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E 증가 및 전력시장 외적변화…CBP론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해”
“시공간적 정밀화 함께 이뤄져야…장기적으로 결국 LMP 가야 한다”
“전력당국·사업자 열린 마음 필요…도매시장 효율은 튼튼한 전력망서”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 [사진=윤대원 기자]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 [사진=윤대원 기자]

지난 2001년 우리 전력시장이 처음 탄생한 이후 20여 년 만에 시장제도가 급격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그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돼 온 시장의 형태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시장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크게 전환되는 분위기라는 얘기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수소 등 다양한 전원이 시장에 들어오며 전력당국은 여러 형태의 입찰시장을 개설하고 있고,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소위 3종 패키지로 불리는 ▲실시간 시장 ▲보조서비스 시장 ▲신재생 입찰시장 등 전력시장제도 개편을 위한 시범사업도 추진 중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다. 시장 상황에 발맞춘 빠른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걷는 길이 혹여 뒤틀리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본지는 창간 60주년을 맞아 전력시장 전문가인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와 함께 우리 전력시장 변화의 방향과 의미, 개선해야 할 점을 짚었다.

▶최근 우리 전력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2001년 변동비기반(CBP: Cost-based Pool)의 도매전력시장이 개설된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전력시장이 변하지 않는 사이에 주변 상황은 많이 바뀐 게 사실이다. 태양광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가 비중 9%까지 성장했고, 시장 참여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시장 초기 한전의 비중이 99%였다면 지금은 6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민간의 참여가 늘지 않았나. 이처럼 민간 사업자의 참여와 전원믹스의 변화, 송전망 혼잡 등이 과거 대비 크게 변화했다.

이 같은 상황에 송전망 건설은 불확실하고 송전혼잡은 점점 심해지는데 기존 CBP 시스템으로 시장을 끌어갈 수 있나부터 고민해야 한다. CBP는 모든 사업자의 비용을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보상하는 구조인데, 이제는 특성이 너무 다른 사업자들이 나오고 있다. 이를 기존 체계에 맞추려니 시장이 삐걱거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갈등 구조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 원칙적이고 단순하며 투명한 시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격입찰이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늘어나는 재생에너지를 유연하게 제어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하루전시장과 실시장 시장의 도입이 필요하다. 최근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에 대한 이슈가 많은데, 누구를 제어해야 할지, 제어 용량은 얼마로 해야 할지, 공평성은 어떻게 담보해야 할지, 보상은 필요한지 등 많은 고민이 있다. 결국 유일한 출발점은 가격입찰에 기반하는 것밖에 없지 않나.

가격입찰의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겠지만 가장 큰 장점을 본다면 먼저 사업자가 비용을 결정해 시장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규제와 감독 부분에서도 투명하고 단순해진다. 두 번째로 재생에너지가 늘어났을 때 이를 잘 관리할 방법은 가격의 우선순위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장기계약에 참여하는 사업자와 현물시장에 참여하는 사업자 간의 괴리가 발생할텐데, 이는 현물시장 참여자를 계약시장으로 유인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계통한계가격(SMP)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이 높다고 현물에 계속 노출돼 있는건 사실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이 같은 측면에서 계약 구조로의 유인이 긍정적 측면이라고 본다.”

▶앞서 사회적 갈등을 말씀하셨다. 시장제도 개편 과정에서 벌써 적잖은 잡음이 나오는데 이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트랜지션 피리어드(Transition period), 즉 과도기가 필요하다. 하나의 이상적인 정책을 수립할 때 바로 전환하는 방안이 있고, 점진적으로 변환하는 방안이 있다. 우리도 시장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현물시장에 참여하는 태양광 사업자 등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고려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정무적인 판단, 현실적인 고려부분이 있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는데, 하나는 출력제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공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송전망 건설을 전력당국이 속도감 있게 보급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병행해서 도매전력 시장에 참여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자에 대한 점진적인 고려가 있어야 한다. 수입이 100원, 200원 나오는 사업자들에게 갑자기 0원을 벌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즉 과도기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설정할 거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현재 우리가 변하고자 하는 시장의 기본 방향과 원칙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 원칙을 지키되 태양광 등에 대한 일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려하는 방식을 고려할 시점이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 [사진=윤대원 기자]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 [사진=윤대원 기자]

▶그렇다면 전력시장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연료비와 기동비, 여기에 기동에 대한 의지까지 모두 발전사업자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장에서는 연료비부터 기동비까지 비용평가위원회가 결정하고 있다. 현실과 제도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큰데, 이를 하나의 표준화된 수치를 사용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사업자가 의사결정을 하게끔 해야 한다. 일례로 최근의 많은 분쟁이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이 원칙이 한 번 훼손되면 영원히 복구가 안 된다. 원칙을 고수하되 과도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얘기다.”

▶워낙 많은 시장제도가 한 번에 바뀌는 모습이다. 이 중에 가장 관심을 두는 게 있나.

“도매전력시장에는 여러 구성요소가 있는데 kWh, 즉 에너지 시장(우리가 현물시장이라고 부르고 있는)이 있고, 용량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 추진 중인 배터리전기저장장치(BESS) 중앙계약시장과 청정수소 의무화제도(CHPS) 등 장기계약시장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kWh 기반의 에너지시장(현물시장)이라고 본다. 도매전력시장의 정산금 중 80% 정도가 여기서 결정된다.

