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세계 이차전지 산업의 선도 국가로 자리 잡았으며 최근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환경 규제와 보조금 정책에 발맞춰 미국 내 생산설비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 IRA의 첨단 제조 세액 공제(AMPC)에 따르면 이차전지 부품을 포함한 첨단 제조 기술 기반 제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 및 판매할 경우 상당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세부적으로, 배터리 셀 기준으로는 1kWh당 35달러, 모듈 기준으로는 1kWh당 10달러의 지원이 이뤄진다. 이러한 정책은 한국 이차전지 주요 기업(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이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IRA 보조금의 약 32%인 349억 달러(약 48조원)를 수주하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이차전지 산업에만 약 302억달러(약 42조원)의 투자금이 유입되어, AMPC가 국내 주요 이차전지 기업의 영업 실적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주요 이차전지 3사는 미국 내 신규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으며 전기차 수요 급증으로 인해 AMPC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의 변화로 인해 IRA 법안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되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기반으로 한 IRA 보조금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IRA를 통해 ITC(투자세액공제), PTC(생산세액공제), AMPC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AMPC는 앞서 언급하였고 ITC는 투자세액공제로 신재생 에너지 설비나 기술에 투자한 금액에 부과되는 세금을 일정비율 공제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투자만으로도 세제 혜택의 수령이 가능하다. 한편 PTC는 생산세액공제로 신재생 에너지로부터 생산된 전력을 판매할 때 발생하는 세금의 일부를 공제해 주는 내용으로 전력 발전량에 따라 세제 혜택을 제공해 준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 이와 같은 보조금에 대한 축소를 주장해 오고 있어 진행되고 있는 보조금 혜택에 대한 종료가 예상돼 그 피해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또한 이차전지의 4대 핵심소재의 수요도 둔화되어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과 미국에 함께 진출한 국내 소재 기업들의 매출도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차전지 핵심광물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은 전세계 곳곳에서 채굴되나 광물가공설비의 대부분이 중국에 위치하고 있고 대부분의 이차전지 부품들 역시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어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다각화가 절실하나, 현실적으로 참 어려운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측면들을 종합해 본 결과 트럼프 재집권은 결국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한국신용평가의 의견이다.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면 자동차 산업은 가솔린차나 하이브리드차 같은 대안으로 전환할 여지가 있지만 이차전지 산업은 전기차 수요에 약 76%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차 시장의 둔화는 곧 이차전지 산업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이 직면한 도전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외의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차세대 모빌리티 등 전기차를 넘어서는 응용 분야를 개척해야 하며 이를 위한 연구개발(R&D) 및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 한국 정부 역시 이차전지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 국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또한 미국 및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핵심 광물을 조달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정리하자면,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이차전지 산업이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 글로벌 공급망 구축: 미국 및 기타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이고 다각화된 공급망을 구축. 수출국 다변화: 전통적인 시장을 넘어 유럽,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규 시장 개척. 차세대 기술 개발: 고체 전지, 리튬황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 정치적 상황 분석: 미국의 정책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별 전략 수립.
트럼프 정부 재집권 가능성과 IRA 축소 우려 속에서 한국 이차전지 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며, 기술 혁신을 주도한다면 한국 이차전지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여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