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여야 대치를 거듭하던 21대 국회가 역대 최저 법안처리율로 ‘무능한 국회’라는 오명을 쓴 채 마무리됐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 및 재의요구권(거부권)과 법안 폐기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민생 법안들이 내팽개쳐진 결과다.
21대 국회에서 총 2만5847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9455건이 처리(부결·폐기 등 포함)돼 법안 처리율은 36.6%에 불과했다. 이는 역대 최악으로 꼽혔던 20대 국회(37.9%)보다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던 28일 여야가 처리한 법안은 겨우 6개뿐이었다.
여야가 쟁점 법안을 둘러싸고 대치를 거듭하는 사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법안들은 갈수록 늘어갔다. 21대 국회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산업계와 민생에 직결된 1만6300여개 법안들은 모두 폐기 수순을 밟게됐다.
특히 에너지 업계 숙원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고준위 방폐법), 해상풍력특별법(해풍법),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전력망특별법) 등 처리가 불발되면서 22대 국회에서 처음부터 처리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고준위 특별법’은 절박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대립를 거듭하다 시기를 놓쳐 버렸다. 이에 최악의 경우 당장 6년 후인 오는 2030년부터 원전 가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원전 생태계 복원에 총력을 다하고 해외 원전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국회가 나서 발목을 잡은 꼴이 된 셈이다.
전력망 특별법 역시 폐기됨에 따라 전력난 현실화에 대한 우려도 커져가고 있다. 전력망 특별법은 전력망 건설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고,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보상책 등이 담겨 있는 법안이다. 지역 주민의 반대와 지자체 인허가 지연, 부처 간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전력망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불발되면서 용인 일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22조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메가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1대 국회에서는 협치는 온데간데없고 정치 공방만 벌였던 기억밖엔 남지 않았다. 새로 시작될 22대 국회에서는 경제와 민생을 위해 여야의 협치와 타협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