에너지시장에서는 하루전시장과 실시간시장이라는 구성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서 지역신호가 필요하다. 우리는 육지 전력시장에서 지역적 신호가 없다 보니 송전혼잡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계속 공급(발전설비 건설)이 되고 있고, 송전혼잡은 점점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전시장+실시간시장 즉 ‘시간’에 대한 정밀화뿐 아니라 지역별 신호를 통한 ‘공간’에 대한 정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적어도 육지시장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차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기반으로 좀 더 세밀한 지역별, 나아가 발전기별 차등 가격이 장기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송전혼잡과 해당 지역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모선별 도매전력요금제(LMP;Locational Marginal Pricing)로 가야 한다. 다만 이로 가기 위한 계통운영 인프라(EMS)와 시장운영 인프라(MMS), 검침 인프라, 시장운영규칙, 시장감시제도, 위험관리 방안 등 사전에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우리 전력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추가적으로 변하거나, 현재 준비 중인 제도가 보완해야 할 것이 있나.

“지금까지 우리 전력시장은 안정성에 방점을 두는 시장이었다. 그랬던 것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완전히 깨져 버렸다. 유가급등과 에너지 안보, LNG 가격 급등 등으로 소매시장이 완전히 붕괴됐다.

한전의 영업적자가 50조원이 넘어가고 총부채는 200조원를 훨씬 넘는 상황까지 왔다. 단계적으로 이를 극복해야만 하는데 도·소매시장이 각기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중 도매시장은 효율성 향상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물론 소매시장의 정상화가 더욱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도‧소매전력시장의 개혁은 그동안 뒤로 미뤄둔 방학숙제를 개학이 임박해서 한 번에 해 나가는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유전인자에는 이런 숙제가 주어지면 단기간에 해내는 역동성이 있다. 잘할 수 있다. 다만 다양한 갈등 탓에 주춤하거나 현실에 대한 고려 없는 경직적 시도는 배제할 필요가 있다. 한단계씩 천천히 나아가야만 한다.”

▶여러 가지 변화 속에서 특히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현재 우리 시장제도 개선의 큰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대소경중(大小輕重)이라고 큰일과 작은 일, 중요한 일과 다소 덜 중요한 일 등에 대한 순서와 가중치를 결정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은 모든 게 한 번에 변화하다 보니 에너지시장·보조서비스 시장하에 여러 계약시장들이 동시에 도입되거나 변화하는 모습이다.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에너지시장(현물시장), 즉 돈이 많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그다음은 길을 잘못 걸었을 때 후회비용이 큰 부분이 될 것이다. 이렇게 도매전력시장 개선의 우선 순위를 만들어야 한다. 한 번에 병렬로 너무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그만한 인적 리소스가 과연 있는가.

전력시장도 그렇고 전력계통도 그렇고 전문 인력이 너무 없다. 전문가도 후속세대도 매우 제한적이다. 사업자들 역시 준비가 아직 안 됐다. 시장참여자와 외부의 탄탄한 이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그룹, 컨설팅 그룹 등이 있어야 하는데 우린 이 부분이 매우 취약하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정부가 이 부분을 많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도매전력시장이 연간 80조원을 넘어가는 시장이다. 과거 연간 10조원, 20조원 하던 시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얼마나 잘하냐에 따라 비용을 줄일 수도 있고 잘못하면 확 늘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80조원의 두 배인 연간 160조원의 시장이 될 것이다. 시행착오를 하기에는 이미 시장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다. 이 부분의 키포인트는 인력에 있다. 시장 참여자들도 인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도 체계적인 인력양성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거대한 산업에 사람이 너무 없다.”

▶우리 전력산업 정책에 제언한다면.

“지금까지 제도와 시스템 내부에 대한 얘기를 했다면 이번에 하고 싶은 얘기는 협력과 단합에 대한 것이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각각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구는 이익을, 누구는 손해를 볼텐데 대승적 차원에서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한전, 전력거래소는 물론이고 기존 발전사업자와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정부와 한전, 거래소에도 당부하고 싶은 것이 발전사업자는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함께 가는 투자자들이다. 투자가 없으면 안정적 전력공급도 탄소중립도 불가능하다. 전기가 없으면 인공지능(AI) 산업도 첨단 반도체 산업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서로 한발짝씩 물러나서 상황을 이해햐고, 양보하고, 함께 가길 바란다.

송전망 이야기도 해야 한다. 도‧소매전력시장과 송전망은 불가분의 관계다. 도매전력 시장의 효율성은 튼튼하고 강건한 송전망 유무에 달려있다. 그러나 송전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적시에 송전망 건설이 이뤄져야 한다는 위험한 신호들이 나오고 있다.

한전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정부와 범정부 차원서 송전망 갈등의 해소 구조, 적기추진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에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이 21대서 통과하면 좋겠지만 안된다면 22대 국회의 첫 번째 화두로 다뤄주길 바란다. 강건한 송전망이 전력시장 효율성 확보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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