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선로를 둘러싼 오랜 갈등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주민들의 전자파 걱정과 경관 및 환경 훼손 등의 이유가 다양하다. 특히 수도권 전력 수송을 위해 발전단지 부담을 지고 있는 지자체의 반대 목소리도 이해된다.

하지만 갈등을 ‘장사’로 삼는 경우도 있다. 한 지자체가 한전의 선로 통과 조건으로 수백억 원의 교부금을 요구한 사례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해당 프로젝트 총사업비의 5%를 웃도는 큰 금액으로, 최대 전력 수요지인 서울로의 진입을 막아 ‘판돈’을 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지자체들도 협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한전은 40조 원대 적자에 더해 사업비 증액과 추가 지출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문제는 지자체의 ‘몽니’가 한전 재무 악화 이상의 나비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교부금을 놓고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대규모 발전력은 계통접속 지연으로 발이 묶인다. 동·서해안의 발전사들은 계통 부족으로 출력제어 및 가동불능 상태에 시달리며 조 단위의 손실을 입고 있다.

전력 조달을 기다리는 반도체 등 제조기업은 경영전략 차질을 피할 수 없다. 지자체별 전력공급을 예단하기 어려워 전국 단위의 수급 계획도 뒤틀린다. 정부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거나 이중삼중의 추가 혈세를 지출하게 된다. 한 지자체가 곳간을 채우는 동안 국민 전체가 부담을 지는 것이다.

계통확충 지연의 책임을 지자체에만 물을 수는 없지만, 명확한 법과 기준이 있었다면 교부금 책정과 같은 불필요한 소요는 줄였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에 다시금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해당 특별법은 한전 및 산업통상자원부의 결정권을 중앙정부로 격상해 갈등 조정 기능을 강화했다. 정부 중앙부처, 장관 및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국가기간 전력망확충위원회’를 통한다면, 최소한 수백억 단위의 낭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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