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기후위기 시대 전동화 기술확보에 사활...전동화센터 출범
전동화 분야 세계적 석학 설승기 전 서울대 교수 기술자문으로 위촉
부품 단위 가격경쟁력 열세를 시스템 단위 성능경쟁력으로 극복 목표
HD현대일렉이 전동기와 전동기제어시스템 생산해 계열사에 공급 예정

HD현대가 지난 11월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서 ‘전동화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HD현대는 전세계적인 탈탄소 추세에 맞춰 전동화 기술 확보에 역량을 결집키로 했다. (오른쪽 다섯번째부터 왼쪽으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설승기 전동화센터 기술자문위원)/제공=HD현대   
HD현대가 지난 11월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서 ‘전동화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HD현대는 전세계적인 탈탄소 추세에 맞춰 전동화 기술 확보에 역량을 결집키로 했다. (오른쪽 다섯번째부터 왼쪽으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설승기 전동화센터 기술자문위원)/제공=HD현대   

‘전동화(Electricfication)’는 최종 소비자 관점에서 핵심 동력원을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화석연료 대신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동력원을 바꿔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인간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수송·모빌리티 부문의 전기차, 건물 부문의 히트펌프·전기히터·온수시스템, 산업부문에서의 전기선박·전기 건설기계, 전기아크로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산업 탈탄소화 로드맵’에서 산업부문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4가지 경로 중 하나로 ‘기후테크’를 지목했으며, 이를 다시 ▲전기화 ▲에너지효율 ▲저탄소 연·원료 ▲CCUS 등 4가지로 분류했다.

또 IEA의 ‘넷제로 배출 2050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동화를 통한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량(누적)은 전체 감축량 대비 평균 약 20%로 예상되며, 전기화에 의한 감축 비중은 2030년 14%에서 2050년 27%로 확대될 전망이다. 2030년에는 전동화의 감축 기여도가 풍력·태양광(33%), 에너지효율(16%)에 뒤지지만 2050년에는 이들을 압도하고, CCUS(18%), 행동변화·수요회피(16%)까지 넘어서는 최대의 CO2 감축기술이 될 것이라는 게 IEA의 분석이다.

HD현대가 그룹 역량을 결집해 초격차 전동화 기술 확보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탄소중립을 실현한 기술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조선·해양·건설과 에너지 중심의 그룹 포트폴리오에서 전동화 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때문에 HD현대는 계열사 별로 운영하던 전동화 연구조직들을 전동화센터로 통합하고, HD한국조선해양 미래기술연구원 내 직속센터에 배치했다. HD한국조선해양의 전기제어연구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전력전자개발팀, HD현대일렉트릭의 전력시스템연구실이 ‘전동화센터’로 통합했다.

특히 전동화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인 설승기 전 서울대 교수를 전동화센터의 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조선해양’, ‘건설기계’, ‘일렉트릭’, ‘로보틱스’ 등 4개 부문에 대한 기술자문과 그룹 내 전동화 역량 강화에 투입했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그룹의 새로운 50년을 이끌어나갈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동화 역량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전동화 기술개발과 연구 인력확보로 HD현대의 전동화센터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동화센터로 거듭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HD현대는 전동화센터를 통해 무탄소 전기추진 선박·굴착기 개발 등 핵심사업의 차별화된 기술 우위를 확보해 나간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조선해양·건설기계 분야의 전동화 선행기술 및 핵심부품 개발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필요한 전동기와 전동기제어시스템(인버터)을 HD현대일렉트릭이 생산한 뒤 다른 계열사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글로벌 전동화 건설기계 시장 규모 전망
 글로벌 전동화 건설기계 시장 규모 전망. / 자료=아이디테크엑스

▲산업부문 전동화 시장은 고속 성장세

전동화의 기치는 수송 및 모빌리티가 내걸었다. 현대차에 따르면 수송 부문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고, 그 중 70% 이상이 자동차가 포함된 도로 교통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현대차는 탄소 감축을 넘어 탄소 제로화(Zero Carbon)를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 2035년에는 유럽 시장, 2040년 내로는 주요 시장의 모든 판매 차량의 100% 전동화 전환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HD현대의 주력 중 하나인 선박자동화 부문 역시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과 자율운항 이슈가 부각되면서 추진솔루션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원 연계 용이성, 추진 출력 고속제어, 원격제어 등의 장점을 갖춘 전기추진선 시장은 연 10%씩 성장해 2027년에는 1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HD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선박 건조 부문에서 글로벌 톱클래스에 속하지만 전기 추진 기자재·패키지 시장은 ABB, 지멘스 등 선진사의 독무대라 국내 조선사, 기자재 업계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HD현대의 또 다른 축인 건설기계 시장 역시 디젤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기존 후처리 장치기술의 한계와 친환경 탄소중립 정책으로 전동화 장비 개발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전기식 건설기계 시장은 향후 20년 간 25.4%(CAGR) 성장이 예상되며, 2032년에는 전체 건설기계 시장의 13.5%인 15만7000대(35조원), 2042년에는 43.5%인 52만7000대(137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성공 관건은 기술력과 시장경쟁력 확보

이처럼 급팽창하는 전동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HD현대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내수시장에선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중국과의 가격경쟁이 어려운 만큼, HD현대에 맞도록 설계된 전동화 시스템을 개발, 부품 단위에서의 가격경쟁력 열세를 시스템 단위에서의 성능 경쟁력으로 극복하겠다는 게 HD현대의 목표다.

