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연구회, 27일 ‘합리적인 전원구성 위한 전기본 수립방향’ 정책세미나 개최
전력 전문가들 “11차 전기본 지금처럼 가면 안돼…탄소중립 외 다양한 고려 필요”

정치적 개입이 심화되고 있는 전력·에너지 정책의 정상화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산업연구회(회장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합리적인 전원구성을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방향’을 주제로 한 정책세미나를 롯데호텔서울에서 27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최근 우리 전력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전력·에너지 정책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개입의 부작용에 대해 입을 모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현재 국제정세로 인한 우리 전력산업의 위기나 산업 환경 등이 고려되지 않고, 정치적 판단이 우선하다보니 최근 같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번 세미나에서는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에너지 위기로 가고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주제발표했다. 이어서 정연제 서울과기대 교수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현황,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향’을 공유했다.
손양훈 교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은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적자와 부채로 전대미문의 재무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위기도 심각하지만 쉽게 나아질 수 없는 상황으로 전력시장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여력이 이제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국가의 에너지 수급계획이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상에 치우쳐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고, 에너지 안보를 오히려 위협하는 상태라고 손 교수는 주장했다. 특히 수급계획이 재생에너지와 원전만 강조하다가 경직성 전원 일색으로 만들어져 유연성이 극도로 부족하며 계통의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전원믹스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LNG발전과 같은 유연성 자원의 비중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력수급계획도 천연가스 계획도 이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현재 계획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작년과 같은 국제 천연가스 시장의 변동성에 노출되는 폭탄을 안고 가는 것과 같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와 함께 손 교수는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고금리 상태로 급변하고 있는데 주목해 금리는 신규 투자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사항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고금리가 되면 연료비 비중이 낮고 설비비 비중이 높은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불리해지고, 반대로 설비비 비중이 낮은 LNG 발전이 휠씬 유리해진다. 이러한 점에서 투자의사 결정에서 금융시장의 여건이 변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연제 교수는 현재 수립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계통 여건 및 사회적 수용성 등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하기보다는 원전 등 특정 전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어, 과거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지녔던 문제점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였다.
현재 언론에서 보도된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방향에 따르면, 향후 우리나라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경직성 전원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지만 전력수요 변동성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 자원이 부족해 정전이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송전선로 건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024년경에는 동해권역 발전기 6GW가 정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규 원전을 통해 용인 반도체 전력수요에 대응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고준위폐기물을 처리할 영구 저장시설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으로 인해 신규 원전 건설에 우선순위를 둔 제11차 전기본은 앞으로 전력공급 안정성을 크게 해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비쳤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비계획 중심의 전기본을 시나리오별 전력수요 아웃룩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이어진 토론에서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전력수급계획의 지나친 정치화는 지난 정부 8차수급계획의 ‘탈원전’, 9차수급계획의 ‘탈석탄’으로 본격화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화된 수급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보다 지나치게 이상을 설정한 결과 비용이 극대화되고 이러한 단적인 예가 작년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인한 에너지 비용의 급상승이라고 말했다.
11차 수급계획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비용 최소화를 우선 고려하고,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을 고려하는 균형있는 전력수급계획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람직한 전원구성계획은 국내외 에너지 및 전력 정책 여건 변화, 환경규제 변화 등의 불확실성을 완화해 안정적 전력수급을 담보해야 하지만 현행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정책 불확실성을 오히려 더욱 키워 수급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장기 자원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용량시장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용량시장, 특히 선도용량시장 제도는 그동안 제기된 건설의향제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장친화적인 대안이라는 것.
용량시장 도입과 동시에 정치논리와 정부개입은 최소화하고 전력정책 및 시장제도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된 규제기관의 재정립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제도가 뒷받침될 때 기존 정부 주도의 전원구성계획은 독립적 계통운영자(ISO)가 수립하는 시나리오 중심의 아웃룩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게 조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김한국 GS EPS 팀장은 과거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문제점에 대한 증거로 5차부터 10차 계획까지 각 계획마다 반영된 전원별 신규 설비량을 제시하며, 5~7차는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대규모 원자력·석탄·LNG 설비를 반영한 결과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8차 이후 및 NDC 목표는 환경성에 치중한 나머지 대규모 한전 적자로 인한 사회적 이슈를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개선을 위해 시나리오 방식의 수급 계획이 필요한데, 현행 계획이 적정 예비율 확보에 필요한 신규 발전기 반영 여부를 판단하는 데 따른 전원별 혹은 정치적 과열 경쟁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차 계획은 원전중심, 재생중심, 기설 석탄 및 LNG 활용 등 가능성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정하고, 각 시나리오가 갖는 경제적, 환경적, 계통적 문제와 예상 비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황 상무의 설명이다. 실제 신규 발전기 건설 여부는 불확실한 미래가 현실화하는 시점에서 전기위원회의 발전 사업허가 평가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김 팀장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신규 발전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권력을 내려놓고 시나리오 중심으로 전환해야 에너지 문제에 이념이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2030년에 발전량 23%를 담당하던 LNG가 불과 6년 후에 9%로 줄어드는 식의 비합리적인 계획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