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마지막 본회의서 결국 처리 불발
전력망 비롯 원전·재생E 산업 약화 우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관계자가 본회의장 문을 닫고 있다.[제공=연합뉴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관계자가 본회의장 문을 닫고 있다.[제공=연합뉴스]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에너지 업계 숙원 법안들이 자동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국회라는 발목에 잡혀 에너지 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28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고준위 방폐법),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전력망 특별법), 해상풍력보급활성화에관한특별법(해상풍력 특별법) 등 에너지 정책에 관련한 법안들이 상정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는 법안 가운데 제정이 가장 시급한 것은 고준위 방폐법이다.

이달 말 여야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한때 21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결국 원전 폐기물 처리 문제의 공은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그동안 관련업계 및 기관과 학회, 원전소재 주민들은 이 법안 통과를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국회는 이같은 요구를 외면했다.

현재 한국은 고준위 방폐물의 법적 처분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각 원전 본부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 보관 하고 있다. 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은 2028년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불과 10년내 한빛-한울-고리 순으로 줄줄이 포화시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리 하기 위해서는 고준위 방폐장을 조성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지금 착공한다 해도 2060년에야 본격적인 운영을 할 수 있다.

원전 가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사용후 핵연료 영구 처리를 위한 고준위 방폐장 논의를 시작했어야 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지금까지 폭탄돌리기만 해왔다. 골든타임은 이미 놓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당장 착공에 나서도 30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고준위 특별법이 통과를 시작으로 부지 선정, 지역 주민 설득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고준위 특별법 제정이 지연될수록 최악의 경우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전기요금이 급등의 우려도 제기된다. 사용후 핵연료를 더 이상 저장할 임시공간이 없어 원전을 계속 가동할 수 없고, 원전 보다 가동 비용이 훨씬 비싼 석탄발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으로 대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원전 수주전 난항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체코 수주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이 수주전에는 한국과 프랑스 두 곳이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프랑스 측에서 한국 내 방폐장 건립 지연 등의 약점을 내세워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프랑스를 비롯해 원전 운영 상위 10개국 가운데 고준위 방폐물 부지 선정에 착수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와 함께 전력망 특별법도 폐기됐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공돼 100% 가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2053년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량은 14.7GW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시기에 맞춰 전력 수급량을 점점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에 발전소 추가 건설과 함께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망 구축도 함께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송전망 구축 지연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력망 특별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력망 확보 등을 위해 전력망 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전력망 건설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고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보상책 등이 담겼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전력망 확충위원회를 만들어 한전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서 주민과의 갈등을 중재하고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각 부처가 제각각 하던 인허가 절차를 빠르게 처리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높이는 구상이다.

그러나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전력망 확충에 준공 지연 등 사업의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만약 전력망이 반도체 클러스터 준공 시점보다 늦게 구축될 경우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저하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해상풍력 입지를 선정하고 풍력사업 절차를 간소화해 보급을 확대하는 내용의 해상풍력 특별법 또한 폐기됐다. 이에 정부 주도의 해상풍력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 역시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에 관련업계에서는 국회가 전력산업을 비롯해 원전부터 재생에너지까지 모든 에너지 산업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관련 법안 처리가 안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 “정쟁에 매몰돼 반드시 처리돼야 할 법안들이 외면당한다면 기업의 생존을 넘어 국가 경쟁력까지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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