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지금 우리는 군사 안보와 에너지 안보가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은 날로 고도화되는데 우리의 대응 수단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세계 5위의 원전 운영국이지만 핵연료는 전량 수입한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부지에 계속 쌓여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해법과 이를 뒷받침할 규범이 절실하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핵추진잠수함 도입,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 장비 도입이나 에너지 정책 차원이 아니다. 군사 안보와 에너지 안보를 동시 확보하기 위한 국가 생존 전략이다. 이를 위한 미국과의 협정 정비가 필요하다.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위한 군사 협정과 농축·재처리를 위한 원자력협정이 그것이다.

핵추진잠수함은 북한의 ‘은밀한 위협’에 대응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디젤잠수함과 달리, 핵추진잠수함은 은밀하고 장기적인 수중 작전이 가능하다. 미국 전문가들 역시 북한 위협에 대응할 가장 확실한 방어 수단으로 핵추진잠수함을 꼽는다. 일각에서는 불필요한 군비 경쟁이나 동북아 핵 도미노를 우려한다. 하지만 핵추진잠수함은 원자로를 동력원으로 사용할 뿐, 핵탄두를 탑재하는 핵무장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로 호주와 같은 비핵국가도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추진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법적 문제이다. 현재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 따른 한‧미 원자력협정은 원자력 용도를 평화적 이용만으로 한정하고 군사적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 이대로는 핵추진잠수함 도입은 불가능하다. 해법은 군사적 응용 정보 교환과 비핵 군사 물질 이전을 허용하는 미국 원자력법 91조와 144조 등에 따라 별도의 군사 안보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는 호주가 AUKUS를 통해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한 방식과 같다.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을 명확히 구분하되,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도록 법적 틀을 새로 짜야 한다.

핵연료 자립을 위해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도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의 동의가 없으면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지 못한다. 원전 연료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취약점이다. 앞으로 개발될 소형모듈원전이나 제4세대 원전은 경수로보다 우라늄 농축도가 큰 핵연료가 필요하다. 안정적 공급을 위해 자체 농축 능력 확보가 필요하다. 핵연료 독립 없이는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없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현재 국내 원전 부지에는 약 2만 톤의 사용후핵연료가 쌓여 있다. 일부 원전의 저장시설은 곧 포화 상태에 이르러 원전 가동이 중단될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부피와 독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또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추출해 핵연료로 사용하면 우라늄 이용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재처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적인 폐기물 관리 방안이다.

이 모든 권한 확대는 반드시 핵비확산 원칙과 함께 가야 한다. 국제 규범상 핵추진잠수함 동력원 사용 등 비폭발성 군사 활동은 IAEA의 ‘포괄적 안전조치 협정(INFCIRC/153(Corrected)’ 제14조에 따르면 가능하다. 또 우리는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만을 사용하고,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의 핵확산 전용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적‧제도적 방안을 개발‧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대를 위한 기본 전제다. 

협정 개정은 국내 기반 강화와 병행돼야 한다. 핵안보와 핵비확산의 국제 기준을 충족하는 안전 기준과 확고한 핵연료주기 정책이 먼저 수립돼야 한다. 외교적으로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우리의 확고한 비확산 의지와 동맹 강화 효과를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주변국 반발에 대비하는 외교력도 필수다. 결국 철저한 준비만이 협상력을 높이는 길이다.

핵추진잠수함과 핵연료주기 자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북한의 위협이 커지고 글로벌 에너지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지금,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투명성과 핵비확산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우리의 안보와 에너지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외교적·법적 토대를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고 자립적인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