설승기 HD현대 전동화센터 기술자문위원은 “HD현대일렉에서 전동화 기술을 개발해도 시장경쟁력이 없다면 같은 HD현대 계열에 있는 한국조선해양이라고 해도 사용을 하겠느냐. 그동안 조선해양은 유럽의 메이커들, 건설기계는 중국 부품 등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들이 생산하는 부품 단위가 적게는 수십만개에서 많게는 100만개 단위다. 반면 HD현대 그룹 안에서 사용될 부품은 수 천개, 수 만개 베이스일 텐데, 중국이나 유럽 업체와 가격경쟁이 되겠느냐. 때문에 우리는 부품 레벨에서는 경쟁력이 없을 수 있지만 시스템 레벨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중국의 메이커들은 HD현대의 엔지니어들이 선박, 건설기계, 로보틱스 등에 고유한 특성과 아이디어를 녹여내고 싶어도 필요한 부품을 입맛에 맞게 수정·보완해 주지 않지만 전동화 기술을 스스로 내재화하면 제품에 맞게, 또 필요하면 완제품 설계 자체를 수정해서 최고의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설 위원의 판단이다.

설 위원은 “부품 단위에서의 가격경쟁력은 열세이지만 이를 시스템 단위에서의 성능 경쟁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조선해양, 건설기계에 특화된 전동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특히 향후 1~2년, 2~3년 내에 그와 같은 시스템 단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물량 수준으로 HD현대가 성장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준비를 해서 2~3년 뒤에는 우리가 만든 요소기술이 완성품에 반영되는 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설승기 HD현대 전동화센터 기술자문위원(서울대 명예교수)

“E-GMP처럼 HD현대만의 전동화 플랫폼 만들겠다”

파워용량별 다양한 플랫폼 만들어 적용 예정

빠르면 2025년부터 선박·건설기계 등에 탑재

“HD현대 경영진에 전동화센터 설립을 처음 제안한 게 바로 저입니다. HD현대 그룹은 조선 분야의 절대 강자이지만 전기·전자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다가오는 탈탄소 시대에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전동화센터 설립은 그룹의 관련 인력을 집중시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설승기 HD현대 전동화센터 기술자문위원은 지난 2023년 8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정년을 했고, 현재 서울대 전력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동화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0년대 후반 LG산전(현 LS일렉트릭)에서 근무할 때부터 연구했던 엘리베이터 구동시스템을 개발, 당시 100% 수입에 의존했던 고속엘리베이터를 국산화해 분당·일산신도시에 다수 설치한 경험이 있다.

또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은 이후엔 국내 유일의 엘리베이터 제조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20여년 간 같이 연구개발하며 세계 최고속 엘리베이터를 완성했고, 최근 서울대 정년퇴직 직전엔 HD현대와 직류 기반 전기추진선을 자체 설계하고 이를 취역시킨바 있다.

“전동화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꼭 가야할 길입니다. 기계적 구동력을 얻기 위한 내연기관은 수소를 직접 연소하지 않는 대부분의 연료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전동기는 그 자체로는 온실가스 배출도 없고 에너지변환 효율이 통상 내연기관의 2~3배에 달합니다. 현재는 전동기를 구동하기위한 전력생산을 위해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지만 향후 신재생에너지와 연료전지 보급이 보편화 될수록 전동화의 가치는 더 커질 입니다.”

설 위원은 HD현대의 조선해양, 건설기계, 일렉트릭, 로보틱스 등 4개 부문에 대한 기술자문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설 위원은 기본적으로 전동화라는 게 전동기를 제어하는 기본적 매커니즘은 동일하지만 로봇은 수백W에서 수kW, 건설기계는 수kW에서 MW, 조선해양은 MW에서 수십MW까지 파워용량이 다양하며, HD현대일렉트릭의 경우 육상 전동기 구동을 위해서는 수백W부터 수십 MW까지 전 영역의 제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전동화센터에서는 앞으로 크기가 다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HD현대일렉이 전동기와 전동기제어시스템(인버터)을 만들어 다른 계열사에 납품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HD현대일렉이 과거에 전동기제어시스템을 만들었다가 접은 적이 있습니다. 전동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죠. 이를 위해 HD일렉트릭에 남아 있던 관련 인력도 전동화센터 출범에 맞춰 흡수를 했습니다.”

사실 HD현대는 전기선박, 전기굴착기 등 이미 다수의 전동화된 주요 완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요소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한 뒤 서로 연결해 사용하는 기술은 HD현대도 잘 하고 있다는 게 설 위원의 평가다.

그러나 이 같은 요소기술을 내재화하지 않으면 결국 장기적으로 시스템 성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동화센터 출범을 통해 관련기술을 하루빨리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전동화센터는 결국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와 같은 것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E-GMP와 같은 플랫폼이 없는 전동화 모델 차량은 기존의 뒷자석과 뒷 트렁크에 배터리를 싣고 엔진 대신에 모터를 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E-GMP는 완전히 다르죠. 파워용량별로 다양한 E-GMP와 같은 전동화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선박, 건설기계, 로보틱스 등에 적용해 나가겠다는 게 전동화센터의 목표라고 보시면 됩니다.”

설 의원은 빠르면 2025년부터 선박과 건설기계 등에 전동화 플랫폼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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