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산업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를 2018년 대비 53~61%로 확정했다. 산업계는 한계를 40%라고 주장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의 53~61%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 으로 줄인다고 할 때 2035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감축률이다. 유엔은 탄소중립 달성 시점을 오는 2050년으로 정해 놓았지만 실제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방법 등에 대해서는 회원국마다 자국 사정에 맞게 설계토록 했다. 국가별로 산업구조가 다르고 기술 역량, 경제력 등이 다른 상황을 감안한 조치다. 제조업이 발달된 우리나라처럼 전력 소비가 많은 국가에선 온실가스 감축(NDC)을 설정할 때 탈탄소 기술개발을 전제로 감축 목표를 세우는게 기본이다. 당장 산업구조를 바꿜 수 없는 만큼 화석연료를 저탄소나 무탄소로 바꾸는데 필요한 기술개발이 먼저 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NDC 목표를 살펴보면 재생에너지나 전기, 수소차를 크게 확대한다는 계획 외는 당장 산업계가 시행할 수 있는 기술이 거의 없다.
특히 철강 업계의 경우 수소 환원 제철 기술 상용화는 늦어지고 있다. 수소 환원 제철은 철광석에서 철을 만들 때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공법으로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만 배출하는 기술이다. 수소 환원 제철이 상용화 될려면 기존보다 경제성이 있어야 상용화가 가능해 적어도 향후 4~5년은 더 있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업계의 사정을 무시하고 목표를 과도하게 높이면 인위적인 생산 감축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 또한 자동차 업계도 친환경차로 대표되는 전기.수소차의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보급이 더딘 상태다. 정부는 전기차에 14년 동안 보조금을 지원해 왔는데 점유율은 겨우 10%를 넘기고 있다. 수소차는 작년 기준 3688대가 판매 됐는데 전년 대비 20.4% 감소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기술에 대한 보증도 없이 지나치게 숫자에만 집착하거나 국가 이미지 부각에만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 에너지 고속도로를 추진하고 있는데 진작 전력망 확충에 대해 특별한 대안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에너지원은 원자력, 가스, 석탄,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다. 만약 온실가스 50% 감축을 원전만으로만 감축할 경우 원전 60기를 새로 지어야 달성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산업.수송.건물 부문은 탈탄소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전력 부문까지 원전을 배제하면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초 정부는 40%부터 65%까지 여러 숫자를 감축안으로한 2035년 온실가스 감축안을 검토해 왔다. 중요한 것은 2030년 온실가스 48% 감축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목표치만 높이는게 과연 탄소중립에 도움이 되느냐다. 온실가스 감축상 2030년 배출량 목표치는 4억3660만t이다.
총배출량 기준 2억200만t, 연평균 전년 대비 3.6%씩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2035년 NDC가 계획대로 달성되려면 앞으로 10년간 최소 3억2040만t, 최대 3억9470만t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정부의 새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우리의 철강, 석유화학 등 핵심 업종의 생산 비용을 상승시켜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철강, 정유, 석유화학, 시멘트 등 4대 업종만 해도 2026~2030년 배출권 추가 부담만 대략 5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 임에는 맞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한국의 세계 온실가스 배출 비율은 불과 1.4%다. 온실가스 배출 1위인 중국은 지난 9월 2030년까지 정점 대비 7~1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는데 유엔의 배출 비율은 28%이다. 사실상 온실가스 배출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배출 비율이 12%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환경 문제는 전부 사기라면서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 40%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 사실상 관심이 없는데 1.4%에 불과한 우리가 나서는건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찬사를 받고 싶어서 무리한 목표를 제시 한다면 큰 실수다. 제발 산업계의 의견을 듣고 우리 수준에 맞는 목표치를 다시 제시하길 바란다. 잘 알겠지만 한번 잡은 목표치는 파리협정 후퇴 금지 조항에 따라 다시 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의 핵심은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 주민 소통을 통한 에너지 전환이다. 지역 주민과의 진정성있는 소통만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전력 공급의 약 20%를 담당하는 한국남동발전 영흥발전소가 지난달 14일 옹진군 영흥면과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영흥발전소는 주민과 발전소 간 상호 이해를 높이고 정주 여건 개선과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투명한 소통으로 협력하는 등 주민 수용성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한국남동발전처럼 발전사들이 지역 주민과 지속적인 소통의 길을 만들어야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은 속도를 낼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전환이란 큰 그림에는 에너지 고속도로 같은 에너지 관련 핵심 정책들이 있다. 이런 정책을 성공적으로 할려면 반드시 지역 주민뿐 아니라 산업계와도 진솔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여기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전문가 의견이 필수다. 정부는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감축 속도와 인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확보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보다 세밀하게 설계하고 탄소 저감 기술개발,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세제 및 금융 지원 등 실질적 이행 수단을 함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