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중단된 울진 신한울 3, 4호기 원전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제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중단된 울진 신한울 3, 4호기 원전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제공=연합뉴스

국가의 에너지정책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한다. 이 목표를 근간으로 다양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대책들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정책은 날이 갈수록 정쟁화하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원자력발전 비중을 크게 줄이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이 치중됐다. 그 결과 정치권은 물론, 업계·학계에서까지 갈등구조가 형성됐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따라 인상요인이 생긴 전기요금 역시 정치적 이유로 거의 묶어놓다시피 하면서 ‘정치요금’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이에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 에너지정책을 정쟁거리에서 탈피시켜 현 전력시장 구조에 입각한 합리적인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정부에서 역시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운 분위기다. 원전이 재생에너지로 뒤바뀐 점만 빼면 하나의 에너지원을 타깃 삼아 공격하는 모습은 이전 정부와 다를게 없는 모습이다.

에너지를 정쟁화 하는 것은 비단 정부 뿐만 아니다. 국회에서는 더 심한 모습이 자행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예산 삭감 등의 방식으로 현 정부의 원전 활성화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서며 맞서고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에너지정책을 설정하는 하나의 에너지원이 아니라 어느순간부터 ‘이념’이 돼 버린 셈이다.

◆원전은 살리고 재생은 죽이는건가…尹 정부, 태양광 사업 축소 본격화

윤석열 정부 들어서 신재생에너지 정책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 부분의 축소가 눈에 띈다.

실제로 정부는 앞서 대폭 상향됐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낮추는 작업에 돌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초 ‘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원전 비중을 전체 발전량의 32.4%, 신재생에너지는 21.6%로 확정했다. 이는 2021년에 확정된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안’과 견줘 보면 원전은 8.5%p 상향, 재생에너지는 8.6%p 낮춘 수치다.

이러한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는 재생에너지 정책의 부작용을 근거로 제시하며 명분을 구축해 나갔다.

최재혁 산업금융 감사국장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제공=연합뉴스
최재혁 산업금융 감사국장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제공=연합뉴스

감사원은 올해 여러차례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감사는 최근 5년간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난개발과 인프라 부족 등 부작용의 원인과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진행됐다.

감사원은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관련해 “청와대가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무리한 계획을 세웠고 산업부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NDC 목표를 맞추기 위해 원전 등 다른 수단도 동원할 수 있었는데, 무조건 신재생에너지 확대만 실현 가능성 검토 없이 진행한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당시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목표를 기존 11.7%에서 20%로 상향한 뒤 2021년 다시 30.2%로 급격하게 올렸다. 감사원은 조사 결과 ‘신재생 30% 목표’가 과도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신재생에너지 사업관리 분야에서 각종 도덕적해이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국전력 등 태양광 발전사업과 업무 연관성이 있는 공공기관 8곳에서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부당하게 태양광 사업을 영위한 임직원 251명을 적발했다.

공직자가 가짜 농업인 행세로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특혜를 받거나, 산업부 공무원이 직접 태양광 업체에 특혜를 주고 재취업한 사례를 적발하는 한편 농업인에 대한 소형 태양광 우대혜택을 받기 위해 각종 서류를 조작한 ‘가짜 농업인’ 815명도 적발했다. 감사원은 부당 영위 관련 공직자 240명에 대해 징계 등을 조치하고, 가짜농업인에 대해선 계약해지 등 행정조치를 관계 부처에 주문했다.

이같은 결과 발표 이후 일각에서는 감사원이 산업부의 ‘무리한’ 목표치 상향 강행의 ‘배후’로 당시 청와대를 지목하며, 에너지 정책의 혼선의 책임을 전임 정부로 전가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재생에너지 정책들을 빠르게 손보기 시작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수치 하향조정을 시작으로 SMP 상한제와 한국형 FIT 제도 일몰 등이 이어졌다.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사업 예산도 축소됐다. 이 예산은 2022년 5691억원에서 2023년 4673억, 2024년 3600억원대로 급감했다.

◆야당이 원전 볼모로 잡아…예산 삭감에 방폐장 특별법 ‘발목’

지난해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제공=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제공=연합뉴스

정부의 재생에너지 축소에 맞불을 놓 듯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원전 활성화 정책들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전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의 2024년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을 단독 의결했다. 단독 의결한 예산 항목은 7개에 달한다.

예산 전액 삭감 사업은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1000억원) ▲원전 생태계 (직접)지원(112억원) ▲원전 수출보증(250억원) ▲원전 기자재 선금 보증보험 지원(58억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333억원) 등이다.

이들 예산이 삭감 소식이 들리자 업계에서는 탈원전으로 고사 위기에 놓였던 원전 산업을 되살리고 미래 먹거리를 포함해 확대하고 있는 수출 전선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업들이 ‘올스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려가 커지자 야당은 여당과의 논의를 통해 이들 예산을 전액 복원시켰다. 그러나 향후에도 이번과 비슷한 상황들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야당의 이러한 행보는 예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원전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마련을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특별법)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산자중기위 법안심사소위원회 통과가 불발되며 지도부에 협상을 일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올 4월 총선 등을 고려하면 제21대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될 공산이 높은 상황이다.

이처럼 고준위 특별법을 두고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갈 곳 없는 사용후핵연료는 쌓여가고 있다. 1978년 고리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45년간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는 1만8600t에 달한다.

문제는 7년 뒤인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예상 포화 시점은 2030년 한빛원전, 2032년 고리원전(조밀저장대 적용 시), 2037년 월성원전 순이다.

원전 운영에 차질이 생기면 전력 수급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에는 원전 발전량이 전체 발전량의 32.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정쟁화는 이제 그만…논리체계 기반으로 한 정책 짜야

관련 학계 및 업계에서는 에너지 정쟁화를 끝내기 위해서는 에너지정책을 이념의 틀에서 하루빨리 해방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 에너지원을 선과 악의 논리로 이분화 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 합리적 논리체계를 전제로 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너지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에너지정책이 정권 입맛에 맞게 손바닥 뒤집듯 바뀌게 되면 수급문제까지 번질 수 있다”면서 “에너지정책에 정치 이념을 제외하고 에너지 시스템에 입각한 논리로 정책을 짜야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분야의 한 교수 역시 “세상에 좋고 나쁜 에너지 원은 없다. 시대와 상황에 맞춰 모든 에너지를 적절하게 구성해야 한다”면서 “에너지정책에 정치화를 빼고 세계화 추세, 공급망 등은 물론 인플레이션과 생활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히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에너지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믹스를 결정하는 구조는 정치가 관료를, 관료는 전문가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고착화 된 지 오래”라면서 “이러한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면 에너지정책은 머지 않아 문제에 봉착할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조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