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수소 공급망 중요성 커져…해외 투자, 국내 생산 쌍끌이
일본 JERA 미국 투자, 한국 민간기업·발전사 등도 중동 진출
국내 생산 걸음마 단계…CHPS 부진에도 물밑 움직임 활발

청정수소 발전시장(CHPS)이 흥행 실패 속에 첫 입찰전을 마쳤다. 응찰한 발전소 6곳 가운데 남부발전 삼척그린파워 1호기만 낙찰자로 결정됐다. 삼척 1호기는 전력 당국이 설정한 상한가 밑으로 가격을 써낸 유일한 발전소였다. 공고물량인 6500GWh의 11.5%(750GWh)만 확보하는 데 그치며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다.
지난해 경쟁입찰은 청정수소의 비싼 가격을 실감케 했다. 응찰자 중 대부분은 kWh당 500원대 이상의 가격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업계의 기대에 못 미쳤던 이번 입찰 결과를 두고 “(우선) 청정수소 가격을 발견한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CHPS의 핵심은 청정수소 가격에만 있진 않다. 업계는 날이 갈수록 청정수소 공급망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중장기적으로 해외의 수소 생산설비에 투자하거나, 국내에서 수소 생산을 늘리는 등 수소 업스트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日 JERA, 美 블루암모니아 생산…韓도 중동 생산라인 구축
일본 최대 전력회사 ‘제라(JERA)’는 지난해 3월 세계 1위 정유업체 엑슨모빌(ExxonMobil)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인근에 세계 최대 규모의 블루수소 생산 공장을 개발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연간 90만t의 블루수소와 100만t 이상의 블루암모니아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이르면 2028년부터 수소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JERA가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블루암모니아 가운데 절반가량을 일본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JERA는 연간 50만t 규모의 블루암모니아를 일본 수요에 맞춰 조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JERA가 엑슨모빌의 수소·암모니아 프로젝트 소유권 중 일부를 확보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청정수소 상류 부문에 직접 투자하면 연료 조달의 안정성이 한층 커지는 장점이 있다. 일본이 미국 내 수소 생산설비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도 청정수소·암모니아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국 기업도 중동, 호주, 미국 등지에서 수소·암모니아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개발 중이다. 특히 중동은 일사량이 풍부해 그린수소·암모니아 생산의 전단계인 태양광발전에 유리한 입지를 갖췄다. 최근 삼성물산, 삼성E&A, 포스코 등 민간기업과 발전공기업이 합세해 중동지역 태양광발전 사업 수주에 나서는 배경엔 대용량의 그린수소·암모니아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닦기 위한 움직임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포스코홀딩스는 삼성E&A, 프랑스 엔지, 태국 PTTEP 등 3개국 6개사와 글로벌 컨소시엄을 꾸려 오만 그린수소 독점 개발 사업권(두쿰 프로젝트)을 지난 2003년 3월 확보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남부발전, 동서발전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GW 규모의 태양광발전단지를 조성하고 연 22만t의 그린수소를 생산한다. 현지에서 생산한 그린수소 중 대부분은 120만t의 암모니아로 합성 후 국내로 들여와 수소환원제철, 청정전력 생산 등에 활용하고, 일부 물량은 오만에서 사용된다.
