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판매량 8.9% 급감…‘포비아’ 확산으로 타격
배터리 인증제 도입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불분명’
스마트 충전기 4만여개 구축했지만 연동 차량 ‘전무’
소방시설 개선으로 대형 화재 재발 방지…성과 거둬

2024년 8월 1일 인천 청라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 인근 차량으로 화재가 번져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 8월 1일 인천 청라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 인근 차량으로 화재가 번져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 8월 1일 새벽. 인천 청라국제도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조용히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렸으며, 주민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정부는 사고 한 달 뒤인 9월에 관계부처 합동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전기차 안전성 확보에 나섰다. 그로부터 1년. 배터리 인증제 도입과 소방시설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특히 핵심 과제로 꼽혔던 스마트 제어 충전기는 인프라는 구축되고 있지만 정작 활용할 수 있는 전기차가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기차 포비아 확산…판매량 ‘급브레이크’

청라 화재는 단순히 한 아파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기차 포비아'라는 말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전기차 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판매량이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통계를 보면, 화재 직후인 9월과 10월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3.3%, 7.8% 감소했다. 2023년 9월 1만4183대에서 2024년 9월 1만2300대로, 10월에는 1만5435대에서 1만4234대로 줄어든 것이다.

연간 판매량도 영향을 받았다.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KSGA) 차지인포에 따르면 2024년 전기차 신규 등록량은 14만344대로 전년(15만4045대) 대비 8.9% 감소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확산 정체)’ 현상을 겪고 있었지만 미국(+7.3%), 영국(+21.4%), 캐나다(+40.7%) 등이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EV WIRE, Global EV Sales Report 2024).

지난해 8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직후 서울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금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8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직후 서울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금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화재 여파는 일상 곳곳에서도 나타났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진입을 막는 조치가 도입됐고, ‘전기차 불날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입주민 간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하에 설치된 충전기를 추가 비용을 들여 지상으로 옮기는 사례도 속출했다.

◆배터리 관리 강화했지만…'실질적 성과는 불분명'

정부는 9월 종합대책에서 배터리 관리 체계를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지만 실질적 성과는 불분명하다.

국토교통부는 배터리 인증제를 통해 전기차 제작 시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을 사전에 인증하고, 배터리 정보 공개 범위도 확대했다. 기존에는 용량과 정격전압, 최고 출력만 공개했지만, 이제는 셀 제조사와 형태, 주요 원료까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올해 2월부터는 배터리 이력관리제가 시행돼 전기차 정기검사 때 셀 전압, 배터리 온도·충전·열화 상태, 누적 충·방전량까지 점검하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 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배터리 인증제 개요. [제공=국토부]
국토부가 지난 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배터리 인증제 개요. [제공=국토부]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개선도 추진 중이다. 주요 제작사들이 구형 전기차에 BMS 안전기능을 무료로 설치하고, 기존 차량의 성능도 무상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부 개입 없이 완성차 업체 자율에 맡겨져 실제 성과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BMS가 위험 상황을 감지하면 소방서에 자동으로 신고되는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최영석 한라대 스마트모빌리티공학부 교수는 “배터리 인증제가 현재 팩 단위로 진행되고 있는데 셀 단위 인증도 공식화하고 정보도 투명하게 해서 인증제 안에 포함해야 한다”며 “그래야 제품 품질도 강화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 충전기 구축 중…‘실제 가동’은 현재 불가

하지만 종합대책의 한 축이며 전기차 배터리 안전의 이중장치로 소개됐던 스마트 제어 충전기는 기대와 달리 아직 본격 가동을 못하고 있다. 청라 사고 전부터 준비했던 정책이지만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시스템인 데다 완성차 업체들의 준비 지연이 일정을 지체시켰다.

다행인 점은 충전기 쪽 기술은 거의 완성됐다. 지난 5일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4만2032개의 스마트 제어 충전기 설치가 한창이고, 이 중 1만1039개는 이미 준공 검사까지 마쳤다. 정부는 연말까지 스마트 제어 충전기 준공 검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스마트 제어 완속충전기 시스템 전체 구성도 [사진=KTC]
스마트 제어 완속충전기 시스템 전체 구성도 [사진=KTC]

문제는 정작 이 충전기와 '통신'할 수 있는 전기차가 단 한 대도 없다는 점이다. 스마트 제어 충전기가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충전량을 조절하려면 전기차가 SoC(충전량) 정보를 보내줘야 하는데, 현재 시판되는 전기차 중에는 이 기능을 지원하는 차량이 전무하다.

현장 점검에서 사용된 KGM 무쏘와 토레스EVX, 현대차 아이오닉5도 검사를 위해 특별히 개조한 ‘실험용’ 차량이었다. 마치 최신 스마트폰 충전기를 샀는데 정작 연결할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전기차 제작사들이 EVCC(전기차 통신 제어기) 업데이트를 완료해야 하는데, 환경부는 "2026년 1월 1일까지 차량의 통신 프로토콜을 업데이트한다는 확약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제조사들의 준비가 늦어지면서 실제 이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상황에서 충전량(SoC) 제어까지는 내년에 진행될 것으로 보이나, 배터리 상태정보를 활용하는 방안은 몇 년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공론화 과정 등이 남아서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소방 대응력 강화...‘더 이상 대형 화재 없어’

그나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분야는 소방이다. 전국 240개 소방관서에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가 대폭 늘어났다. 정부는 이동식 수조는 297대에서 397대로, 방사장치는 1835개에서 2116개로, 질식소화덮개는 875개에서 1131개로 각각 확충 중이다.

특히 중요한 건 스프링클러 시설 강화다. 청라 화재 현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화재를 키웠다. 이후 정부는 신축 건물에는 습식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고, 기존 건물의 스프링클러도 전면 점검을 받았다.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를 점검하는 모습. [사진=양주시]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를 점검하는 모습. [사진=양주시]

실제 효과도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전기차 화재는 간헐적으로 발생했지만, 청라처럼 대형 참사로 번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초기 진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1년간 정부가 바쁘게 움직였지만 종합대책에 제시했던 상황과는 아직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종합 대책이 발표됐지만 일선에서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굉장히 협소하다”며 “현재 지하주차장에 있는 완속충전기에 대한 교체 전략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선적으로 기존 충전기 교체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진행해야 한다”며 “추가적으로 불꽃감지와 연기 감지를 함께하는 센서와 AI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도입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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