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류(DC)와 교류(AC)의 전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DC와 AC의 장·단점에 대한 논쟁은 지난 100여년 간 충분히 있어 왔다. 당장 2019년 커런트 워(The Current War)라는 미국의 상업영화가 국내에 개봉했을 당시에도 이 논쟁은 수면 위로 떠올라 잠시 가십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가 잠잠해졌다. 결론이 없는 논쟁을 해 봤자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현재 전력계통의 중심은 AC다. 하지만 근래 들어 AC 중심의 국내 전력계통에 DC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AC계통이 어려워하는 난제를 DC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력당국은 AC 중심의 전력계통을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신재생에너지의 등장, 전력 전송을 위한 송배전망 건설의 어려움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바로 DC다.
DC는 전압에 따라 초고압직류(HVDC, 100KV 이상), 중압직류(MVDC, 1.5kV~100kV), 저압직류(LVDC, 1.5kV 이하) 등으로 구분된다.
주로 송전망에 활용되는 HVDC는 1998년 해남~제주 구간을 비롯해 진도~서제주(2013년), 북당진~고덕(2020년) 등 3개 사업이 추진됐고, 앞으로도 동해안~수도권(EP) 사업과 서해안 백본망 사업 등이 예정돼 있다.
MVDC는 배전계통 간 연계, 도서지역 배전망, 산발적인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배전계통 간 연계 등이 가능하며, 한전 등을 중심으로 실증연구가 진행 중이다.
수용가 연계 등에 주로 활용되는 LVDC의 경우 최근 전자기술연구원이 2019년부터 5년 간 ‘지능형 LVDC 핵심기술개발’ 과제를 진행하고, 국내 처음으로 15종의 단체표준 등을 마련해 상용화를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
특히 LVDC의 경우 일반 가정에서 케이블 교체 없이 DC 활용을 위한 전력변환기와 차단기 정도만 교체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의 진보를 이뤘다.
이처럼 DC는 아직 AC에 비해 기술적으로 덜 성숙됐지만 분야별로 다양한 실증연구와 과제 등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당진~고덕 HVDC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기술적 사고, 여전히 미비한 LVDC 관련 제도와 규정 등은 DC의 본격적 활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C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앞서 얘기했듯이 AC 기술로는 한계가 있고, DC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들을 살리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이 HVDC산업의 육성을 위해 구성한 HVDC기술·산업포럼 공동위원장인 장길수 고려대 교수가 전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C로는 구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입한 HVDC를 가지고 경제성이나 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얘기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 커런트워에서 전기 송전방식을 두고 벌였던 에디슨과 테슬라의 경쟁은 이젠 과거의 얘기로 묻어야 한다. 현재 DC를 다루는 기술은 영화의 배경이 됐던 과거보다 많이 진일보했다. 기술을 담금질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DC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풍족하고 효율적인 ‘전기소비’가 가능할 수 있다.
AC와 DC 간 ‘전류전쟁’ 이야기는 묻어두고, 이젠 두 전류의 ‘상호보완’을 고민할 때다.