 정책 방향성이다. 정치의 그림자가 짙을수록 에너지 시스템은 불안정해지고, 투자 신뢰는 흔들린다.
정부가 진정한 ‘시장 중심의 에너지 거버넌스’를 지향한다면, 이제는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가 전력정책의 기준이 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