서부발전도 지난해 3월 프랑스 EDF-R과 컨소시엄을 맺고 아랍에미리트 수전력공사(EWEC)이 발주한 UAE 아즈반 1500MW 태양광 발전사업의 첫삽을 떴다. 앞서 서부발전은 500MW 규모의 오만 마나 태양광 발전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업계는 수소 생산으로 사업이 확장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올해 처음 개설된 CHPS는 비가격 평가에서 ▲국내 기업의 수소생산 프로젝트 참여지분율 ▲계약 진행도 ▲장기 연료 도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배점을 따로 뒀다. 안정적인 연료도입을 위한 투자계획, 계약 진행상황 등을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CHPS 비가격 평가를 보면 (해외 생산 시) 지분투자 분에 가점을 준다고 돼 있다”며 “경제성을 따지면 입찰을 통해 수소를 조달하는 게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당장 선택지가 되겠지만, 수소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측면에선 해외 투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홀딩스의 오만 그린수소 프로젝트 조감도. [사진=포스코홀딩스]](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412/348440_553498_2837.jpg)
◆韓이 쓸 수소 80%는 해외에서?…국내 생산 지원책도 짜야
에너지 분석기관 블룸버그NEF는 지난해 5월 발표한 ‘2024 수소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이 2030년까지 전 세계 청정수소 공급량의 8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2030년 세계 청정수소 공급량은 현재보다 30배가량 증가해 1630만t으로 관측됐다. 미국은 37%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뒤를 이어 유럽과 중국이 각각 24%, 19%를 공급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3년 전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제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일치하는 분석이다. 당시 3개의 탄소중립 시나리오 모두 수소 공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으로 봤다. 구체적으로 2050년 연간 약 2800만t의 수소 수요 가운데 81% 정도를 수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해외에서 대량의 수소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자칫 국부유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한국향(向) 블루암모니아의 1t당 생산비용은 ▲중동 630달러 ▲미국 685달러(45Q 세액공제 적용) ▲미국 805달러 ▲호주 870달러 순이다. 올해 CHPS 경쟁입찰에서 석탄-암모니아 혼소발전 제안서를 제출한 4개 사업자는 각각 33만~50만t의 블루암모니아를 들여올 방침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4개 사업자 모두 낙찰됐다면 15년의 계약기간 동안 20조원이 넘는 연료비를 고스란히 해외에 지불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국내에서 생산된 수소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엔 태양광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그린수소’와 원전 전력으로 수전해 설비를 가동해 생산하는 ‘핑크수소’도 포함된다. 관련 생태계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지난해 10월 제주도 행원풍력발전단지에서 3.3MW 그린수소 생산시설의 실증을 마쳤다. 같은 달 한수원은 울산 울주군에서 ‘원전 연계 청정수소 생산 실증사업’ 추진을 확정했다.
울주군 원전 연계 청정수소 실증사업은 2028년 3월까지 829억원(국비 290억원)을 들여 원자력 전력을 연계한 10MW급 저온 수전해(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 제조) 청정수소 생산 설비(플랜트)구축과 실증, 사업화를 목표로 한다. 하루 4t 이상의 청정수소를 생산해 인근 온산공단 기업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는 하루 약 630대의 넥쏘 차량 충전 용량에 달한다.
![남동발전이 지난해 11월 26일 충남도청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삼성물산과 당진 그린에너지 허브 사업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남동발전]](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412/348440_553499_308.jpg)
◆CHPS 흥행 부진에도 수소발전 계속된다…물밑 움직임 활발
전력 당국은 지난해 CHPS 경쟁입찰에서 기대에 못 미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수소발전이 중단되는 건 아니다. 충남 당진에 청정수소만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수소 전소 발전단지 건설을 추진하는 등 물밑에선 여전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해 11월 26일 충남도와 당진시, 남동발전, 삼성물산은 충남도청에서 ‘당진 그린 에너지 허브’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당진 그린 에너지 허브는 900MW급(300MW급 3기) 수소 전소 발전소와 300MW급(100MW급 3기)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데이터센터 등으로 구성된다.
2032년까지 수소 전소 발전소 2조4000억원, BESS 9000억원, 데이터센터 1조2000억원 등 총 4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수소 전소 발전소는 당진 송산터미널에서 청정수소를 공급받아 무탄소로 전력을 생산, 인근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에 공급할 예정이다. BESS는 태양광발전으로 생산한 신재생 전기를 저장해 데이터센터와 산단에 공급한다.
충남도와 당진시는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행정을 지원하고, 남동발전과 삼성물산은 사업 개발과 연료 공급, 발전소 설계·조달·시공(EPC), 운영 등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