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삼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상임이사.
진우삼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상임이사.

RE100 산단은 혁신인데, 유치 전략에 혁신이 안 보여

RE100은 글로벌 공급망에 있는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문법이 됐다. 한국은 수출기업 중심으로 참여가 확대되면서, RE100 기업들의 연간 재생에너지 수요가 70TWh에 이른다. 세계 최대 규모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비싸다. 여기에 제도 장벽까지 높아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RE100 산업단지’다.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많은 지역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RE100 기업을 입주시킴으로써 생산과 소비를 한데 묶겠다는 구상이다. 송전망 부족과 입지 갈등을 동시에 해결하면서 기업 RE100 수요도 충족시키려는 발상이다. 이것은 재생에너지 전기를 생산지에서 송전망을 통해 수요지역으로 보내는 대신, 수요를 생산지역으로 옮기겠다는 혁신적 구상이다. 게다가 지역에 투자를 끌어들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방 소멸을 막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들의 입주이다. 기업이 들어오지 않으면 산업단지는 또 하나의 빈 땅일 뿐이다. 이미 전국에 97개 산업단지가 기업 유치에 실패해 빈 땅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RE100 산업단지 입지가 재생에너지 생산지역이라는 전제 때문에 지방에 조성될 텐데, 기업들이 과연 올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한다. RE100에 참여하는 것도 그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제 비영리단체 CDP의 설문조사에서도 기업의 70%가 ‘재생에너지 통한 비용 절감’을 RE100 참여 이유로 꼽았다. 따라서 기업이 RE100 산업단지 입주를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는 재생에너지 가격이다.

그런데 각 지역의 유치 전략을 보면 주민 소득이나 지역 발전은 강조하면서 정작 기업이 궁금해할 ‘재생에너지 가격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지역도 “재생에너지를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겠다”와 같은 유인책은 없다. 이런 전략으로는 기업 입주를 선뜻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혁신은 태양광을 100원/kWh 이하로 낮출 것

지자체들은 지역 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가 많아 RE100 산업단지 적지라고 말하지만, 지금처럼 RPS 시장에 진입하는 발전소는 아무리 많아도 RE100 기업과 관련이 없다. 따라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재생에너지 개발·보급 정책을 과감히 바꾸어야 기업 RE100을 위해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단가를 낮출 수 있다.

해법은 명확하다. 혁신으로 태양광 전기 가격을 kWh당 100원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현재 유틸리티급 태양광 설치비 단가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제도와 행정이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다.

첫째, 발전사업자 선정을 경쟁입찰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지자체가 부지와 전력 계통을 제공하고, 사업자는 25년간 얼마에 전기를 공급할지 써내도록 하면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다. 기술과 자본은 이미 준비돼 있다.

둘째,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전기사업법의 발전사업허가 심사항목을 보면 사실상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제도는 무의미하다. RE100 산단만큼은 특별법으로 발전사업 허가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나아가 개발행위허가도 네거티브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셋째, 영농형 태양광에 대한 농지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 영농형 태양광은 RE100 산업단지 재생에너지 공급 잠재력이자 농가소득 증대에 크게 도움이 된다. 또한 농사와 태양광을 병행하여 일정한 소득을 확보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농지보전 방안이 될 수 있음에도 여전히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특별법에 ‘농지 규제 Zero’를 담아야 한다.

RE100 산업단지는 산업과 에너지, 기업과 지역이 함께 상생하는 한국형 에너지 전환 모델이 될 수 있다. 혁신을 통해 기업에는 값싼 재생에너지를, 지역에는 투자와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제조업 공급망도 에너지 전환 동력과 경쟁력을 얻게 된다.

혁신 없는 RE100 산업단지는 결국 빈 땅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혁신으로 태양광 100원/kWh 시대를 연다면, 국가 산업과 지방 경제의 미래를 동시에 바꾸는 아이콘이 될 것이다. 나아가 제조업 공급망이 집중된 아시아 지역의 Net Zero를 가속화하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진우삼 /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상임이사 / 한국RE100위원회 위원장 / 전)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 /전)가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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